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고선웅 '천적공존기'

clint 2022. 6. 14. 07:45

 

 

 

두 노인이 놀이터에서 만나 며느리 등쌀에 피곤하다는 스포츠머리 노인에게

중절모의 노인이 훈수를 둔다며느리에게 먼저 잘못 빌미를 준 것이 원인이라고...

그리곤 역사담론으로 들어간다.

조선 말 고종, 민비, 대원군에 얽힌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는데

그들의 이야기가 바로 무대에서 펼쳐지며 좀 지나서는 혼재된다.

특히 외세(서이, 북이, 남이)를 끌여들여 지지기반을 다지려다 엎치락뒤치락

결국 그들 외세의 손에 놀아난 꼴이 되고(오랑캐로 오랑캐를 막으려다) 나라는 결판나는데...

이들과의 전쟁이 장기판에서 땅따먹기 하듯 펼쳐지는 신도 신선하고

특히 단문형의 대화가 박진감있게 펼쳐진다.

두 노인의 마지막 대화도 의미심장하다.

시아비가 며느리와 의가 좋아야 돼

 

 

 

 

옥랑희곡상심사평

여러 작품을 놓고 긴 대화를 이어나가야 했습니다. 작품이 지닌 장단점 때문에 쉽게 당선작을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심사위원들의 판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부문은 두 번째 부문에 비해 작가들이 글을 쓰기 어려웠을 거라는데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주제가 한정되는 경우에는 상상력의 제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심사위원들은 작가들의 고충을 이해하려고 했고 신화 · 설화 · 사화가 우리 삶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이 시대에 그것들을 삶의 복판으로 가져다 놓으려는 작가들의 힘든 시도를 높이 샀습니다. 그러나 과거로서 신화· 설화 사화와 오늘이 합일될 수 있는 일체감을 꿈꾸는 작가들의 노력은 의도적인 경우가 많았고, 옛 이야기와 오늘의 이야기를 오버랩 시킴으로써 신화· 설화 · 사화의 현대성을 작의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많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적지 않게 희곡의 글쓰기가 영화 시나리오의 글쓰기와 혼동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젊은 작가들이 그만큼 영화적 상상력에 물들어 있다는 반증이겠고, 희곡의 글쓰기가 지녀야 할 고유한 특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심사위원들로서는 이 부문 심사기준으로서 신화 · 설화 · 사화의 재해석에 대해서 접근언어와 형식을 추구하는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연극양식의 추구가 가능한가에 대해서 깊은 토론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적 공존기는 군더더기 없는 탁월한 작품이라는데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최종적으로 일치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언어의 간결성이 돋보였고, 일상의 작은 삶을 통해서 거대한 역사 담론을 되짚어보는 작가의 시도는 분명히 새로운 연극 양식의 추구라는 옥랑희곡상의 목적하고도 결부되었고, 공연의 가능성에 있어서도 연출에 자유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신화 · 설화 · 사화부문의 의도가 무엇보다도 역사와 삶의 조응이라면 이 작품은 그 의도에 딱 맞습니다. 이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고유한 글쓰기 양식일 것입니다. 당선작 천적 공존기는 일정 부분 이 시대 역사극과 그 작가들에게 기대고 있습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이 작품은 그 자체로는 미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연출과 만날 때 이 작품은 빛을 낼 것입니다. 그리고 천적 공존기가 지닌 미완성의 글쓰기를 채우는 것이 작가에게 주어진 힘든 노정이 될 것입니다.

 

 

작가의 말 -  고선웅

반공웅변대회를 간다. 연단에 올라 악을 쓴다. 점심은 중국집이다. 오후 시상식을 기다린다. 입상 아니면 탈락이다. 어릴 적엔 입상에 집착했다. 그러던 것이 19살 때 달라졌다. 그냥 웅변이 재밌다. 학력고사도 나를 못말린다. 그때다. 웅변의 공허! 나는 지나치게 오바한 탓에 대사도 까먹고 허리에는 파스를 붙여야 했다. 하루를 누워 있었다. 내가 내린 결론, 웅변은 웅변이 될 수 없다!

요즘엔 본질에 집착이다. 본질이 무엇이냐다. 본질이 명쾌하다면 웅변은 더 이상 웅변이지 않아도 괜찮다. 본질이 명쾌하다면 연극이 더는 연극이 아니어도 괜찮다. 비단 연극뿐이랴. 본질은 이유고 행위와 사유의 근거다. 고등학교 국사시간이다. 국사선생님은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민비의 외교정책을 설명했다. 갈등과 반목의 역사다. 나는 명분을 생각하며 분개했다. 자신이 선택한 태도에 대한 명분 말이다. 명분이 내의를 쫓는다면 꽤 요긴한 중심이 될 터인데, 그것이 천적공존기다. 어려운 것은 두 개의 대의명분이 충돌할 때다. 승부차기를 할 수도 없고 난감하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두 개의 대의명분 위에 더 큰 대의명분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그걸 찾아내기만 한다면... 비단 정치 뿐이랴. 명분이 생겼다. 명분을 갖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본질에도 불구하고 내가 세상을 상대로 한 웅변은 웅변이 아니라서 민망하다. 당선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뺨을 맞은 듯 후끈 달아올랐다. 그 말은 채찍에 더 가까웠다. 나는 화장실에 십오 분쯤 앉아있었다. 내가 내린 결론, 상은 더 이상 상이 될 수 없다!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순간 내가 부역해야 할 것들에 대한 환기다. 세상에 목소리를 낼 때 떨지 말아라, 적확해라. 그래선지 당선 이후에 다작을 하던 습성은 사라졌고 말에 대한 예민함도 커졌다. 침착해지자. 결국 나는 작가니 말이다. 지면을 빌어 졸고를 품어주신 옥랑문화재단에 사의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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