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10까지 헤아릴 때에 쓰는 구절이다.
그래서 어린애들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면서 술래잡기를 한다.
한 명의 술래를 놓고 여럿이서 다가가며 이 구절을 소리친다.
술래는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들고 눈을 떠서 누가 움직이나 찾아낸다.
거기서 걸린 아이가 다시 술래가 된다.
그래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해결되지 않는 동그라미 같은 말이다.
이 작품에는 각 배역들이 이름을 가지지 못하고 13명이 등장한다.
그러니까 각 배역들은 자기 역이 없기도 하고, 어떤 역할이라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극적 기법을 통하여 작가는 우리 사회에 있었던
다양한 소재들을 작품 속에 집어넣고 있다.
배우 : 언니, 오빠, 삼촌, 엄마, 아빠 제발 이 연극의 내용을 바꿔주세요 이대로 가면요, 이 연극은 우리 집과 똑같이 될 거예요 아빠는 수퍼에서 소주병 들고 오시고 엄마는 아파트 단지를 돌며 옷 하세요. 노래한다구요 (흉내) 세탁 세탁. 김봉남 패션도 빨아요 깨끗하게 빨아요 세탁 좀 하세요. 세탁.. 씨!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일납니다. 우리 동네 시의원 당선된 대머리 아저씨 보면 괜히 성질 나대요. 그 아저씨 동네 포장마차 다 뭉개버렸어요 자기는 러브호텔 차려놓고 중학생 언니들하고 돈 주고 사귄 대요 제가 어떻게 아냐구요?
배우10 : 누나, 그 다음은 내가 할게. (비밀처럼) 제가 나이는 어리지만 덩치는 크잖아요 전 미군 이야기도 알아요 옛날 옛날에 아니 울 아빠 태어나셨을 때쯤에 노노... 거 뭐고, 노자(字)로 시작되는 충청도 어느 마을에서 미군이 우리 나라 사람들 눈 가리고 총 쐈다는 거, 하고 요새는 미군부대에서 기름 흘려서 온 들판 오염시키는데도 법이 없어서 손도 못 쓴다는데, 이런 법이 있나요? 미국에 조지 부시 할아버지가 대통령 됐으니까 '클린(Clean)이 턴(Turn) 해버려서 스캔달 있던 대통령보다야 될 낫겠죠? 조지 부시, 조울 지! (옷을 뜯어 머리띠로 매며) 조지는 조치를 취해라! 취해라! 취해라! 취해라!
소요가 인다. 전승놀이 <우리 집에 왜 왔니>를 하며 미국의 전횡을 빗댄다.
고정된 배역을 만들어서 위와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게 하자면 배우나 관객이나 똑같이 피곤하게 된다. 그런데 불특정 적인 배우에게 역할을 맡겨서 하고 싶은 소리를 다 하고 우리의 귀에 익은 전승놀이를 동원하여 노래를 하게 함으로써 관객이 갖는 부담감을 최소화하고 있다. 무대 공연 장면 중에서 자기에게 익숙한 장면이 있다는 건 연극을 재미있게 보게 만드는 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장상호가 가지고 있는 구절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연결 능력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더 나아가서 그는 코러스적 기능을 갖는 배우들의 합창을 자주 구사함으로써 극장에서 관객들과 배우들의 거리를 좁혔다 멀리했다 하는 작용을 자유자재로 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는 난해한 부분이 없다. 억압받는 자들이 스스로를 해방해야 한다'는 것은 코러스를 통하여 제시된 핍박받는 자들이 부활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우리는 주인공 그 날의 시작이니 그 날의 시작이니 모두 일어나소서 / 일어나소서 일어나소 서'라는 표현도 현실에 대한 투쟁적 자세를 강조하는 것이다.
장창호 희곡 작품에는 삶에 대한 긍정적 시각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신뢰가 있다. 그렇게 본다면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 적일 뿐 아니라 표현주의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가슴 속에 들어 있는 많은 얘기들을 쏟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은 에피소드 형태로 만들어져, 시대와 상황에 따라 계속 바꿔 공연할 수 있다. 뮤지컬 넘버 중 <동방의 등> <그 날의 시작>은 타고르의 시와 아우구스트 보알의 '페루에서의 민중극 실험’ 노래가사를 극 내용에 맞게 고쳐 사용했음을 밝혀둔다. 이 대본은 2001년 2월 서울 동숭동 알 소극장에서 공연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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