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두 남자가 재판정에서 판사와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된다.
한 남자는 타자기를 대여하여 돈을 갚지 못하고 연체한 알란.
다른 남자는 알란에게 타자기를 대여해준 남자다.
두 사람은 판사 앞에서 옥신각신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타자기를 기차에서 잃어버린 것으로 결론을 내게 된다.
하지만 실상은 작가였던 알란이 자신의 작품을 작성하기 위해서
타자기를 돌려주지 않으려 한 것이다.
판사의 절충으로 결국 두 사람은 경찰서로 향하게 되고
경찰서에서 타자기를 잃어버린 것으로 분실신고를 하고
타자기 주인은 보험사로부터 돈을 받게 된다.
2막: 얼마 후, 자신의 소설을 쓰고 있는 알란의 집에 경찰이 찾아온다.
윗집 여자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되고,
위층에 사는 늙은 여자와 자기 어머니를 혼동하여 살해했을 거라는 혐의를
받게 된 알란은 꿈에서 늙은 여자를 살해했다고 말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아무것도 확실하게 기억해내지 못한다.
경찰은 유력 용의자로 알란을 지목한다. 아내도 처음엔 절대 그럴리 없다고
하나 알리바이가 없는 알란. 여러 정황상 불리하게 돌아가자 알란은
모두가 바라는 범행 사실을 시인하고 감옥으로 가게 된다.
3막: 감옥에서 평온함을 느끼고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는 알란.
크리스마스에 교도관 한센이 특별선물한 창녀 마이브리트가
알란의 방으로 보내게 되고 알란은 거부한다.
알란은 또다른 죄수 포올과 함께 자신에게 강요하는 한센을
교도소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교도소안에서 자유를 만끽하게 되는 알란
알란은 마이브리트와의 대화하면서 그녀와 진실한 교감을 나눈다.
그동안 자신이 느껴보지 못했던 자유라는 소중함을,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확신을 갖게 된 알란은 교도소 밖으로
나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한센은 그에게 총으로 쏘게 되고,
총을 맞으면서 알란은 진정한 자유이자 자아를 발견하게 되면서...
현실이라는 공간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며 살아가는 한 비현실주의자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진정한 자아(自我)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독특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현실은 사막. 알란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마치 배우처럼 역할을 바꾸어가며 나타나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배역에 갇혀 있는 인물들이다. 주변 인물들과 가족, 그리고 그들을 포함한 현실은 극사실적으로 묘사되지만 알란이 느끼는 비현실성을 초현실적 상황으로 이끈다. 현대사회와 존재에 관한 질문들을 무대 미학을 통해 관객에게 제시하는 작품이다.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덴마크 작가 엘링 옙센의 ‘이 세상에 머물 수 있게 해달라는 남자’는 타자기 한 대와 평온함만을 간절히 원하는 무명작가의 이야기다. 덴마크의 현대 희곡이 한국에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극은 첫 장면부터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시작한다. 몇 달째 타자기 대여료를 내지 못한 무명 작가 알란은 법원에서 만난 채권자(타자기 주인)와 판사를 향해 “이미 타자기 값보다 더 많은 돈을 대여료로 지불했는데 왜 타자기는 여전히 내 소유가 아니냐”고 따진다.
그는 윗집에 살고 있는 노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갇힌 후에도 “타자기 한 대와 평온함이 보장된 감옥에서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며 즐거워한다. 심지어 크리스마스 외출도 마다한 채 자신의 ‘감방’에 남고, 간수의 열쇠를 훔쳐 안에서 문을 잠그는 등 연극은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시종일관 관객에게 화두를 던진다.
작품 속 역설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알란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알란의 행동과 그가 던지는 질문을 곱씹다 보면, 관객은 ‘왜 여태껏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알란의 비현실성은 오히려 관습과 관행에 젖어있는 사회의 폐부를 찌르며 ‘진짜 현실적인 것’을 표현하는 장치로도 작동한다.
알란과 대조적으로 주변 인물은 극사실을 상징한다. 채권자는 대여료를 못 받는 대신 분실 보험금이라도 타내기 위해 알란에게 ‘타자기를 도둑 맞았다’고 경찰에 신고하게 한다. 돈을 주면 죄수와도 하룻밤을 보내는 창녀, 감옥을 나가고 싶어하는 동료 죄수 등 주변인물은 저마다의 욕구에 사로잡힌 갑남을녀의 모습을 나타낸다. 각각 1인3역으로 각 막에 등장하는 주변인들의 이름이 마이(1막), 브리트(2막), 마이-브리트(3막) 식으로 설정된 이유는 ‘다른 듯 같은’ 현대인들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무대도 현실과 비현실의 양단을 모두 담는 방식으로 연출했다. 사건이 전개되는 무대는 법원, 경찰서, 감옥 등 실재하는 장소지만, 무대의 테두리는 주인공이 처한 극한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사막으로 표현했다. 알란이 항상 휴대하는 타자기는 배경이 바뀌어도 계속 등장하는데, ‘현실과 비현실의 연결’을 주장하는 연극의 메시지를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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