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재엽 '서바이벌 캘린더'

clint 2023. 9. 25. 06:40

 

 

22세기의 미래사회. UN안전보장이사회는 전 세계적인 식량과 생필품 부족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개인의 생산성에 따라 생존시간을 부여하는 “서바이벌 캘린더”를 배포하기로 결정한다.
해피엔딩을 좋아하지만, 잘 팔리지 않는 소설만 쓰는 젊은 소설가 치치는 마침 시간을 잃어버린 작가에 대한 신작을 구상 중이다. 그의 소설 속의 사건이 현실에서 벌어지면서, 치치에게 주어진 생존 시간은 한 달의 절반인 15일! 치치는 좋은 문학작품 한 편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며 항변하지만, “서바이벌 캘린더”를 만들어낸 타임매니지먼트사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치치는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서 오로라 공주보다 아름다운 국립 시간박물관 수석큐레이터 라라에게 어떻게 하면 시간을 되찾을 수 있는지 알아내려 애쓴다. 그러던 중, 소설가 치치의 광팬이자, 도발적인 타임테러리스트 나나를 만나게 된다. 시간의 중앙집권체제에 반대하는 열혈 타임 테러리스트 나나에게 휘말린 치치는 제국의 표준시계를 박살내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얼떨결에 현상수배자로 몰린다. 한편, 치치의 대학시절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타임 매니지먼트사 CEO 도도는 치치에게 접근, “서바이벌 캘린더”를 발명한 자신의 자서전을 대필해 달라 요청한다. 대가는 완전생존자격을 회복하는 것이다. 자서전을 거부하려는 치치에게는 또 다시 생존시간이 줄어든 “서바이벌 캘린더”가 전해지고, 타임테러리스트 집단들은 전원 체포되고 만다. 때마침 수석 큐레이터 라라는 궁지에 몰린 치치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방법을 알려준다. 과연 치치와 나나의 반란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들은 다시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김재엽 작가의 <서바이벌 캘린더>는 사회적 의미의 게임이기보다는 철학적이고 문화 인류학적인 의미의 '놀이정신'에 더 가까운 게임의 의미를 갖는다. 절대적인 중심이나 근원이 유보된 상태라고 믿는 현대의 철학에서 새롭게 제시된 유희 활동 자체에 대한 긍정은 이 극의 근간이 되는 철학이다 그 것은 호이징하가 문명의 근원으로 밝혀낸 인간의 놀이 본능이기도 하다 이 극에서 작가는 특히 시간에 대한 관념에 천착하고 있는데, 시계의 움직임으로 상징되는 연대기적인 시간만을 절대적인 시간관으로 상정하고 시간 자체의 유희성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과 놀이정신을 비생산적이고 허구적인 것으로만 치부하는 산업사회의 가치관을 병렬시키는 극작술을 통해, 그러한 절대적이고 획일적인 사고로 인해 인간이 맞이하게 될 경직되고 암울한 미래 사회를 극화하고 있다.
이 작품의 특징은 작가의 상상력이 현실을 벗어나 미래라는 허상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서바이벌 캘린더〉는 김재엽 작가의 만화적 상상력의 소산이다 서바이벌 게임을 연상시키는 극중 현실은 22세기의 미래사회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인간이 가보지 못한 별나라처럼 상상의 세계인 것이다. 이 세계 속의 인물들은 '서바이벌 캘린더'에 적힌 날짜 만큼만을 살 수 있다는 황당한 게임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이러한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극화하고 있는 이 극은 관객에게 이미 이 극의 상황은 비현실적인 세계라는 거리감을 갖게 한다. 즉, 감정적 동화보다는 이성적으로 극중 현실과 작가의 메시지에 대해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바이벌 캘린더>에서의 사회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들이 오래 살게 되어 식량과 생필품의 부족 현상을 겪게 된 상황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과학은 모든 개인의 사생활과 사상, 심지어 기억과 죽음마저도 통제하고 조정할 수도 있다 이러한 과학사회의 가치관은 숫자에 있다 시계와 달력의 숫자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 극은 SF 영화식의 거대한 음모론을 플롯의 배경으로 깔아놓는다. 마치 '빅 브라더'(Big Brother)가 지배하는 사회처럼 이 극의 세상은 타임 매니지먼트라는 회사의 CEO인 도도에 의해 관리된다. 이 회사는 모든 종류의 직업을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가치를 매겨 각각에게 자신이 살 수 있는 날짜를 정해준다. 예를 들어, 작가인 치치는 한 달에 15일만을 살 수 있고 부동산 재벌인 바바가 살 수 있는 날은 겨우 10일 뿐이다. 이들은 신문배달원 쵸쵸보다도 더 쓸모없는 인간들로 분류되는데 그것은 그들의 생존날짜의 숫자에 의해 밝혀지는 것이다 이렇듯 후기 산업사회의 가치관은 과학과 언어를 바탕으로 한 이성중심주의 이며, 자본주의는 물질만능의 가치관을 양산한다. 이 극에서는 시간마저도 돈과 같은 물질로 취급하는데, 작가는 그러한 시대정신 뒤에는 절대적이고 연대기적인 특징을 갖는 남성적인 시간관이 존재 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표준시계를 망치로 부수고 다니는 타임테러리스트와 허구적이고 비생산적인 일로 시간을 낭비한다고 비난받는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이러한 사고에 대해 반항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타임테러리스트는 언니와 도플갱어(이중 자아)가 되는 인물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그녀는 남성적 시간관의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는 여성적 시간관을 몸의 언어로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하는데, 직선적이고 일회적인 남성적 시간관과 달리 마치 자궁과 같이 둥글고 순환적인 여성적 시간관은 죽음과 삶, 이별과 만남 등의 이분법적인 분리를 통합하는 유희적이고 풍요로운 시간관이다 이는 시간이 가지고 있는 다층적 의미와 자율적 체계를 인정하는 태도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서바이벌 캘린더>에서의 게임 같은 극중 현실은 시간이라는 관념마저도 물질화시키는 미래의 산업사회를 풍자한다는 의미에서 사회학적 의미를 가지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적 시각에서 본 시간관과 호이징하와 카이와의 관점에서 본 놀이관이 사상적 배경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적인 의미의 게임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서바이벌 캘린더>의 무대는 붉은 바탕 위에 크고 작은 모양의 아라비아 숫자가 그려진 비현실적 공간이다. 여기에 입방체 모양의 소품으로 각종 역할을 담당하게 하는 빈 무대를 사용하였으며 강한 빛의 조명은 만화적인 풍경을 더욱 강조한다. 또한 의상 역시 바코드가 소매 끝에 붙어 있는 원색의 광택 나는 소재이기 때문에 공상 과학 영화 같은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컴퓨터에 의해 모든 사생활이 통제되는 사회의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러한 공연 요소는 이 극이 현실 세계가 아니라 게임의 세계임을 이미 관객에게 알려주어 감정이입보다는 이성적인 거리감을 가지고 극중 현실을 대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관객의 관심은 미스터리 형식으로 진행되는 서사보다는 작가의 만화적 상상력의 형상화와 그 안에 내재된 메시지에 있게 된다. 이 극의 가장 큰 매력은 시간을 물질화시키고 철학에 사회성올 부여하는 점에 있는데, 이 점은 사실 동전의 양면을 가진다. 그 이유는 이러한 두 이질적 존재의 결합은 발상이 기발하지만 조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건을 벌려놓고 수습을 깔끔하게 하지 못하는 극작술과 그에 따른 지나친 생략과 비약은 작가가 좀 더 시간을 두고 고민해야 할 문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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