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하워드 세클러 작 '9시의 우편배달'

clint 2025. 2. 6. 09:16

 

 

회사에도 안나가고 오직 9시에 배달되는 우편물을 기다리는 태드.

아침에 학교에 가는 딸에게도 선생이 할 얘기 있으면 편지로 보내라며 우표까지 준다.

이렇게 각종 서적, 가전품, 종교, 친구 펜팔 등 테드의 일상사는 오직 우편을 받기 위한

그 한가지에 귀착되어 있다. 아내 신시아는 도를 지나친 남편을 이해할 듯 하면서도

점점 더 심해지는 그의 행동에 우려를 느끼고 또 심한 말싸움도 한다.

각종 상품을 시켜도 받는 것에만 흥미가 있을 뿐 책을 열어보거나 상품을 사용하기 위함이

아닌 것을 알고 또 쓸데없는 돈을 낭비하기에 그렇다. 하지만 신시아는 남편의 행동에

표면적으로 져주며 대한다. 급기야 의사인 남편 친구 피터를 부른다.

그러나 그 역시 태드에 질려 손들고 간다. 그 친구에게 꼭 편지로 답해달라 하며 보낸다.

태드는 극중에서 말한다. 누구든 집착은 있다고. 돈에 집착하고 여자에, 종교에, 책에,

출세욕에. 자선사업에 뭔가에 집착하는데 자신은 단지 우편물 받기를 좋아 한다고..

그리고 언젠가 모든 세상사 의욕이 없을 때 정확히 9시에 벨을 울리고 배달되는 우편물...

그는 거기에서 인생의 기다림과 희망을 얻었고 또 자신이 아무런 노력을 안하면

영원히 한통의 편지도 못 받을 것 같은 소외심에서 뭔가 신청하고 편지로 글쓰고

매일 9시에 우편 배달부를 기다린다. 조금 늦었지만 우편배달부가 도착해 테드에게 한아름

전해주는 우편물은 그의 커다란 기쁨이다. 세상의 모든 걸 얻은 듯 좋아하며 끝난다.

 

 

 

 

편집광처럼 변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우편배달을 기다리는 주인공 태드로 비춘 하워드 새클러의 작품이다. 기계 문명이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복합적인 요인들을 초래하게 된다. 단순한 생활측면으로 볼때 삶의 이기가 될 수 있고 반면으로 정신적인 측면으로 볼때 노동의욕을 상실케 하는 불안적 요소로 변신할 수 도 있다. 이 미치는 영향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드린다. 이 극의 핵심은 기계 문명의 첨단을 치닫는 미국의 기계자 동화에 밀려나는 한 인간의 소외감을 생의 존재의식, 즉 자아의 생존가치를 외부 존재와 연결시키며 현실에 무력해진 자기를 구원해 보려는 한 소시민의 무기력한 생의 고투를 그리고 있다.

최근에는 우편배달이라는 수단이 다소 안 어울려서 그런지 공연되지 않고 있다. 카톡이나 e메일이 대신하니까. 우편 홈쇼핑이나 택배등 현재 세대들과 어울릴 수단으로 바꿔야 할까?

 

 

 

1969년 퓰리처상을 받을 정도로 미국 연극영화계에서는 그 작품성을 인정받고있는 작가가 하워드 새클러이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좀 일찍 죽은 그였지만(53세) 영화 죠스(스티븐스필버그 연출)도 그의 작품이고 The Great White Hope 등이 대표작이다. 하워드 새클러(1929생)는 연극 연출, TV 및 영화감독. 시인 등 다양한 재능의 소유자일 뿐만 아니라 극작가로서도 대단한 실력을 발휘, 브로드뒈이 데비작인 ‘위대한 백인의 희망’(68)으로 단번에 뉴욕극비평가賞과 풀리처상을 탔다. 자기는 백인이지만 흑인 권투선수 (최초의 흑인 세계헤비급 선수권자인 잭 존슨)와 그를 타도하려는 백인의 집요한 희망을 서사극 的으로 그려 간 것이 내용이다. 새클려는 그 이전에도 이미 여러 편의 단막을 썼는데 그중의 하나가 이 <9시의 우편배달>이다. 9시에 우편이 배달이 되지 않으면 자기는 끝장이 날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한 남자가 매일 겪는 生의 無力感에 대한 고투를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