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세일즈맨이란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장재민은
흘러간 세월만큼 변해버린 세상 인심과 노쇠해진 몸 때문에
월급은 고사하고 수당도 받지 못하는 힘겨운 처지에 있다.
과거의 화려했던 세일즈맨 시절과 행복했던 가정, 찬란한 성공을 꿈꿨던
자신과 아들의 환상에 젖곤 하는 재민에게 인도네시아 진주조개 채취로 큰돈을
벌어 성공한 형님을 따라가지 않았던 과거는 아직도 커다란 미련으로 남아있다.
아내 선희는 재민의 부쩍 늘어난 혼잣말과 자살시도를 걱정하고 오랜만에 집을
찾은 아들 동욱은 사사건건 아버지와 부딪치며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다.
재민은 젊은 사장에게 본사 직원 자리를 요구하지만 해고를 당하게 되고,
그날 저녁 화해를 위해 모인 레스토랑에서 사업자금 빌리러 갔다가 말도 꺼내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만년필만 훔쳐온 동욱과 재민 사이에 해묵은 감정이 폭발한다.
고등학교 시절, 패싸움으로 퇴학위기에 처한 동욱은 도움을 청하러 간 재민의
출장지 호텔방에서 아버지의 외도 상대인 미스강을 만나게 되고 그 충격과
배신감으로 대학을 포기하고 평생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온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며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재민의 잘못된 기대 탓이라고
토로하지만, 재민은 과거의 환상에만 빠져서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가슴 아픈 갈등 끝에 동욱은 집을 떠나고 재민은 가족에게 보험금을 남겨주기
위해 자동차 사고를 위장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초라한 장례식에 모인 가족들은 빈집만을 남기고 떠나버린 그를 회상하며
그의 꿈과 고통을 되새긴다.
작가 아서 밀러의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철저하게 이 용당하다가 끝내 정신분열증을 일으킨 한 소시민이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죽음으로 맞서는 비극을 너무도 핍진하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섬세하게 드러나는 가족들 간의 대립과 갈등, 역경을 극복해 보려는 가족들의 필사적인 노력을 탁월한 심리묘사로 전개했다.
「아버지」는 이 작품을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이야기로 동시대의 감성에 맞게 각색 했다. 1930년대 대공항시대에 미국인을 짓눌렀던 자본주의 경제의 공포가 현재 한국상황으로 대치되어 고용이 없는 경제발전이라는 한국사회 속에서 아버지 세대는 직장에서 쫓겨나고, 아들 세대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모순과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의 고민, 그리고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이 해체되는 비인간적인 이야기를 무대에서 보여준다. 과거와 꿈이 무너지는 현실, 하지만 놓을 수 없는 희망, 거칠게 부대끼고 미워하면서도 끝내 화해하는 가족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세상 아버지와 그 가족들에게 위로가 되고, 삭막한 이 사회에 사랑과 소통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탐욕이나 부패가 아니라, 그러한 부패와 탐욕을 뚫고나오는 건전한 자기 정체성이 사회적 제도화하는 유연성이다. 연극 <아버지>는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유연한 사고를 통해 사회적인 약자와 함께 살아나가는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1%의 행운을 위해서가 아니라 99%의 행복을 위한 자본주의의 따스한 얼굴을 사회적으로 드러내어 조금 이라도나약하고 소외된 사람들과함께살아나가는 길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번안- 김명곤의 글
나는 이 작품을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적 정서로 풀어내어 현대사회의 그늘 지고 소외된 대중들의 삶을 다루고 싶었다. 한 늙은 외판원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뛰어넘어 물질주의의 희생이 되는 한 인간과 그가 속한 현대사회를 되짚어 보고 싶었다. 이를 위해 원작의 많은 부분이 변형되었다. 아들 둘로 된 설정을 아들과 딸로 바꾸고, 인물들의 캐릭터나 배경이나 세부묘사 등에서 한국화를 위한 변형이 이루 어졌다. 특히 한 소시민이 겪는 고통과 좌절, 그를 둘러싼 가족 구성원의 대립과 갈등을 바로 나의 가족 또는 이웃의 이야기로 공감하게 하기 위해 현실에 밀착된 취재를 통해 장면이나 대사들을 수정 보완하는 작업에 오랜시간 공을 들였다. 원작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과는 관객의 몫이다. 이 작품을 통해 이 시대의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눈물 한방울을 선사할수있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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