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 핀터가 1975 년 4 월에 아무도 살지 않는 땅 (N o Man's Land) 을 무대에 올렸을 때 그의 극작 활동은 절정에 달했다는 정평을
받았다. 오스틴 퀸글리 (Austin E. Quingly)는 오스본 웨스커 , 심슨,아든 , 베케트 (Osborne, Wesker, Simpson, Arden, Bechett) 까지도
극작가로서 점차 시들어갈 때 핀터만이 꾸준히 학자나 비평가 관객 모두로부터 깊은 관심을 유도해낸다 ” 라고 그의 저서 ‘ 핀터의 문제
(Pinter Problem)’ 에서 논평하고 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은 2막의 짧은 극이다. 무대는 60대의 성공적인 작가 허스트(Hirst)가 사는 런던의 북서쪽에 위치한 집이다. 어느 여름 날 허스트는 술집에서 만난 동년배의 남자 스푸너(Spooner)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두 사람이 만나는 첫 장면에서 스푸너는 말이 유창하고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으로 보인다. 초라한 행색의 이 이방인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면서 허스트의 환경에 대해 무척 알고 싶어 한다. 허스트는 취했음에도 계속해서 술능 마시는 가운데 약간 까다로운 듯한 말씨와 단음절의 어휘를 구사한다. 스푸너는 자신을 초대한 사람이 덜 친절하다는 것을 의식한다.
제가 당신에게 이렇게 깜짝 놀랄 정도로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건 당신이 매우 과묵한 분이어서 예요. 그런 점이 맘에 들기도 하고, 게다가 당신은 저에게자신을 시인으로 소개하는 스푸너는 사람들로부터의 무관심으로 인해 오히려 안식과 위안을 얻는다면서 인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손익과 무관한 독립적인 내면의 힘을 강조한다.
저는 한번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바로 거기에서 제 힘을 얻는답니다. 당신은요? 한번이라도 사랑을 받아본적이 있으세요?
사랑받을 필요성에 대해 포기의 시각으로 보는 듯한 스푸너는 감정으로 매어있지 않는 것이 유리한 것임을 주장하기 위해서 한 말이다.
스푸너 : 당신이 제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까봐 얘기지만,제가 강조하려는 건 제가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 말에 대해 허스트는 이렇게 대답한다.
허스트 : 우리 집에 자유로운 사람이 있었던 건 오래 전이지요.
스푸너 : 우리라고요?
허스트 : 저 말이에요.
스푸너 : 또 다른 분이 있나요?
허스트 : 또 다른 뭐요?
스푸너 : 사람들이요, 사람말이에요.
허스트 : 어떤 다른 사람이요?
허스트는 이 대화에서 자신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과 이 집에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있음을 처음으로 암시한다. 허스트는 스푸너의 질문에 대답을 회피하지만 우리들은 스푸너의 자유를 제재하는 사람들이 있음능 의심하게 되고 공포의 느낌을 가지게 된다.
스푸너가 희미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때 그는 시인들에게 친구요 조언자가 되었고 자신의 부인과 더불어 목가적인 시골집에 그들을 초대했던 추억들을 되새겨 본다. 허스트 역시 자신의 시골집 잔디밭에서 방문객에게 차 대접을 했노라고 중얼거리면서 옛날을 회상하는 대화를 나눈다.
스푸너 : 털어놔 보세요. 얘기해 보시라고요. 당신은 방금 뭔가를 드러 냈어요. 당신의 과거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셨어요. 우리는 뭔가를 공유하고 있어요. 시골 생활에 대한 추억 말이에요.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영국인이잖아요. ( 사이.)
허스트 : 마을 교회 들보에 처녀인 채 죽었다고 알려진 그 교구의 젊은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화환들이 매달려 있지요. (사이.) 그런데 그 화환들은 처녀들에게만이 아니라, 흠 잡을 데 없이 삶이라는 더럽혀지지 않은 젊은 시절을 보내고, 결혼하지 않은 채 죽은 모든 사람들에게 바쳐진 것이지요.
시골 별장의 잔디밭에서 차를 나눈다는 것은 두 사람, 스푸너와 허스트에게 잊혀졌던 전원에 대한 추억과 순수했던 시절의 이미지인 것이다. 스푸너가 허스트에게 한때 결혼했었던 부인에 대해 묻자 허스트는 “무슨 부인이요? 라고 되물으면서 자신의 안경을 스푸너에게 내던진다. 그런 후 술김에서 벗어나려고 무척 애쓴 후에 이렇게 고백한다.
허스트 : 여보세요...오늘밤... 당신은 경주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절 찾아냈어요. 오랫동안 전 달리는 걸 잊고 있었어요. ( 사이.)
스푸너 : 은유로군요.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허스트의 내면의 세계로 들어간 것 같은 느낌에 스푸너는 자신을 허심탄회하게 친구의 모습으로 드러낸다. 그때 허스트는 처음으로 이 극의 타이틀에 관련해서 언급하게 된다
허스트 : 싫습니다. (사이.)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은...움직이지도... 변화하지도...차차 나이 들거나 하지도 않지요... 영원히 얼음같이 싸늘하고... 침묵한 채로 있지요.
이렇게 말을 한 허스트는 마룻바닥에 쓰러진다.는 낯선 사람이고, 매우 친절하기까지 하니까요.
제목 ‘아무도 살지 않는 땅’ 은 런던의 북쪽 성벽 밖에 있는 처형장소로 쓰였던 작은 터로 이제는 사장된 땅인 것이다. 죽음이 있었던 사회적으로 소외된 곳이 ' 아무도 살지 않는 땅' (No Man's Land)이다. ' 아무도 살지 않는 땅' 은 변화가 일지 않고 싸늘한 채로 남아 있으며 죽음과 관련되어 있어 사회로부터 소외된 땅인 것이다. 죽음이 서려있는 이 땅은 그러나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다. 이 극의 서두에서 “As it is”라고 한 말과 극의 종료부에서 "I will drink to that” 이라고 한 대화에서 직감하듯이 ' 아무도 살지 않는 땅' 은 변화할 수 없는 정신적으로 마비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핀터는 허스트를 통해 정신적으로 정지된 구조로 인해 창작력을 상실 한 한 예술가의 정신세계를 극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연극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술을 계속 마셔대는 허스트는 알콜 환자다. 그가 술을 계속 마시는 이유는 자신의 삶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술을 마셨을 때의 의식상태는 작가가 비이성적으로 창작에 임할 때 도출되는 의식적인, 또는 무의식적인 식역상태
(자극에 대하여 감각이나 반옹올 일으키는 경계. 외식작용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경계.)와 유사한 것이다. 허스트에게 나타난 스푸너는 허스트의 과거를 반영하는 화신으로서 허스트가 삶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계속 마시는 술의 작용 때문에 출한한 것이다. 허스트가 정신적 마비에 빠져든 것은 자신의 과거인 스푸너를 거부하고 현재의 분신인 포스터(Foster)와 브릭스(Briggs)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스트는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아로 분열되어 있고 과거와 현재가 단절된 상태로 병행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과거를 부정하는 허스트는 삶과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될 수 밖에 없다. 스푸너의 만남은 표면적으로는 예의를 갖추지만 그가 허스트에게 접근할 때 자기가 어떠한 존재인가를
알리기 위해 다변하게 되고 이를 방어하는 허스트는 짧은 단음절로 응답하는데 사실상 대화 이면에는 긴장과 불안감이 짙게 깔려 있다.
스푸너의 다변에 반해 허스트가 짧게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은 스푸너에 대해 계속 호기심을 가지고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중거다
"Did it really?”, "The same drink", "What did he say?" 등의 의문문에 잘 나타난다.
스푸너는 허스트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직접적, 간접적으로 알린다.
스푸너 : 그리고 전 오늘 밤 같은 술집에서 당신을 만났지요, 비록 다른 테이블에서였지만 요.
사이.
허스트 : 뭐라 말할 수가 없군요.
스푸너는 허스트의 내면 세계에 생명력을 소생시키려 노력했으나 계속 실패한다. 스푸너는 허스트의 한때 생명력이 숨어 있었으나 지금은 사장된 땅이 되어버린 정신세계에 햇빛을 비추기 위해 온갖 투쟁을 하지만 "betwixt twig peeper”로서의 스푸너가 가지고 있는 결점 때문에 허스트를 본래 삶에서 이탈시키지 못하고 만다. 한편 스푸너를 수용해야 하는 허스트의 아는 스푸너에게 무관심을 보이면서 그의 접근을 제기한다.
아니야. 자네는 아무도 살지 않는 땅에 있는 거야.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도 않고, 더 나이를 먹지도 않는, 영원히 얼음에 뒤덮이고 고요한 채 남아 있는 곳 말일세.
허스트는 이제 그의 마지막 과업을 끝마쳐야 한다. 그 과업이란 그에게 고통을 일깨워 주는 스푸너를 내쫓는 일이다. 스푸너는 밀려나지 않기 위해 온갖 애를 쓴다. 그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다해야 한다. 그러나 허스트는 더 이상 그 어느 누구에게도 그의 내면세계를 엿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는... 어떤 살아있는 영혼도...침범한적 없는...혹은 침범할 수 없는 장소들이 있어.
핀터는 이 세계에 빛이 소멸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무대 위의 조명을 소등시킨다. 버나드 듀코어(Bernard Dukore)는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을 핀터의 한 시기를 마감하는 작품으로 새로운 면을 보여준 극이라고 평한다.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은 어떤 면에서 작가의 초상화 일 것이라는 평도 있다. 한 작가가 자신의 창작 능력을 되살리려고 끈질기게 노력하는 가운데 겨우 회복한 상상력을 통해 보여진 세계에 환멸을 느끼면서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으로 이 극은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