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더 윙 피네로우 (sir Arthur Wing Pinero, 1855-1934)
피네로우는 1855년, 부유한 변호사의 아들로 영국 런던에서 출생하였다. 학교를 마치고, 아버지 법률사무소에서 덤벙대더니, 19살 되던 1874년에 난데없이 연극배우가 되기를 원해서 어어빙의 극단에 뛰어 들어갔다. 이리하여 여러 극단으로 전전 하면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클로디어스 역도 하고, 오델로의 로데리고 역을 맡아보았던 것을 보면, 연극배우로서의 단단한 소질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무대 배우를 하는 동안에 연극을 터득하여 희곡을 쓰기 시작하였다. 1877년에 쓴 처녀 작 "1年에 2백 파운드" 가 호평을 얻자, 이어서 많은 코미디와 소극을 발표하여 이름을 날렸다. 무대에 익숙한 작가이니만큼, 처음부터 피네로우의 극은 교묘한 구성으로 일반의 주목을 끌었는데, 그는 단순한 웃음거리 연극을 만드는 저급한 작가에 그치지 않고, 성실한 정진을 일삼는 연구가 이어서, 당시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던 "문제극"에 대한 큰 관심을 가져, 영국에서 처음으로 "방탕라" 란 問題劇을 1889년에 발표하였다. 가공적인 제재를 버리고, 그 당시 英國의 생생한 사회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실 생활 상의 문제를 다룬 것이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노르웨이의 作家 헨릭 입센의 연극이 영국에서도 공연되기 시작하여, 월리엄 아처의 소개로 입센의 연극 "유령" 이 극소수의 연극애호가에게 공연되었다. 피네로우는 이 "유령"을 보고 크게 느낀 바가 있어, 1893년에 그의 걸작일 뿐만 아니라 영국 근대극의 획기적인 작품인 "두 번째 탠커리 부인"을 세인트 제임스 劇場에서 상연하였다. (The Second Mrs. Tanqueray)

이 작품은 <방탕아>의 시리즈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부인을 잃은 뒤에, 오랫동안 홀아비 생활을 하던 탠커리가 포라라는 좋지 못한 과거를 가진 여자와 재혼하여, 런던을 떠나서 그전에 죽은 아내와 결혼생활 하던 시골집으로 내려간다. 결혼 전날, 수녀원에 맡겨서 길러오던 전처소생의 딸 엘렌이 별안간 수도원을 나와서 아버지와 같이 살겠다고 하는 편지가 온다. 이렇게 해서 탠커리와 두 번째 부인 포라와 딸인 엘렌이 한 집에서 생활하는데, 엘렌이 첫눈에 포라의 행색을 알아보고, 계모 대접을 안 해서 집안이 화목하지 못하다. 포라는 엘렌이 자기한테 쌀쌀하게 군다고 남편한데 호소하고, 남편은 엘렌한테 계모에게 잘 해주라고 이르지만, 뜻대로 안 된다. 이런 가정환경을 안 탠커리의 친구 트라믈의 주선으로 엘렌의 生母의 친구인 코오텔리온 부인이 엘렌을 바람 쏘이게 하기 위하여 데리고 파리로 떠난다. 거기서 엘렌은 인도에서 현지 반란 때에 큰 공을 세운 젊은 아아데일 대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리하여 탠커리의 승낙을 받기 위하여 엘렌은 아아데일 대위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서 우연히 아아데일 대위와 포라가 만나는데, 이들은 전에 런던에서 동거생활을 하던 사이였다. 아아데일은 포라한테 비밀을 지켜달라고 간청하지만 포라는 이 사실을 남편한테 고백하고 결혼을 못하게 한다. 이 일 때문에 엘렌과 포라는 큰 싸움을 하고, 마침내 포라는 자살하고 만다.

입센의 "유령" 과는 그 근본정신이 전혀 다르지만, 사람이란 과거의 허물로 부터 도망쳐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탠커리와 포라를 주인공으로 하고, 딸 엘렌과 친구 트라믈을 조연으로 하여 구성이 빈틈없이 잘 짜였다. 이 극은 처음에는 입센의 "유령"과 같이 소수의 연극동호인에게만 보이려던 것이 극장 주인의 결단으로 일반에게 공연되어, 일찍이 없던 굉장한 호평을 얻었다. 이리하여 영국의 근대극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이 작품은 이 같은 역사적 가치를 가진 작품이지만, 그 작품 자체로 볼지라도 물론 傑作에 속한다. 욕심을 말한다면, 위대한 悲劇이 갖는 깊은 감정을 흔들어주는 점이 부족하다. 위대한 비극은 눈물보다도 전율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높은 감성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의 높은 비평의 눈으로 볼 때,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테마로 하여 빈틈없는 구성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 작가의 비범한 역량을 보여주는 점이다.
피네로우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극작생활을 하여 50여 편의 作品을 내놓았는데, 이 "두 번째 탠커리 부인" 이외에 그의 傑作으로 "악명 높은 에바 스미스부인" (1895) "아이리스 (1901). "흐름의 中間" (1909) 등을 들 수 있다. 1909년에 극단에 대한 오랜 동안의 공로로 작위를 받았다. 어쨌든 피네로우는 英國 근대극의 아버지로서, 뒤떨어졌던 영국의 연극을 유럽의 진보된 연극에 비해서 손색이 없을 만한 정도로 이끌어 올려놓았고, 영국의 연극 전통을 존중하여 당시 영국의 모든 社會問題를 主題로한, 전혀 독창적인 새로운 演劇을 개척해놓았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 (1) | 2015.11.13 |
|---|---|
| 라이너 하하펠트 '꾸러기들의 축제' (1) | 2015.11.13 |
| 존 골즈워디 '여러 가지 충성' (1) | 2015.11.13 |
| 유진 오닐 '시인 기질' (1) | 2015.11.13 |
| 괴테 '공범자' (1) | 2015.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