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대전 신탄진역 광장,
1994년 부천역 인근 중식당,
1997년 봄 국립마산병원,
그리고 2165년 달 우주선착장 대합실.
공연의 시간은 10년, 150년씩 뚝뚝 잘려 끊겨진 채 진행된다.
1984년 언니 순화는 방직공장 여직공이고, 동생 선화는 언니 덕분에
어렵게 여자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여고생이다.
동생 선화는 어려운 집안 형편을 걱정하며 학교를 포기하겠다고
결심하지만, 막상 큰 언니 순화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한다.
언니 순화도 말없이 터진 입술에 안티프라민을 바르며 수학여행을 가는
동생에게 하얀 운동화를 선물할 뿐이다.
다시 10년 후 금강제화에 다니는 남자친구에게서 하얀 하이힐 구두를
선물 받고 청혼을 받는 선화에게로,
1997년 마산으로 이사한 언니 순화가 암에 걸려 죽어가면서
선화의 둘째 아이에게 남기는 유아용 하얀 신발에게로,
누군가의 빈 신발들이 자꾸만 관객의 눈 앞에 밟힌다.
1997년에 뚝 끊긴 이야기가 2165년 168년 후의 이야기로 훌쩍 건너뛴다.
100년 후의 이야기는 달 우주선착장 대합실, 11년 간 달의 동쪽,
일명 '고요의 바다'에서 근무하는 기상관측소 여자 연구원의 이야기다.
여자 연구원 서윤지는 '100년 전 21세기 회고전' 메모리칩을 통해
다시 재연되는 이야기 속에서 비로소 1984년, 1994년의 이야기들이
왜 1997년에서 멈춰버렸는지 밝혀진다.
이 공연에 등장하지 않는 한 아이, 선화의 둘째 딸은 1997년생이고,
2014년에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다.
공연은 1백여년 후 달의 저편, '고요의 바다'의 적막 속에서 들려오는
팽목항의 푸른 파도 소리와 함께 끝난다.
개인의 역사가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끊겨버린 시점인 100여년 후
'어딘가에, 어떤 사람'이 그 기억을 '달의 저편'의 감각으로 멀리
떨어뜨려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세월호라는 국가 재난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직접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선화의 둘째 딸 순화의 죽음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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