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이야기>라는 뜻으로 번역되기도 한 이 작품은 작가가 심혈을 기울였던
대표적인 소설로서 왕후, 귀족에서 남녀 하인들, 교황으로 부터 거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 계층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저자, 하루의 이야기 주재자, 화자, 작중 인물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중층적(重層的)인 대화의 세계를 전위적인 수법으로 그려낸 것이다.
이 소설은 1348년에 페스트가 무섭게 번진 피렌체에서 3명의 청년과 7명의 귀부인이
숲으로 둘러싸인 산장으로 페스트를 피해 숨어들어가, 어두운 현실세계의 근심을 잊기
위해 하루에 열 사람이 각자 한 가지씩 이야기하여 열흘 동안 100가지의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신을 경외하는 뜻에서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쉬어,
그들은 14일간 체류하며 오후의 가장 더운 시간에 그날의 주재자인 왕의 지명을 받아
이야기를 진행해 간다. 여성 중에서 가장 젊은 네이필레의 이야기는 천진스럽고
팜필로와 디오네오가 대담한 이야기를 하는 등, 이야기하는 사람에 따라서 내용과
리듬이 달라지고 등장 인물도 다양하지만 전작을 통해서 2개의 주제를 끌어낼 수 있다.
사랑과 지혜가 그것이다. 사랑을 주제로 한 이야기에서는 인간의 누를 수 없는 욕망이
냉정히 억제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위장되어 표현되기도 한다.
여기 발췌된 이야기는 첫날 세 번째 순서로 필로나가 들려준다.
화자의 지혜로운 답변이 화자를 위험에서 구해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이야기다.
보통은 장자를 중시하기 십상인데 여기 필로메나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부자 아버지는
아들 셋을 똑같이 사랑하다 보니 반지를 누구에게 물려주어야 할지 고민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다.
아버지는 전통에 따라 장자를 중시하지만 어머니 리브가는 동생 야곱을
절대 편애한다. 만약 이삭 가문에 그 중요한 반지가 있었더라면
리브가의 꾀로 반지는 틀림없이 야곱의 소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데카메론의 부자는 참으로 공명정대하다.
중동의 왕인 살라딘은 재정이 어려워지자, 멜키세덱이라는 돈 많은 유대인의
재산을 뺏으려 한다. 왕은 멜키세덱에게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중
어느 종교가 가장 우수하냐고 묻는다. 그가 어느 종교를 택하든
왕은 그에게 다른 종교를 모독했다는 죄를 물을 참이었다.
멜키세덱은 진귀한 반지를 유산으로 받고 싶어 하는 세 아들에 대한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는 진품 반지와 똑같은 모조 반지
2개를 만들어 아들들에게 주고, 어느 것이 진품인지 구별할 수 없게 한다.
아버지의 깊은 뜻을 헤아린 삼형제가 서로 우애 좋게 지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듣고 감동한 살라디노 왕은 멜키세덱에게 돈이 필요한 처지를
솔직히 고백한다. 왕에게 돈을 빌려준 멜키세덱은 왕과 친한 친구가 된다.
보카치오는 단테(1265-1321), 페트라르카(1304-74)와 더불어 14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등대로 간주되었다. 보카치오는 그리스 언어를 좋아해서 제목을 『데카메론』으로 쓴 것을 알 수 있다. Decameron은 deca("ten")+ meron("day")을 합친 복합어로 “10일은 등장인물들이 각각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간을 의미한다.
데카메론의 이 이야기는 통일된 철학적 사고를 드러낸다. 중세 때 흔한 주제인 "운명의 쳇바퀴”의 영향으로 인한 흥망성쇠가 주로 지배적이다. 단테의 신곡의 전통적 교육을 받은 보카치오는 이야기의 문학적 사건과 기독교 메시지의 연결을 다양한 차원의 알레고리로 보여준다. 그러나 『데카메론』은 단테의 모델을 사용하여 독자를 교육시키기 위함이 아니고, 교육의 방법을 풍자하여, 로마 가톨릭교, 신부들, 종교적 신념을 코미디의 자료로 사용하였다. 이는 흑사병 이후 나타난 역사적 경향으로 당시 널리 퍼져 있던 교회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었다. 신랄한 사회비판이 담겨 있는 이 책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문학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중세 영국작가 초서(1304?- 1400)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끼친 영향은 두드러진다. 이야기의 플롯은 보카치오가 원래 지어낸 것은 아니지만 중세의 원전에서 우화나 일화, 기담을 활용한 것이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돈과 재산/재물이 많은 부모는 고민이 많다.
자식들의 용틀임 하는 재산 싸움이 이 나라의 뉴스거리로 등장할 때가 제법 있다.
재산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재물 있는 곳에는 욕심이 있으니,
돈의 위력이 대단한데 이를 마다할 사람 있겠는가? 있다 한들 그 수는 극히 적으리라.
<데카메론>의 부자는 참으로 지혜롭게 이 문제를 풀었다.
중요한 결과는 누가 그 반지를 소유하느냐의 문제보다,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고
세 아들이 의좋게 잘 살았다는 형제애의 미담이 듣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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