
『앙피트리옹』은 그리스 신화를 차용해서 만들어낸 작품으로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해 인간들을 농락하는 주피터의 모습에서 절대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신하와 백성들을 자기 뜻대로 휘두르려 한 당대 권력자와 궁정의 실상을 풍자하고 있다.
1668년 1월 13일, 루아얄 극장에서 초연된 앙피트리옹(Amphitryon)은 1월 16일 루이 14세가 관람하는 가운데 튈르리 궁에서의 재공연 이후 같은 해 부활절까지 스물아홉 차례 공연되는 성공을 거둔다. 이 작품에서 소지의 역할을 맡았던 몰리에르는 공연의 성공에 고무되어 당시 그를 괴롭혔던 폐렴, 아들 루이의 죽음, 부인 아르망드와의 별거, 극단 여배우의 이탈 등 개인적인 역경에도 불구하고 "조르주 당댕" 과 "수전노"를 연이어 무대 에 올리는 역량을 과시한다.

앙피트리옹의 이야기는 헤라클레스의 탄생 과정을 언급하는 '일리아드'에 이미 등장한다. 호머의 서사시는 아이스킬로스를 비롯하여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 같은 비극 작가에게도 영향을 끼쳐 이들로 하여금 알크멘, 앙피트리옹 같은 작품을 발표하게 하지만 그 텍스트는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한편 로마의 희극 작가 플라우투스의 '앙피트리옹'은 헤라클레스 탄생 신화를 다룬 고대극 가운데 유일하게 텍스트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 고전극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루이 13세 시대의 대표적인 극작가의 한 사람이었던 '로트루'도 앙피트리옹 신화를 바탕으로 '두 명의 소지'(l636)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플라우투스의 '앙피트리옹'과 더불어 몰리에르의 '앙피트리옹'에 결정적인 참고 자료가 되었다. 플라우투스의 방식을 차용한 로트루는 작품의 서두에 프롤로그를 두었지만 몰리에르의 '앙피트리옹'에 비해 간단한 독백으로 처리한 점이 다르다. 정규극의 일반적인 형식인 5막으로 구성된 '두 명의 소지'에 비해 3막에 불과한 몰리에르의 작품은 사건의 진행을 보다 압축하여 긴박하게 진행시킨 점이 구별된다.
풀라우투스와 로트루처럼 앙피트리옹 신화의 모델을 제공한 작가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몰리에르의 『앙피트리웅』은 그의 무대에서 자주 다루어진 바 있는 오쟁이 지는 남자의 주제를 이어간다. '스가나렐' 이나 '조르주당댕' 의 경우와 달리 앙피트리옹을 농락하는 상대는 초자연적 권위를 가진 절대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불행한 남편 앙피트리옹은 그의 운명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몰리에르의 '앙피트리옹'에서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인물은 루이 14세이다. 스스로 "태양왕"으로 불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만큼 권위적인 카리스마의 주인공인 그가 주피터에 비유되는 것은 전혀 불쾌한 암시가 아닐 것이다. 후대의 평지들은 '앙피트리옹'이 공연될 무렵에 루이 14세가 몽테스팡 부인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절대 군주에게 부인을 유혹당한 불운의 주인공을 몽테스팡 후작에서 찾기도 한다. 한편 루이 14세의 연애담과 몰리에르의 r앙피트리옹』이 공연된 시점이 시기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반론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몽테스팡부인을 알크멘이라고 단정하는 것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루이 14세 시대에 공연된 성공작임에도 불구하고 몰리에르의 『앙피트리옹』은 여러 차원에서 전 시대에 유행한 바로크 연극의 특성을 보여준다. 부르주아지의 편집증과 사랑을 주제로 삼는 그의 관습적인 극작법과 달리 이 작품에는 기계 장치를 사용하는 초자연적 무대에 신화적인 인물이 등장하여 궁정풍의 연애담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루이 13세 시대 연극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한다. 앙피트리옹의 모습으로 그의 부인에게 접근한 주피터, 하인 소지의 외모를 취하여 그의 역할을 무력화시킨 머큐리의 등장은 정체성을 도용당한 상대측으로 하여금 존재론적 혼란을 유발하여 현실과 허구의 유희를 효과적으로 연출한다. 제신의 으뜸으로 절대적인 권위의 상징인 주피터 신이 인간 세계의 여인에게 접근하기 위하여 변신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설정 역시 바로크 연극의 특성과 통한다는 점에서 몰리에르의 "앙피트리옹"은 코르네유의 대표적인 바로크 희극 "연극적 환상"에 필적할 만한 연극적 묘미를 보여준다.

몰리에르 연극의 주인공 가운데 타르튀프가 위선자의 전형으로 아르파공이 수전노의 다른 이름으로 이해되는것 처럼, r앙피트리옹』에 등장하는 소지는 아주 닮은 다른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되며 앙피트리옹은 식사를 대접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현대인의 언어생활에도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근대 스페인 문학에서 출발하여 몰리에르의 희극을 거쳐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동 쥐앙의 신화처럼 앙피트리옹과 알크멘의 이야기는 유럽의 작가들에 게 다양하게 재해석된 끝에 20세기에 들어 장 지로두는 자신이 서른여덟 번째로 앙피트리옹 신화를 다루었다는 의미에서 "서른여덟 번째 앙피트리옹(Amphitryon 38)" (1929)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몰리에르(1622.1.15~1673.2.17)
본명은 장 바티스트 포클랭Jean-Baptiste Poquelin. 1622년 1월 15일 파리에서 양탄자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예수회 학교를 다니며 여러 고전 라틴 희극을 접하고, 외조부의 영향으로 희극에 큰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경험이 그가 작품을 구상하는 데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는 잠깐 변호사 생활을 한 뒤 ‘일뤼스트르 테아트르 Illustre Th??tre’ 극단을 창설해 배우 겸 극단 대표로 활약한다. 하지만 당시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경쟁 극단에 밀려 어려움을 겪다가 빚더미에 오르고, 결국 지방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몰리에르의 유랑극단은 13년간 프랑스 전국을 돌며 관객을 만나다가, 마침내 1658년 파리에 입성해 국왕 루이 14세 앞에서 공연하게 되었고, 곧 큰 성공을 거둔다.
연극은 성공 가도를 달렸다. 국왕은 아이들의 대부가 되어줄 정도로 몰리에르를 아꼈고, 연극 무대와 연금도 하사했다. 파리 시민의 호응도 대단해 많은 작품이 성공을 거두었지만 적도 많았다. 특히 몰리에르의 작품에서 호된 비판의 대상이던 부르주아, 귀족, 성직자들의 견제도 심했다.
배우로도 유감없이 열연을 펼치던 몰리에르는 1673년 공연 도중 무대에서 생을 마쳤다. 대표 작품으로는
<여자들의 학교><강제 결혼><타르튀프><동 주앙><인간 혐오자><어쩔 수 없이 의사가 된 남자><수전노><부르주아 신사><상상 속의 환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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