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발’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동차는 한국전쟁 이후 여러 부품들을 조합해 재생산한 국내 최초의 국산차이다. 그 자동차들이 택시로 많이 사용되면서 그것들을 ‘시발택시’라고 불렀다. 영자씨는 그 ‘시발택시’를 모는 운전기사로 평생을 살았다. <영자씨의시발택시>는 총 일곱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90세, 치매로 삶의 기억을 점점 잃어가는 영자씨는 오늘도 요양병원에 멍하니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기억이,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영자씨의 맛깔스러운 부산 사투리가 흥미를 더해주고, 동료 택시기사였던 치마와 바지 그리고 택시를 탄 손님들과의 에피소드들은 그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겼다. 영자는 택시를 탄 손님들에게 자연스레 말을 건네며 그들과 교감한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지만 이미 그 시대 안에 있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은 영자는 그들에게 솔직하고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상황이 자신의 탓인 것처럼 사과한다. 그렇다,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영자의 가족들이다. 이러한 설정은 영자가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만약 이런 설정 없었다면 진부하고 평범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영자의 동료 운전기사이자 가족 같았던 ‘바지’와 ‘치마’의 이야기도 굉장히 흥미롭다. 여성 운전자 협회, 줄여서 ‘여운회’의 후배 ‘바지’와 ‘치마’는 영자에게 운전하는 법도 배우지만 그 시대의 고정관념과 편견에 정면으로 대면하는 법을 배운다. 여운회 에피소드 뒷부분에는 사진들이 영상으로 나오는데 실제 여운회의 모습들이 담겨있다. 제복을 맞춰 입고 당당함을 보여주는 영상은 직전에 봤던 여운회를 다시 한번 보여주며 그들의 삶을 상상하게 한다.
첫 장면에서 영자가 언급하는 진이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혜진이다.
<영자씨의 시발택시>는 하나의 큰 줄기로 이어지는 여러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묶여 있었다.
몇몇 다른 연극들도 이와 같은 구조를 취하지만 제대로 묶이지 않거나 억지로 묶은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또 옛 시대의 이야기로 현시대를 되짚어 볼 수 있게 해 주는, 관객들에게 고민거리를 심어주는 공연이었다.

작가의 글 - 박주영
「영자씨의 시발택시」는 나의 첫 소식이다. 주인공 영자는 나의 외할머니를 모델로 하고 있다. 그는 텍시를 모는 여성 가장으로 3남매를 키워온 강인한 여성이었다. 오랜만에 요양병원에서 만난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처음 듣는 이름으로 부르며 반가워했고 한참이 지나서야 내 이름을 불러 주었다. 허공을 보며 앉아있던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부디 좋았던 기억 속에서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자씨의 시발택시」를 썼다. 이 희곡은 '왜 연극을 하는가? 라는 질문에 내놓는 나의 답이다. 기록되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 역사가 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가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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