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결투로 살인을 저지르고 유배중이던 돈 후안은 지루한 유배 생활을 참지 못하고 몰래 마드리드로 돌아온다. 마드리드로 입성하던 돈 후안은 자신과의 결투로 죽은 기사단장의 묘지에서 우연히 기사단장의 미망인 도나 안나를 보게 되고 그녀를 유혹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돈 후안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화려한 언변과 뻔뻔스러움으로 도나 안나를 설득하고 그녀와의 만남을 약속 받고는 기사단장의 석상을 자신과 도나 안나의 만남에 문지기로 초대한다. 도나 안나와의 만남에서 진실한 사랑에 눈뜬 돈 후안은 도나 안나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고 용서와 사랑을 구하지만 그 순간 돈 후안과의 약속을 지키려 나타난 기사단장의 석상과 마주하게 되고…… 마지막의 결말은 짜릿할 정도다.
작가소개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1799-1837)은 19세기 러시아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소설가 그리고 극작가이다. 그의 시<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우리에게도 매우 낯익은 것이며 또 그의 소설<예브게니 오네긴>, 희곡<보리스 고두노프>는 차이코프스키나 무소르그스끼와 같은 러시아 음악가들에게 소재를 제공해주기도 하였다. 문학사적으로는 러시아의 낭만주의 시대라고 불리는 시기에 활동하긴 하였지만 그의 문학은 한 가지 사조로만 설명될 수 없다. 그의 작품에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사실주의적인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고골, 뚜르게네프, 도스또예프스키 같은 19세기 작가들뿐만 아니라 마야코프스끼와 나보꼬프 같은 현대 작가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기도 한다.
러시아 근대 문학의 창시자, 러시아 근대 문학의 아버지,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창시자, 러시아 문학어의 창시자, 러시아의 국민 시인,
알렉산드르 푸슈킨. 이 면면만 보면 그의 삶은 진정 화려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삶의 모습은 단지 화려하지만은 않다. 전제군주 사회에서 자유주의적 정신의 화신이자 자유주의 정신의 전파자, 자유주의적 인 개방적 지식인의 상징적 존재였던 그는 황제에 의해서 남러시아로 추방당하기도 했고, 데카브리스트 반란의 실패 이후에는 위험인물로 취급되어 황제 근처에 강제로 머물며 황제에 의해서 직접 자신의 작품을 검열 받았고,
적대적인 귀족과 문인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모함당하고 공격받은 인물이다. 특히 미인으로 소문난 13살 연하의 부인 나탈리야 곤차로바는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러시아 사교계에서 황제의 애인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하면서 푸슈킨 에게 정신적인 고통의 중심이 되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염문을 뿌리면서 그를 괴롭게 만든다. 결국 그는 아내와 염문을 뿌린 프랑스인 귀족과 결투하다 치명상을 입고 죽음을 맞는데, 이것만
봐도 그의 삶의 빛과 그림자를 명확히 느낄 수 있다. 푸슈킨은 서구 문학의 영향 속에서 그것을 받아들여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러시아 문학의 틀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민한 작가이다. 낭만주의,사실주의,고전주의의 사용, 고전의 패러디, 문학 전 방면에 걸친 러시아적인 문학의 탐색 및 실험, 사회적인 고정관념과 권위에 대한 풍자, 러시아 농민의 생활과 삶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따듯한 글, 러시아의 국민문학의 가능성의 탐구,서구 문학과 예술의 패러디에 가까운 문학들까지. 푸슈킨이 걸어간 문학적인 궤적은 후대의 그 어느 러시아 작가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넓고도 깊으며 열려 있다. 투르게네프의 '푸시킨 이후의 작가들은 그가 개척한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라는 말처럼, 그가 러시아 근대 문학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무엇보다 푸슈킨 문학의 특색은 읽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쉬운 듯 하면서도 절대 쉽지 않고, 가벼운 듯 하면서도 절대 가볍지 않고. 그렇다고 문장과 문체가 마냥 현실적이거나 짧고 읽기 쉬운 것만 있냐고 하면 그렇지 않으며, 화려한 문장과 고전적인 느낌의 정제된 문장과 평이한 문장과 표현이 공존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톨스토이의 진중함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세밀함, 투르게네프의 현실성이 푸슈킨의 문장과 표현보다는 더욱 깊이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표면을 떠나서 표면을 흐르는 것을 들여다보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죽기 직전까지 러시아 문학의 의미를 고민하고 러시아 문학의 가능성을 탐색한 작가답게 그의 문학은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고,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그의 글은 일견 무게감이 후대의 작가들에 비해 떨어져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글의 가능성과 실험성을 놓친 견해이다. 푸슈킨에게 절대적 권위나 갇힌 사고와 사상, 러시아적인 지평을 벗어나지 못하는 행위나 사고는 풍자와 비판의 대상이고, 그는 그런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기 위해 글을 쓰고, 문학세계를 창조해나갔다.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풍자와 비판을 하면서도 러시아적인 문학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이런 변증법적이고 모순적인 문학의 과정에서 그의 가벼운듯하면서 가볍지 않으며 현실적인 진중함을 가지면서도 풍자와 비판,유머가 생생히 살아 있는 독특한 글들이 태어난 것이다. 이것은 현실을 표현하면서 진중한 삶의 의미를 묻는 운문과 패러디 문학의 장으로서의 힘이 가득한 희곡, 풍자와 유머와 시종일관 흐르는 소설까지, 문학의 각 영역마다 서로 다른 스타일로서 나타나고, 이렇게 함으로써 푸슈킨 문학의 넓이와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가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푸슈킨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서구 작가와 예술가의 예술 작품들을 풍자하고 패러디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문학적 세계를 단지 러시아에 가두지 않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극시<루크리스의 능욕>을 패러디하며 셰익스피어 극시의 무게감과 처절함, 여성 정절의
지나친 강조와 셰익스피어의 순진한 역사 인식을 풍자하고, 가볍게 함으로써 새로운 창조를 이끌어낸<눌린 백작>, 괴테의 <파우스트>에
찬성하는 듯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파우스트의 한 장면>,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을 그린<모차르트와 살리에리>, 돈주앙 전설의 푸시킨적인 재 창조<석상 손님>에서 그의 그런 모습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러니까 표면적으로 가벼운 듯이 듯 이는 것은 푸슈킨의 실험성과 가능성의 모색 때문에 그런 것이고, 표면을 넘어서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 국가와 민족 문학의 틀을 모색하고, 창조해나간
창시자로서의 아우라가 후대 작가들이 범접할 수 없게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우라를 가진 작가가 문학적 토양을 만들었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