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지경화 '내 동생의 머리를 누가 깎았나'

clint 2024. 2. 8. 14:41

 

 

이 작품은 먹거리 개를 키우는 가족 이야기다. 
어미는 앓아누운 시아버지의 대변을 받아내고 
큰딸 이금은 이혼해 돌아온다. 
둘째딸 이손은 겁탈 당해 오줌을 지리고 
쌍둥이 아들은 누이를 못 지켰다는 죄책감에 집을 나갔다. 
‘마지못해 사는 척박한 가족’이다.

 

지경화 작가



사납게 개 짖어대는 소리들로 막이 오른다. 
마당 한편으로 예쁘지 않게 화초들이 심어져 있고, 
다른 한편에는 아무렇게 생긴 고무통들이랑 바가지, 
세숫대가 널부러져 있는 수돗가가 보인다. 
빨래줄에는 촌티나는 옷가지들이 널려있다. 
시골 변두리 어디쯤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그저그런 어느 집 마당. 그리고 그런 마당이면 
으레 있기 마련인 평상 위에 한 여자가 철퍼덕 
걸터앉아 수박을 입에 우겨넣고 있다. 이 집 큰딸이다. 

엄마는 식용 개를 키운다. 시아버지는 무대 뒤 구석 방에서 
마지막 숨을 그르렁거리며 죽어가고 있고, 
아버지도 없다. 둘째 딸은 내년이면 18살이 되는데도 오줌을 싼다. 
그 애와 쌍둥이인 아들은 집을 나가버렸다. 
엄마와 작은 딸은 잡아먹을 듯 으르렁대며 싸워댄다. 
엄마는 집나간 막내 아들을 여전히 기다리고, 
뒷방에서 죽어가는 노인네를 향해 
악다귀처럼 저주를 퍼붓는다. 
큰 딸은 세 번 결혼했고, 세 번째 이혼을 앞두고 친정을 찾았다.

 



여자들만 남아있는 집. 남자가 없는 집 
여자들은 모두가 저 마다의 안에 지독한 상처를 안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싸매주려하기는 커녕 
더 아프게, 더 지독하게 상대방의 상채기를 물어뜯어 
이빨 자국을 낸다. 그러나 연극은 중반에 이를 때까지 
이들 가족이 이 지경까지 이르르게 된 전사(前史)를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엄마와 여동생의 
가학적인 저주와 악담이 극으로 치닫을 때마다 
큰 딸은 이 모든 게 ‘저놈의 개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저 놈의 개들’은 연신 사납게 으르렁거리고 
배가 고파 낑낑거린다. 개들은 죽은 아버지의 손가락을 
물어뜯어 먹었고, 막내아들이 지독히도 무서워했고,  
그의 가출 역시 개와 연관이 있으며, 
매일 밥을 주는 엄마의 팔뚝 역시 사정없이 물어뜯고 있다. 
할아버지가 정정했을 때는 지독히도 유순했던 개들. 
그러나 할아버지가 병들어 눕자 사나와질대로 사나와져 있다. 
그런 개들은 엄마는 '지극 정성으로' 거둔다.

 



이 연극에서 개는 매우 중요한 메타퍼이다. 그것은 바로 이들 모녀들의 내부에서 용광로처럼 부글거리며 끓고 있는 분노와 상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죽고 없으며, 할아버지는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남근이 부재한 이들 세 모녀의 상처는 사나와질대로 사나와져 우리 속을 맴도는 개들처럼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린다. 지경화가 쓴 이 희곡이  돋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컨대 얼핏보아 이 희곡이 구차하고 악다귀같은 가족의 모습을 일상적 차원에서 사실적으로 서술하는 듯 하지만, 모든 극적 긴장과 갈등의 원인을 ‘개’라는 중요한 메타퍼를 중심으로 상징적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개'는 남근이 거세된 이들 세 모녀의 무의식 속에 억답된 또 다른 남근, 즉 욕망인 셈이다. 극의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이들 가족의 트라우마가 구체적으로 윤곽을 드러낸다. 4년 전 둘째 딸은 집단강간을 당했다.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쌍둥이 남동생은 겁을 먹고 도망쳤고, 그 대가로 할아버지는 그를 흠씬 두들겨패고 머리를 온통 깎아 놓는 것도 모자라 개장에 가두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것이 무서워 남동생은 가출했고, 엄마는 그 모든 것이 할아버지와 둘째 딸 때문이라며 저주를 퍼붓는다. 둘째 딸은 그런 엄마를 향해 날선 독기를 뿜어대며 죽어가는 할아버지를 두둔한다. 큰 딸은 이 모든 것을 때로는 한걸음 물러나, 때로는 한 발자욱 다가서서 지켜본다. 그러나 그녀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떠날 수 없다.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향해 날선 발톱을 들이밀지만 어쨌거나 가족은 가족이며, 상처난 영혼이 최후로 찾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딸은 미처 말하지 못한 남편의 외도를 엄마에게 솔직히 털어놓는다. 이제 엄마는 더이상 딸에게 참고 살라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제 큰 딸에게 자신을 대신해 배고파 낑낑대는 개들에게 밥을 갖다 주라 말한다. 그것은 엄마와 마찬가지로 개에게서 현실 속에서 거세된 자신의 남근을 대신할 또 다른 남근을 확인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 순간 엄마와 큰딸은 하나로 묶인다. 그 사이 할아버지는 숨을 거두고, 할아버지에 대한 엄마의 저주가 실은 기막힌 애증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순간, 이들 가족의 상처는 어느 정도 치유될 조짐을 보인다. 하지만 느닷없이 나타난 막내 아들. 개장의 개들을 모조리 죽이고 온 몸을 피로 칠갑한 채 피투성이가 되어 말한다. “하지만 한 마리가 우리 밖으로 나와버렸어요.” 엄마는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을 부둥켜 안고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지만, 우리 밖으로 뛰쳐나온 개는 이들 가족의 상처가 영원히 치유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물론 그들의 욕망 역시 채워지지 못한 채 전이되고 지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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