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지하 마당극 '밥'

clint 2024. 11. 25. 06:11

 

 

 

작품 '밥' 은 생명력의 순환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세가지 다른 이야기로 꾸민 마당극이다.

첫째마당 '똥은 밥이다' 는 농부가 등장하여 농사가 천하지대변이 되어버린 농촌의 현실을 비판한다. 자연조건마다 맞아떨어지지 않고 비료, 농약으로 땅이 병들어 갈 뿐이다. 농부는 농산물 유통구조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 직접 서울로 자신의 무공해 쌀을 팔러 떠난다. 하지만 꽉 막히고 순환되지 않는 현실을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진실로 땅에게 필요한 것이 거름인 것을 깨닫고 땅에게 똥을 주어 땅을 도로 일으켜 살려내는 춤으로 막을 내린다.
둘째마당 ' 식사가 제사' 는 고대 선사시대 유물이 발견된 경기도 이천군 앵산면에서 보도진들과 각계각층 인사들, 동네 주민들이 몰린 가운데 생방송이 진행된다. 당국의 대표, 교수, 무당, 목사등이 모여 유물의 정체를 밝히고자 애쓴다. 그들은 유물을 자신의 입장에서 정체를 규정짓는다. 끝내 유물의 정체는 밝혀지고 그 솥으로 밥을 지어먹는 과정이 제의적으로 표현되며 막이 내린다.
셋째 마당 '나는 밥이다' 는 감방을 배경으로 죄수들이 신고식을 하는 과정에서 유언비어로 수감된 호구를 피고인으로 재판을 하게된다. 호구거사는 너는 내 밥이다라는 말로 사회를 혼란시켰다는 죄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때, 취침점호를 받게되고 재판놀이는 끝이난다. 호구는 밥이란 세상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기 때문에 함께 나누어 먹여야 하며 남의 밥을 빼앗는 사람을 나무랜 것 뿐이라고 최후진술을 한다. 이 셋째 마당은 독점, 독식 즉 밥이 돈으로 변해 돈이 순환되지 않고 어느 한 곳에서 박혀 버리는 데서 일어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밥>은 세 마당으로 구성되었다. 첫째마당 농촌의 실태 고발에서는, 자연과의 순화를 위한 유기농법의 필요를 강조하고 실적만을 앞세우며 이를 오히려 훼방 놓는 농촌의 관료 체제를 풍자하고 있다. 80년대 공연이 농촌의 경제적빈곤 실태를 강조했던 반면, 90년대공연은 생명사상에 근거하여 농촌의 공해문제를 보다 부각시켰다. 둘째 마당에서는 기성종교와 도덕이 갖는 권위주의와 허상성을 비판하면서, 밥이 생명의 근원임을 강조하고 있다.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될 정도로 관심을 보았던 한 선사시대의 유물을, 각 종파 지도자들은 각기 자신들의 소유임을 주장한다. 결국 텔레비전 중개가 끝나가도록 결론이 나지 않자, 명사들을 돌아간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이 가마솥이었음을 알고 밥을 지어 맛있게 나누어 먹는다. 이번 공연에서는 일회적인 센세이션만을 찾는 메스컴의 무책임한 보도자세가 아울러 강하게 풍자되었다는 것이 새로운 해석으로 느껴졌다. 셋째 마당은 감옥 안에서 벌이는 재판놀이를 통해서, 인간사회를 자연의 먹이 사슬에 비유하여 풍자하고 있다. 유언비어 유포죄의 한 소박한 노인을 통해 통제사회를 강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우리가 서로의 생존을 위한 ‘밥’임을 일깨우며 공존의 사회를 제시하였다. 이렇듯이 이번 공연도 여전히 소외된 계층의 편에 서서, 걸죽한 시사적 대사로 오늘을 통쾌하게 풍자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마당극의 여러 장점들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우선 관객에게 추임새 등을 훈련시켜서 참여를 유도하며, 배우들이 직접 관객에게 대사를 건넨다. 극중장소도 배우의 간단한 연기로 자유자제로 바뀌며, 여기에 관객의 의사가 반영된다. 또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기지에 찬 풍자적 재담이 막힘 없이 쏟아지고, 여기에 수준급인 풍물이나 소리의 멋도 더해진다. 한편 배우의 재빠르고도 다양한 역할 바꾸기도, 연기를 통한 연극적 재미를 더한다. 더구나 이번 공연은 기존 마당극에서 흔히 느끼기 쉬웠던 설익은 연기의 아마츄어리즘을 극복하고 있었다. 

 

 

 

 

십년이 넘는 오늘에 와서 다시 공연되어지는 <밥>은 농경 정착 문화의 구조적 파괴에 대한 80년대 비판적 지식인의 투쟁적인 담론이 아니라 김지하의 새로운 생명 문화에 대한 담론이 미래 사회의 공동체 문화의 또 다른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연출자의 믿음에서 출발했으며, 마당극의 완성된 연극적 양식을 세계의 열린 연극과의 교류를 통해 널리 알리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풍자와 해학을 통해 사회적 문제에 대한 참여와 연대의 목소리를 높여온 마당극은 형식과 내용, 그리고 연희자의 기능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표현된다. …… 넘치는 객석으로 반으로 줄어든 무대 공간을 절묘하게 휘저으며, 소리, 가락, 춤, 대사 전달, 변신의 오중주를 여유있게 울려 대는 이들의 흥과 재치는 실내로 들어온 마당극이 얼마나 멋들어지고 흥겨운 우리의 민중 예술인가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었다. 우리 말의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했고, 농촌 문제와 전통적인 우리의 유물론적 가치관에 대한 주장, 오늘날의 경제 논리에서 분배와 생산의 문제에 대한 우화적 접근이 가능했던 <밥>은 70년대 발표된 김지하의 <오적(五賊)>의 포효와 같은 질책이 90년대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구조의 한국적 상황을 향해 속삭이는 유머와 관용의 목소리로 느껴지게 했다. 세월은 분명 변했고, 시인의 음성도 달라졌다. 그러나 <밥>의 내용과 형식은 변함없이 민중의 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이 작품은 김지하의 이야기 모음집 <밥>을 발상의 근원으로 하여, 임진택이 연출한 마당극으로, 1985년에 연희광대패에 의해 초연된 후 해를 넘기며 100회 이상 공연되었고, 1990년대에는 길라잡이의 레퍼토리로 여러 차례 재공연되었다. 우선, 이 작품은 임진택 마당극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임진택은 마당극 운동의 첫 세대의 대표주자 중 한 사람으로, 마당극운동의 기본 정신과 원리, 마당극의 연극양식적 특성과 연출법 등에 대한 중요한 글을 남겼다. 이 작품은 <돼지꿈>(1977), <마스게임>(1978), <노비문서>(1979), <녹두꽃>(1980), <장사의 꿈>(1981), <공해풀이 마당극 - 나의 살던 고향은>(1984)년에 뒤이은 작품이다. 임진택의 마당극은 대사와 역할 바꾸기 놀이의 연기가 돋보이며 상대적으로 춤(혹은 춤적인 움직임)이 약한 것이 특징인데, 특히 대사는 지적인 언어유희와 풍자적 재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 관객은 대사와 연기 하나하나에 폭소를 터뜨리면 열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이러한 점은 <밥> 역시 예외가 아닌데, 특히 <밥>에서는 이전의 작품에서 써왔던 수많은 연극적 기법과 재담적 대사의 묘미가 다 모아져 화려하고 짜임새 있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작품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지닌 세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마당 ‘똥이 밥이다’는 화학비료와 농약, 비민주적 농정(農政)에 시달린 농민이 서울에 올라와 똥과 밥의 순환이 꽉 막혀버린 비인간적인 도시를 체험하고 귀향하는 이야기이다. 제2마당 ‘식사가 제사’는 귀중한 유물이 발견되어 이것의 정체와 소유권을 밝히는 생방송 프로그램의 중계방송을 하게 되나, 각계의 인사들 모두 그것의 정체를 밝히지 못하고 소유권도 갖지 못한 채 흩어지는데, 그 마을의 이름 없는 농민들이 그 유물이 다름 아닌 밥솥임을 알아보고 밥을 지어 먹는다는 이야기이다. 마지막의 밥을 지어 식사를 하는 대목은 식사가 경건한 의식임을 느끼게 한다. 제3마당 ‘나는 밥이다’는, ‘나는 밥이다’란 설법을 하다 감옥에 잡혀온 호구거사에 대해 같은 방 죄수들이 벌이는 재판놀이로, 밥의 독점이 낳은 사회모순과 이를 극복한 후천개벽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지하의 산문집 <밥>에 근거하고 있는 이야기의 큰 틀은 다분히 생태주의적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 세계 인식이 작은 장면 하나하나와 재담적 대사 하나하나에까지 관철되어 있지는 않다. 이 작품이 초연된 1985년에는 제5공화국 시대의 비민주적인 상황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드높았던 시기라, 생태주의적인 세계관보다는 오히려 비민주적인 농정, 경찰서장, 목사, 교수 등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의 꼴불견 행태, 말도 안되는 불공정한 재판과 민중의 고통을 가속화하는 지배세력 등에 대한 풍자가 훨씬 강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환경문제가 극심해져 근대산업문명 자체에 대한 회의가 높아진 1990년대에 공연할 때에는,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문명비판적 요소와 생태주의적 내용성이 더 돋보였다. 관중은 사면에 둥글게 포진해 앉힌 무대에서 단 5명의 배우가 퇴장하지 않은 채 수시로 역할을 바꾸며 연극을 이끌어가며, 악기 반주까지 이들이 모두 감당한다. 간단한 소품만으로 바뀐 상황을 제시한다거나 관중과 적극적인 재담적 대거리를 하는 등 당시 마당극의 중요한 기법들이 총동원되었고 잘 계산되어 짜여져 있다. 이 작품은 마당극사상 최초로 대학가의 장기 순회공연에 성공한 작품이다. 서울에서의 약 한 달 간의 초연을 마친 후 지방공연이 금지되는 등 수난을 겪었으나, 대학 초청공연으로 이어지면서 100회를 넘는 공연기록을 남겼다. 대학생들에게 적합한 지적인 재담과 빠른 속도, 짜임새 있는 구성, 소수의 출연자와 간단한 소품 등은, 이러한 대학 순회공연을 성공으로 이끈 주요한 원인이었다. 연극계 내의 상설 극장 공연이 그다지 편치 않은 마당극에, 장기 순회공연이라는 활동 방식의 첫 길을 연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큰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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