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대장군 도안고는 권력에 눈이 멀어 조씨 가문의 멸족을 자행한다.
조씨 집안의 문객이던 시골의사 정영은 억울하게 멸족당한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씨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자식과 아내의 목숨마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낸다. 조씨고아를 아들로 삼아 정발로 키우고
이를 알아채지 못한 도안고는 긴 세월 동안 정영을 자신의 편이라 믿고
정발을 양아들로 삼는다.
그렇게 20년이 지나고 정발이 장성하자 정영은 참혹했던 조씨 가문의
지난날을 고백하며 도안고에 대한 복수를 부탁하는데...
원나라 시대의 잡극 작가인 기군상(紀君詳)이 사마천의 사기 조세가에 쓰인 조무의 일화를 재구성한 소설이다. 정식 명칭은 원보원조씨고아(寃報寃趙氏孤兒)이다. 작중시대 배경은 진(晉) 경공(景公) 3년(기원전 597년)부터 17년(기원전 583년)까지이다. 작가 기군상은 원나라 시기의 작가로, 오랫동안 중국의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조씨고아>를 잡극 형태로 엮어내었다. 이 외에도 6편의 잡극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씨고아> 외에는 전해지는 작품이 없다. 그러나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그는 “세계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비극”이란 평가를 받으면서 그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원나라 잡극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손꼽히며 18세기 유럽에도 소개된 바 있는 <조씨고아>는 지금도 중국을 비롯해 수많은 나라에서 연극과 드라마, 영화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춘추시대 진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조씨고아>는 전체 이야기의 반 이상을 ‘조씨고아’가 살아남게 된 과정에 할애하고 있다. 장군 도안고가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조 씨 일가를 간교한 계략으로 멸족시키는 피의 광풍 한가운데, 조 씨 집안의 유일한 핏줄인 사내아이를 살리기 위한 많은 이들의 희생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갓 태어난 아기를 정영에게 맡기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공주와 ‘의’를 위해 정영과 아이를 풀어준 채 자결한 한궐, 도안고의 눈을 속이기 위해 죽음을 택한 공손저구와 이 와중에 희생된 정영의 친아들, 그리고 아들을 따라 죽은 정영의 아내 등 수많은 인물들이 은혜를 갚거나 정의를 위해, 혹은 단순히 어린 아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죽음 이후에 무대에 남은 것은 얼떨결에 이 수많은 희생의 무게를 짊어지게 된 촌부 정영과 그 희생의 대가인 ‘조씨고아’뿐이다.
고선웅이 각색, 연출을 맡은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조씨고아가 아니라 그를 맡아 키워낸 정영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전체 이야기 역시 ‘부친 살해’나 ‘정체성 찾기’가 아니라 ‘보은’과 ‘복수’라는 테마로 모이면서, 특히 ‘복수’가 갖는 복잡 미묘한 의미의 결을 무대 위에 펼쳐낸다. 정영은 자신의 의지라기보다는 소박하게 은혜를 갚으려다가 얼떨결에 ‘조씨고아’를 떠안게 된 평범한 촌부다. 하지만 그 아이를 위해 차례차례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의인들의 죽음을 목도하고 그 희생의 무게를 짊어지면서, 결국은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필사적으로 이 아이를 살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친아들과 아내마저 죽어버린 그에게 이제 남은 것은 조씨고아를 키워서 그 수많은 이들의 원한을 갚는 것뿐이다. 원수 도안고 밑에서 조씨고아를 키우면서 정영은 오로지 복수의 날을 기다리며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아낸다. 그리고 마침내 장성한 조씨고아에게 그간의 사연을 들려주며 복수를 종용하고, 조씨고아가 그 말을 믿지 않자 자신의 팔까지 자르는 단호함을 보여준다. 결국 조씨고아는 정영의 말에 감복하고 도안고에게 칼을 겨눔으로써 복수를 완성한다. 악당 도안고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조씨고아는 자신의 이름으로 조 씨 가문을 복권시켰으며, 정영 역시 의인으로서 후한 포상을 받는다. 권선징악적 관점으로 보면 명백한 선의 승리이자 해피 엔딩이다. 그러나 여기서 극은 정색을 하고 질문을 던진다. 분명 복수는 성공했지만, 과연 그 끝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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