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나탈리 사로트 ' 여기 있잖아요'

clint 2025. 5. 6. 11:36

 

 

작품에는 3명의 남자(남 1, 2, 3)와 1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남2'는 '남1'과 토론할 때, 동업자이자 동료인 '그녀'가 암묵적으로 

반대하며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다. 

그는 그녀의 침묵에서 파괴적인 위협을 느낀다. 그녀의 생각은 

'여기, 그녀 안에 머물지 않고' 곳곳에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2'는 그녀의 생각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지원군처럼 등장한 

'남3'과 함께 그녀를 설득하려고 하는데, 객석으로부터 '불관용'이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 뭉치가 날아온다. 동료에게 제 생각을 관철하려는 

'남2'... 그는 과연 불관용의 대명사일까? 언뜻 보기에 그렇다. 

남자는 여자를 진정한 친구이자 동료, 동업자라 말하면서 칼자루를

쥐고 있다. 또한 여자에 의하면 '남2'는 다른 사람이 소신발언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상대의 귀에 대고 막무가내로 소리치거나 직접 찾아가

설득하고 회유하려는 모습,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녀의 생각을

근절시키려는 태도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직장내 폭력행위는

불행히도 현재 진행형이어서 전율을 일으킨다.
그런데 작품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남2'는 상호이해를 위한 대화의 

필요성을 계속 요구하지만 그녀는 회피하고 거부한다. 

우리는 그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남2'에 따르면, 사람들이 주입한 위험한 생각이다. '남'은 이러한 생각이 

과거에 그랬듯이 인류에 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고 

무심히 앉아있는 관객에게 호소한다.

작품은 관용과 불관용의 대립에서 맹목적인 군중과 깨어있는 소수의 대립으로

중첩된다. 이러한 대립은 상반된 생각이미지로 나타난다.

외톨이가 된 '남2' 와 '남3'의 생각은 위험에 노출된 여린 새싹들이 아이처럼

자라나는 모습이나 반짝거리는 잠자리, 아름다운 나비로 비유된다.

반면 그녀의 생각은 수많은 사람들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더러운 보아뱀 또는 파쇄기로 비유된다. 자유롭게 뛰놀고 날아가고 싶은

'남2'와 '남3'의 생각은 구석에 웅크리고 숨어서 공격하는 그녀의 생각에 의해

가차 없이 짓밟히고 만다. 도입부에서부터 과격한 기득권의 표상 같던 '남2'는

이제 백기를 드는 연약한 목소리에 불과하다.

'남2'가 비난했던 그녀의 거짓 생각에 그의 진실은 맥을 못추게 된다.

하지만 작품은- 다시 한번 관객의 새로운 해석을 유도하듯-

진실의 힘을 믿는 '남2'의 대사로 막을 내린다. 

 

 


빛과 어둠의 대립, 무대가, 세상이 어둡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진실의 무게. 아니, 육신의 소멸을 통해 비로소 가능한 진실의 승리... 작가 스스로 자서전적인 측면을 인정했듯이 인종주의, 전체주의, 전쟁의 부조리에 대한 생각이 작품에 녹아있다. 하지만 양분된 이념의 대립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남2'는 진실의 수호자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독단적이며, 무엇 때문에 등장인물이 대립하는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또한 '남2'는 다른 사람들이 그녀에게 생각을 주입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녀는 그의 '진실'을 그냥 말없이 받아들이는데 그걸로 충분하지 않냐고 반박한다. 따라서 옳고 그름의 잣대로 등장인물을 평가할 수 없다. 우린 무엇이 진실인지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지나칠 수 있었던 그녀의 침묵이 '남2'의 마음에 불편함을 일으켰고, 그의 내면에 파장을 몰고 왔다는 점이다. 그녀의 생각을 파헤치고 잘못을 인정하게 하려고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의 생각은 그의 생각을 붙잡아서 질질 끌고, 끈적끈적한 침으로 뒤범벅해서 으깨 버린다. 아니 그런 상상을 한다. 왜냐하면 '남2' 스스로 인식했듯, 짧은 몽상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언어로 표출하기 전에 사라져버리는 외부자극에 대한 내면의 미묘한 변화를 비유적 이미지로 천천히 클로즈업하는 사로트만의 독특한 작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1980년 기차역을 개조한 오르세 극장에서 초연되었을 때 연출가 클로드 레지(Claude Régy)는 언어에 집중하고 단어로 표출되기 이전과 이후의 느낌을 살리면서 다양한 의미가 분출될 수 있도록 고심했다고 한다. 반면 1993년 비외 콜롱비에(Vieux-Colombier) 개관작으로 선정된 자크 라살(Jacques Lassalle)의 공연에서는 롤랑 베르탱(Roland Bertin, 남2역)과 크리스틴 페르센(Christine Fersen)의 생동감 있는 연기가 호평을 받았다. 라살에 의하면 사로트의 희곡은 배우가 온몸으로 연기해야 한다. 언어극을 넘어서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고, 때로는 분노를 일으키고, 때로는 침묵하게 하는 연극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전히 상반된 연출론에서 작품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문학성과 시사성이 어우러져 있고 관점에 따라 연출 방향이 달라지며 다중 초점도 가능해서 끊임 없이 재해석되는 작품이다.  

 

 

 

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

1900년 7월 18일 러시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했다. 옥스퍼드에서 역사를 공부한 뒤, 베를린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파리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그 후 파리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작품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1932년 《트로피즘(Tropismes)》이라는 첫 소설을 쓰기 시작해 7년 뒤인 1939년에 출판했다. 1940년 반유대 법률로 인해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 사로트는 문학에만 전념하기로 하고, 대표작 《황금 열매(Les Fruits d'or)》, 《저 소리 들리세요?(Vous les entendez?)》, 자전적 소설 《어린 시절(Enfance)》을 비롯해 많은 소설을 발표했다. 전통적인 소설 구조와 달리 내적인 생각과 감정, 그리고 그 미묘한 변화에 주목한 작품들이다. 누보로망(Nouveau Roman) 선구자 격으로서 추상적 문학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평가된다.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현대성과 혁신성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사로트의 특징적인 글쓰기 방식은 극문학 작품에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침묵(Le Silence)〉, 〈거짓말(Le mensonge)〉, 〈아름다워라(C'est beau)〉, 〈이스마(Isma)〉, 〈그녀는 거기에 있다(Elle est là)〉,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불리는 것(Ce qui s'appelle rien)〉 등의 희곡을 발표하며 프랑스 현대 연극사에서 혁신적이며 탁월한 극작가로 자리 잡았다. 1999년 10월 19일 파리에서 99세로 세상을 떠났다. 

 

나탈리 사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