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테네시 윌리암스 '이구아나의 밤'

clint 2025. 5. 5. 21:06

 

 

주인공 새논은 성직자이다. 하지만 '복잡한 여자관계'로 신도들의 의심을 받던 그는

미사 도중에 성질을 부리며 소리치는 바람에 교회에서 쫓겨나 멕시코 관광가이드로

힘들게 먹고 사는 인생이다. 하지만 그의 괴상한 성격에 조숙한 10대소녀 샬롯의

유혹에 그는 곤경에 처하게 되고, 이러한 위기를 모면하고자 옛 친구인 프레드가

운영하는 호텔로 여행자들을 안내한다. 그곳에서 새논을 맞이한 사람은 프레드의

아내인 육감적인 여성 맥신이었고, 프레드는 얼마전 사망했단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관광버스에 타고 온 학교 여교사 모임인 중년여성들,

매혹적인 10대 소녀 샬롯, 호텔의 여주인 맥심, 그리고 보조 가이드인 항크 등이었고

거기에 웬 90대 노인과 함께 나타난 고상한 분위기의 여성 한나가 찾아온다.

 

극단 여인극장 공연장면

 

이 작품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진다. 활달하고 육감적인 중년여성인 맥신이 운영하는 호텔에 도착하기 전과 도착한 후, 전에는 성직자였던 새논의 기행과 새논을 유혹하는 10대 소녀 샬롯 그리고 그런 새논에 분노하는 중년부인들을 다룬 여행자들 간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후에는 이야기가 급전환되어 사건보다는 '대사' 위주가 되며, 이들의 불꽃 튀는 연기와 대사 속에서 다른 배우들은 끼어들 공간조차 없어진다. 교회에서 쫓겨나서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으며, 미성년 희롱죄를 뒤집어쓰는 위기를 맞는다.
후반부의 내용은 섀논과 맥신, 맥신과 한나의 관계에서 다뤄지는 다양한 논의인데, 다른 분들이 지적하듯 그들의 논의들은 대화를 통한 내용이고 그 논의들도 사랑, 허무, 삶, 믿음, 신앙과 같은 추상적인 논의들도 많고 그 논의들이 매끄럽게 작품에 녹여지기 보다는 그저 대사로서 혹은 대화로서 다뤄지기 때문에 산만한 대화의 가득함 이상의 느낌을 만들어내진 못하고 있다. 그나마 발작적인 행동을 하는 섀넌에게 마치 신부-신자의 관계처럼 고백을 하도록 하고 스스로 과거를 고백하는 한나와 새넌의 대화는(새넌을 위로해주고 그의 복잡한 감정을 정리해주는 대화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이 갖고 있는 작품으로서의 힘 덕분에 그럴싸한 순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사랑과 존재에 대해서 삶과 믿음에 대해서 회의로 가득한 신부와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뭔가를, 신에 관한 뭔가가 아닌 어떤 신적인 뭔가를 깨닫게 하는 한나를 통해서 허무와 회의라는 수렁에 빠져든 섀넌을 구원하고 무언가를 깨닫게 만드는 한나의 모습은 이 어수선한 작품에 무척 집중하게 만드는 순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늙은 시인이 완성하는 시와 함께 떠나고 싶지만 결국 머물게 되는 맥신과 어디에도 머물 수 없었지만 결국 맥신과 함께하기를- 머물기를 선택하는 섀넌, 다시금 떠날지도 모른다는 섀넌의 말에 자신이 알아서 잡겠다는 말로 서로에 대한 신뢰를 알려주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느껴지는 대화와 그런 그들의 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인지 혹은 그것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삶을 새롭게 꾸려나가려고 했기 때문인지, 머물지 않고 떠나기를 선택하는 한나의 모습에서 뭔가를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구아나의 밤은 철저한 '대사위주'의 작품이다. 그리고 종교적 문제, 삶의 문제, 인생의 문제 등 철학적인 주제를 던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바탕에 남녀 간의 로맨스가 함께 펼쳐진다. 10대의 철부지 같은 사랑부터, 세월의 아픔을 겪으며 성숙해가는 어른스런 사랑까지.. 철없고 당돌한 10대 소녀, 세상과 당차게 부딪치며 적극적이고 활발한 모습의 육감적 여인 가난하지만 지적이고 세련되며 차분한 모습의 고상한 여인 그리고 실패한 인생줄기를 살아가면서 이들 세 명의 여인들과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고집스럽고 독특한 정신세계의 남자. 무엇보다 테네시 윌리암스의 여러 작품들에서 늘 등장하던 '매우 상태가 안 좋은 주인공'이 여기서도 등장하는데 새넌이 그 역할이다. 하지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나 '로마의 애수' 처럼 탈출구가 없는 역할이 아니라 비록 방황하고 망가지고 피폐해진 삶이었지만 주인공이 머물러야 하는 '안식처'는 따로 있었다, 라는 비교적 해피엔딩 같은 결말을 내주고 있다. 결국 뭔가 부족하고 그래서 삶이 비어있는 사람들은 서로 구원해 줄 수 있다는 메시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의 철학이 녹아있는 이 작품은 '62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끄트머리에 이구아나를 풀어주며 마지막으로 명시를 남기고 운명하는 논노의 시는 오래 여운이 남는다.


절규도 기도도 절망도 없이
동트는 하늘을 오렌지 작은 가지가
조용히 바라본다.
때로는 어둠 속에 선명하지 않지만
활짝 핀 청춘은 이제 영원히
사라지고 또 하나의 삶이 시작되누나.
연대기의 아름다움은 안개 속에
묻히고 드디어는 부러진 줄기가
땅에 떨어지네
찬란한 존재의 속삭임은 가버렸으나
욕됨과 타락너머
푸른 싹트네.
절규도 기도도 절망도 없이
동트는 하늘 아래
열매가 맺네.
황금의 나무는 없어졌으나
두려움에 떠는
내 마음 속에 용기여
영원히 집 지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