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해롤드 핀터 '그리운 옛 시절'

clint 2015. 11. 12. 20:31

 

 

 

 

 

 

흔히 말하기를 핀터의 극은 매우 난해하다고 한다. 그의 극은 다른 부조리 극작가들과는 달리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무대를 직접 대했을 때, 너나 할 것 없이 혼돈과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말하자면 핀터의 극중 인물들은 다른 부조리 극작가와는 달리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리고 주로 방을 중심으로 하여 드라마가 펼쳐지는 상황 역시 추상적인 배경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성이 농후하다. 그 뿐만 아니라 극중 인물들의 대화도 그렇다. 흔히 쓰이는 일상적인 언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화 속에는 형식논리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모호성과 혼돈이 있으며 긴장감과 위협감이 김돈다. 두말 할 나위도 없이 이 모호성은 핀터의 작품 세계를 뚫고 흐르는 육성임에 틀림없다. 핀터의 모호성은 무엇보다도 그의 독특한 언어구사 법에서 기인된다고 볼 수 있다.
핀터의 언어는 전통적인 연극의 대사와는 두드러지게 이질적이다. 서술적이고 설명적이 아니라 극적 상황 속에서 극중 인물들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를 기조로 그들의 상호 관계와 그들이 처한 리얼리티를 노출시켜 주는 구실을 한다. 바꾸어 말한다면 핀터의 작중인물들은 한결같이 상대방 에게 위협감을 주려고 한다. 그 까닭은 자기 자신을 방어해 보려는 의도에서다. 그래서 작중 인물들은 여러 가지 형태의 언어를 서슴지 않고 구사한다. 어디까지나 상대방을 억누르고 지배하려는 목적과 수단으로서 주고받는 대화가 전개되어 갈수록 위협감과 모순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이해해야 될 점은 핀터 자신은 우리로 하여금 단순히 혼란 속에 빠뜨리기 위한 작위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모순과 혼란이 뒤섞인 그들의 대화는, 즉 사물의 진실성을 말로서는 도저히 표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언어에 대한 불신감에서 초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핀터가 언어 구사에 있어서 반복이나 다변, 독백을 즐겨 사용하고 있는 것은 상대방을 사로잡기 위해 그리고 극적 효과를 조성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 언어가 의사소통이 끊긴 그리고 무의미한 좌절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언어란 이미 서술이나 설명의 극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며 진실을 발굴하는데 아무런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냉엄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편터 작품에서 우리에게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다면 그 작품 속에 자주 나오는 『침묵』이라 하겠다. 핀터에 있어서 침묵의 극적 기능은 단순히 그 침묵 자체로부터 아무런 뜻도, 어떠한 암시도 상징도 없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침묵은 극중 인물 상호간의 복잡하고 미묘한 갈등을 표현해 줄 뿐만 아니라 암시와 상징의 역할까지 하여 극적 효과를 더욱 강도 있게 높여준다. 즉 침묵은 대사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 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액션의 기능까지 한다. 핀터가 의식적으로 구사하는 언어는 삶의 부조리와 인간존재의 무의미를 나타내는데 절대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 핀터는 이처럼 상투적, 일상적인 언어 구조를 파괴하고 있다. 그는 재래적인 언어구조를 허물어뜨림으로써 새로운 극형식과 세계를 창조해 나가는 전위성을 띤 극작가이다. 그러한 핀터 특유의 언어 현상은 그의 처녀 단막극<방〉에서부터<그리운 옛 시절〉에 이르기까지 모든 그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운 옛 시절〉은 1971년, 비상한 연출 역량을 갖고 있는 피터 홀 연출 밑에 런던의 올드위치 극장에서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에 의해 초연됐다. 핀터는 〈그리운 옛 시절〉 에서도 그의 기본 주제의 하나인 아이덴티티의 붕괴 문제를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케이트의 옛 친구인 안나가 20년 만에 케이트의 가정을 방문함으로써 이 극은 열기를 띠며 전개되어 간다. 안나와 케이트, 그리고 케이트의 남편 디일리는 한자리에 앉아 흘러간 옛 시절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 극이 절정에 이르러서 디일리는 20년 전에 안나 와 교제해온 여자란 것을 상기하게 되나 실은 그때 여자가 자기의 아내 케이트인지 혹은 안나 인지를 구별 못하게 된다.
디일리는 기억의 혼돈 속에 빠지고 만다. 특히 핀터적인 수법이 가장 치밀하고 효과적으로 연극성을 빚어내는 장면은 세 사람이 노래를 주고받는 장면이다. 노래의 가사에 의미가 담겨 있지는 않지만 긴장감과 위협감을 암암리에 관객으로 하여금 느끼게 한다.

 

 

 

'그리운 옛 시절' 에는 디일리, 그의 아내 케이트, 케이트의 친구 안나 등 모두가 40대인 세 사람이 등장한다. 디일리는 적대적이면서도 방어적이고, 안나는 사교적이며, 케이트는 내성적이며 수동적이다. 극의 묘사는 사실 적이지만 개조된 시골 농가를 배경으로 최소한의 무대장치나 액션만이 쓰이고 있으며, 극의 구조는 지능을 요하는 경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경쟁자들의 전략은 과거를 이용하는 것이며, 그 상은 케이트를 차지하는 것이다. 극이 시작되면 케이트와 디일리에게 조명이 비치고, 두 사람이 케이트의 20년 전 친구인 안나의 방문을 기다리며 디일리가 아내에게 안나에 대해 묻는 것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그러나 관객은 안나가 이미 창가에서 희미한 빛을 받으며 움직이지 않고 서있는 것을 목격한다. 핀터는 이러한 안나의 모습을 통해 그녀가 이미 거기에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치 않는 것을 묘사한다. 즉 순수하게 사실적인 차원에서 그녀는 거기 존재치 않지만 관객에게는 보이며, 또 케이트와 디일리가 그녀에 대해 말할 때 케이트의 기억과 디일리의 현재의 상상 속에, 그리고 두 사람이 곧 결합될 미래에도 안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극의 첫 부분에서 반쯤 조명을 받으며 움직이지 않고 서있던 안나는 몇 분 뒤에 돌아서서 무대 앞쪽으로 옮기고, 그녀의 첫 대사는 케이트와 그녀가 젊었을 때 런던에서 함께 보냈던 생활을 회상하는 것이다. 안나와 함께 문자 그대로 과거가 디일리와 케이트 부부의 현재로 침입해 들어온 것이며, 관객은 이런 안나를 통해 과거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나 미래와 교차해 존재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디일리는 안나가 런던에서 케이트와 친밀하게 지낸 것에 대한 회상이 레즈비언적인 관계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디일리는 비록 그것이 과거의 일이라 해도, 그의 결혼생활과 케이트의 애정에 대한 자신의 소유를 위협하는 것으로 인지하고 불안해하며, 그런 과거를 지우려 한다. 여기서 케이트를 놓고 자신의 감정적 유대의 우월함을 입증하려는 디일리와 안나의 갈등이 시작되고, 각자 다른 이의 회상을 도용하려 한다.
이 극에서 환기되고 있는 과거에 대한 회상은 「오드 맨 아웃」을 보러 극장에 간 것, 주점과 파티에서 있었던 안나와 디일리의 만남과 그가 거기서 그녀의 치마를 올려다본 것, 밤에 안나와 케이트의 아파트를 방문한 남자에 대한 회상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회상 중 어느 것도 명확하지 않고, 입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여기서 핀터는 기억의 주관적 속성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안나와 디일리가 케이트를 놓고 전투를 벌이는 동안 케이트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다 1막 끝에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게 놓아두고 목욕을 하려고 퇴장한다. 여기서 목욕은 케이트가 그녀를 추구하는 두 사람 중하나 혹은 둘 다 로부터 스스로를 정화하려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후 2막에 이르러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수동적이었던 케이트가 두 사람의 언쟁에 합류하면서 둘이 그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보다 그녀가 둘에게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음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디일리와 안나는 케이트가 목욕한 후 그녀의 몸을 어떻게 닦아줄까 하는 문제를 논의하지만 그녀가 이미 스스로 몸을 닦고 목욕용 가운을 입은 채 등장함으로써 그들의 의도 자체를 무효로 만들어 버린다. 더구나 케이트는 과거에 대한 회상에 있어서 때로는 디일리 편을 들고, 때로는 안나 편을 들면서 자기를 차지하려는 두 사람보다 감정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신의 위치를 한껏 즐긴다. 마지막에 케이트는 그들이 함께 쓰던 방에서 안나가 얼굴에 오물을 뒤집어쓴 채 어떻게 침대에 누워 죽어 있었는지를 말한 후 자신이, 디일리를 안나의 침대에 눕히고 그의 얼굴도 또한 더럽히려 했지만 그가 저항하면서 대안으로 결혼을 제안했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게 되었음을 말한다. 케이트는 자신이 있기 전에 그 침대에 누가 누워 있었는지 묻는 디일리의 질문에 아무도 없었다고 대답함으로써 안나의 존재를 거부한다. 이러한 케이트의 마지막 일격은 그녀를 놓고 대결하던 안나와 디일리 둘 다를 무력하게 만든다. 디일리는 흐느끼며 모성적 위로를 원하듯 케이트의 무릎에 가서 눕지만 그녀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결국 그는 자기 의자로 돌아가 혼자 있게 된다. 케이트에게 스스로를 밀착시켜 감정적 자양분을 얻으려던 열망이 거부된 안나 또한 비슷한 고립을 경험한다. 궁극적으로 이 극에서 안나와 디일리는 회상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창조함으로써 그들의 현재 상황을 굳건히 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절망하는 반면 케이트는 이 둘의 이야기를 지배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냄으로써 두 사람보다 우위에 설수 있게 된다.
극이 처음 시작할 때 희미했던 조명이 끝에는 정반대로 완전히 켜져서 등장인물들이 이제 그들 상호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케이트는 앉아 있고, 디일리는 웅크리고 있고, 안나는 누워 있는 공간적 배치 역시 이 세 인물의 상대적인 지위를 시각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핀터는 안나, 디일리, 케이트가 각각 회상하는 기억 이미지들을 미궁처럼 얽히게 만들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검증 불가능하다. 다만 핀터는 세 사람이 각기 회상을 통해 과거를 재창조하는 것을 극화함으로써 과거는 결코 정적인 것이 아니며, 개인의 필요에 따라 재구축되어 본래의 자기에 이르는 한 방편이 될 수 있음을 환기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