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방 도시에서 기묘한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교차로의 사각지대에서 한 운전자가 도로 위 보행자를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지만 이미 충돌을 피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무슨 일인지 차는 보행자 바로 앞에서 멈추고,
보행자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는다.
하지만 차량은 마치 투명한 벽에 충돌이라도 한 것처럼 크게 파손되고,
운전자는 경상에 그쳤지만, 조수석에 탔던 동승자는 중태에 빠진다.
보험조사원 요코미치는 이 불가사의한 사고를 재조사할 임무를 맡는다.
조사를 위해 사고의 목격자 여섯 명과 사고 당사자가 모인 자리에서
목격자 한 명이 새로운 주장을 펼치는데,
이 사고는 특별한 인간인 '도미노'가 일으킨 기적이라는 것이다.
황당한 그의 말이 점차 증명이라도 되듯 기묘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연극 <함수 도미노>는 <산책하는 침략자>, <태양>, <하늘의 적> 등 SF적인 상상력으로 독특한 세계를 선보이는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작품으로, 2005년 일본에서 초연된 후 현재까지도 활발히 상연되고 있다. 마에카와 토모히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인간의 관계, 일상을 뒤집어 볼 때 나타나는 세계를 배경으로 인간 심리를 그려내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로, 2010년 제44회 기노쿠니야 연극상 개인상, 2010년 제17회 요미우리 연극대상 우수연출가상 등을 수상하며 일본 문단에서 문학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2024년 산울림소극장 한국 초연된 작품이다. (이기쁨 연출)
의문의 교통사고 목격자 6명이 자신이 직접 본 사고에 대해 그 누구도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데서 출발한다.
목격자 중 한 명인 마카베는 특별한 힘을 가진 ‘도미노’라는 존재가
사몬 모리오이기 때문에 이 기적적인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모리오는 동생이 다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랐고, 도미노의 힘이 작동해 차만
박살 났다는 것이다.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기묘한 일들이 연달아 벌어지며
“f(모리오)=도미노”라는 함수를 증명해내기 위한 노력이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절묘한 반전이 있다.
작가의 말
<함수 도미노>가 한국에서 공연되어 매우 기쁩니다. 알마출판사, 그리고 공연에 힘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함수 도미노>의 초연은 2005년이었지만, 이후 공연을 올릴 때마다 수정을 거듭해 2014년에야 지금의 형태로 정리되었습니다. 제가 연출한 가장 최근 공연은 2022년 공연으로, 이때에도 부분적으로 각색을 더했습니다. 이번에 출간하는 한국어 대본은 2014년 상연대본을 정본으로 삼아, 2022년 상연 대본을 반영해 새롭게 완성한 것 입니다. 이 작품을 공연할 때마다 "이건 바로 내 이야기다”라는 관객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이야기의 열쇠가 되는 '도미노'라는 아이디어가 세대를 넘어 공감을 얻는 모습을 지켜봐왔습니다. 극중 묘사되는 도미노의 힘은 황당무계하지만 신기하게도 리얼리티를 느끼게 해줍니다. 아마도 이 설정이 질투나 피해망상, 자존심의 위기, 르상티망(니케의 언어. 약자가 강자에게 느끼는 원한 섞인 복수심, 분노, 질투 등의 감정을 말한다.)과 같이, 누구나 사로잡혀본 경험이 있는 감정과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마카베처럼 될 수 있겠지요. 이 이야기를 쓸 때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제 마음속에 깊이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마저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예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수정을 거듭할 때 마다 도미노라는 설정이 가진 또 하나의 테마가 명확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믿음'에 대한 것입니다. '기적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의 문제죠. 우리는 언젠가부터 잘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무언 가를 믿는다는 것이 어리석은 행위라고 생각하게 된 겁 니다. 적어도 일본인은 그렇게 되었다고 느낍니다. 한국 은 어떤가요? 우리는 지금, 과학적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 만을 믿으면서도 가짜 뉴스에 놀아나고 필터버블(알고리즘이 인터넷 이용자를 분석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함으로 내 이용자의 생각과 가치관이 마치 거품 속에 고립되는 것 같은 정보 환경을 가리킨다.)이나 에코체임버(SNS에서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끼리 교류하여 특정의견이나 사상만이 강화되는 정보현상을 의미한다. 선호에 맞지 않은 정보는 차단되기 때문에 확증적 편향을 강화시키며, 양극화 현상을 부추길 수 있다.)에 휘둘러 스스로 객관성을 잃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개인과 사회, 나와 타자, 그 사이를 직접적으로 이어주는 '믿음'의 감각이 저 멀리 떠 나가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극 중 마카베와 사와무라가 해석하는 도미노의 힘은 참으로 대조적입니다. 기적은 좋은 일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마카베의 의견도 기적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하 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려는 사와무라의 마음가짐도 모두 공감이 됩니다. 우리는 다들 그렇게 흔들리며 살고 있겠지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이 떠오릅니다. "인생에는 두 길 밖에 없다. 하나는 기적 따위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사는 길이고, 또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길이다."
이 작품이 한국에 계신 여러분께 어떻게 닿을지 무척 기대됩니다. - 2024년 가을 - 마에카와 도모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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