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인 긴장감과 가속화되는 템포가 주는 카타르시스.
기차 엔지니어와 화부로 변장한 두 명의 범죄자는 우주적 차원의 대재앙인 ‘신의 심판’을 통해 존재의 미스테리를 구현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기관차를 최고 속력으로 올려 다른 기관차와 충돌시키려 한다. 그러나 기관차는 그들의 아내와 애인, 승객 등 다른 인물들의 등장으로 인해 카오스 상태에 빠져든다. 이제 기관차는 그들이 원했던 다른 차원이 아닌, 인간의 재앙으로 알려진 예측가능한 길을 따라 폭주할 뿐이다.
“우린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이 고철 안에 남겨졌어. 우리는 폭주하고 있고,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폴란드 근대 극작가 비트키에비치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폭주기관차>는 매우 강렬한 연극이다. 기관사와 화부를 연기하는 두 명의 범죄자는 그들의 심리상태를 탁월하게 표현해낸다. 기관차의 속도가 올라감에 따라 가속화되는 극의 리듬, 그리고 그 안에서 얽히는 인물들의 이해관계와 모순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비트키에비치는 일종의 르네상스-맨으로 그는 화가이자 극작가였으며 소설가였고, 다양한 분야에 재능이 있었다고 알려진 자다. 그의 희곡들은 오늘날 부조리극의 선구자로서 취급되는데, 그의 희곡들이 1920-30년대에 쓰여진 걸 감안하면 그러한 표현에 부족함은 없어 보인다. 그의 소설들(안타깝게도 영어로 완역이 된 것은 한 편이고, 나머진 발췌 번역이지만) 또한 기괴하지만, 희곡도 마찬가지인데, 비트키에비치는 보다 직접적으로 존재에 대한 불안을 무대 위에서 표출한다. 그의 희곡 중 가장 직접적인 표출은 <폭주 기관차>인데, '최후의 심판'에 버금가는 재앙을 일으켜 존재의 신비로움을 탐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기관차를 폭주시켜 충돌사고를 일으키려는 두 악당의 이야기를 다룬다. 기괴하지만, 정말로 그렇다.
하지만 이러한 부조리한 시도는 결국 '무한'의 끝을 도달할 수 없는 한계처럼, 우스꽝스러운 실패로 끝나고 만다. 아무리 신의 심판에 도전하려는 무시무시한 기차의 폭주라 할지라도 결국 정해진 레일을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다. 이는 그의 다른 무대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탐구는 좌절 속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폭주기관차>는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타일의 연극이 아닌데, 그렇다고 이해하지 못할 만큼 난해하지도 않고, 쉽게 받아들이며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스타니스와프 이그나찌 비트키에비치(Stanisław Ignacy Witkiewicz)
폴란드의 아방가르드 극작가, 소설가, 화가. 아버지와 이름이 같았기에 중간 이름 이그나찌와 성 비트키에비치를 합쳐 ‘비트카찌’라는 또 다른 이름을 지어 활동했다. 비트카찌는 크라쿠프 예술 학교에 다니면서 새로운 예술 사조들을 접하고, 1911년 첫 중편소설 「붕고의 622가지 몰락, 혹은 악마 같은 여자」를 발표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당시 폴란드를 지배하고 있었던 러시아제국의 기병대에 입대하고, 1917년 전역한다. 1918년 폴란드로 귀환한 비트카찌는 이후 전시회를 열고 “S. I. 비트키에비치 초상화 회사”라 자칭하며 여러 초상화 기법을 실험하는 한편 희곡과 예술 이론, 소설 등을 두루 집필하기 시작한다. 부조리극의 선구 격인 비트카찌의 희곡은 예술이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고양감과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순수한 형태’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비트카찌는 희곡 「실용주의자들」, 「새로운 해방」, 「미스터 프라이스」, 「그들」, 「쇠물닭」, 「갑오징어」, 「광인과 수녀」, 「폭주 기관차」, 「피즈데이카의 딸 야눌카」, 「어머니」, 「벨제부브 소나타」, 「구두 수선공들」, 소설 『가을에 보내는 작별』과 『탐욕』, 예술 이론 「순수한 형태에 대하여」, 「미술의 새로운 형태와 그로 인한 오해들」, 「연극 분야에서 순수한 형태 이론에 대한 서문」, 에세이 「마약: 니코틴, 알코올, 코카인, 페요틀, 모르핀, 에테르」 등을 집필했고, 1939년 9월 18일 자살했다. 1985년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유네스코가 ‘비트카찌의 해’를 선포했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마우치 겐지 '안경 부부의 이스탄불 여행기' (1) | 2022.04.22 |
---|---|
모리모토 가오루 '여자의 일생' (1) | 2022.04.21 |
스타니스와프 이그나치 비트키에비치 '쇠물닭' (1) | 2022.04.19 |
스타니스와프 이그나치 비트키에비치 '광인과 간호사' (1) | 2022.04.18 |
데라야마 슈지 '인력비행기 솔로몬' (1) | 2022.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