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경금 동리에 사는 최병도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매우 근면하고 성실하였으며, 개화당의 김옥균의 감화로
구국의 일념을 품고 그 밑천을 마련하기 위하여
재산 모으기에 힘써 상당한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강원도 관찰사는 매관매직 횡행하는 시국에서
가렴주구를 일삼아 돈을 모으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때마침 최병도는 강원 관찰사에게 죄가 없이 붙잡혀가
곤장을 맞고, 관찰사의 흉계에 정면으로 대항하다가
갖은 고초를 겪고 죽게 되고 부인은 정신이상이 된다.
그리하여 최병도의 재산관리는 최병도와 뜻을 같이 하던
개화인 김정수가 맡고, 다시 돈을 모아 최씨의 소생인 옥순, 옥남
두 남매에게 새 학문을 배워주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다.
최병도의 딸 옥순과 유복자인 옥남이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그들의 재산 관리인인 김정수와 더불어 도미유학을 하였으나
다시 불운이 겹친다. 김정수가 늘려 놓은 최씨가의 재산은
관료에게 거의 빼앗기게 되고 이후 김정수는 매일 만취로
세월을 보내다가 술 때문에 죽게 된다.
한편, 옥순, 옥남이는 갖은 고생을 겪고 공부를 마치고
10여 년 만에 돌아와 어머니와 재회한다.
거의 폐인이 된 어머니는 잃었던 정신을 되찾게 되었으나,
뜻밖에도 정부의 개혁에 반대하여 일어난 의병들을 만난다.
옥남은 "학정을 고치기 위해서는 고종의 양위가 지당하며
의병 또한 불가한 것" 이라고 역설하나 의병에게 붙들려 간다.
『銀世界』는 우리나라 신문학 개척기에 있어서 최초의 新小説작가이자, 연극 개량에도 힘쓴 菊初 李人稙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銀世界』는 1908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그의 모든 작품 가운데서 가장 主題意識이 강할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각색하여 圓覺社에서 연극으로 상연하여 이 나라 신연극의 첫발을 내딛게 했다는 점에서도 매우 가치 있고 의의 깊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은세계』를 작가 자신의 신 연극 소설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만큼 문학작품으로서 만이 아니라 新演劇史的으로도 매우 뜻깊은 작품이다. 이 작품이 이인직의 각색에 의하여 원각사 무대에서 상연된 건 1908년 11월이다. 『은세계』는 부패와 학정을 일삼던 양반 계급에 대한 평민 최병도의 혈육인 옥순, 옥남 남매가 미국 유학에서 10여년만에 돌아와서, 봉건사회에서의 탈피와 새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민중 계몽을 외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이 작품에는 우리의 전래적인 민요가 삽입되어 있어 풍자와 오락적 요소를 감안한 연극성을 다분히 계산한 점을 엿볼 수가 있다. 이 작품에서 이인직 자신의 정치적이념이며 時局觀을 엿볼 수도 있지만 그때의 지식인들의 의식구조며 사회구조가 어떠했던 가를 잘 알려 주고 있어 흥미롭다.
각색의 글 - 차범석
新小說 「銀世界』를 각색하면서 나는 두가지 면에서 고충을 겪어야만 했다. 그 하나는 이 소설이 길이로 봐서는 단편 정도이나 내용으로는 장편소설이라는 형식상의 불균형이고, 다른 하나는 70년 전에 쓰여진 이 작품 세계를 오늘의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문헌에 의할 것 같으면 작가 자신이 이 소설을 각색하여 圓覺社에서 상연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과연 어떤 형식으로 했을까, 라는 궁금증까지 가세한 셈이니 작업 과정에서 느껴지는 불안은 더 크기만 했다. 게다가 학자들 사이에서는 <銀世界>가 唱이었을 거라는 異論까지 나오게 되니 70년 전의 그 연극을 보았다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공연결과의 기록이라곤 하나도 남아있지 않으니 결국 나는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토대로 작업을 시작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은세계」가 우리나라 文學史에서 이른바 新小說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그 主意을 우선적으로 다루기로 했다. 바꾸어 말해서 그 시대의 그 문학형식은 한마디로 보잘것없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그 시대에 그와 같은 사상이나 의식을 독자나 관객에게 역설하려던 작가의 주제의식은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느 시대이건 선각자가 가지는 개척정신과 계몽성이 짙게 풍기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신연극의 효시로 손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연극에서 어떤 예술성이나 문제의식을 찾는다면 매우 난처하게 될 것이다. 다만 70년 전의 사회배경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향해 발돋움하려던 몸부림을 되찾아 보자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므로 나는 될 수 있는 한 원작에 충실 하려 했고, 대사도 가능한 한 원문을 인용하였다. 그것은 어느 의미로 봐서 원형을 잃지 않으면서 劇化하려는 나의 조그만 열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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