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미요시 주로 '부표(浮標)'

clint 2022. 1. 25. 20:39

 

 

이 희곡은 19403, 신쓰키지극단에 의해 도쿄의 쓰키지소극장(築地小劇場)에서 초연되었다. 같은 해 6~8월호에 잡지 '문학계에 희곡으로 연재된 후, 11월에 사쿠라이서점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본 번역본은 하야카와서방(早川書房)에서 간행된 2016년판(초판은 2012)을 원본으로 하였다. <부표>는 전쟁이 한창인 시대를 배경으로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보살피는 화가의 이야기다. 죽어가는 아내를 지켜보는 예술가의 무력감과 예술에 대한 고뇌와 갈망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어, 수많은 연출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최근에 여러 번 재공연 된 바 있는 미요시 주로의 대표작이다.

 

 

작품은 19403월에 발표되었는데, 당시의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난 이후였다. 중일전쟁의 시작 이후, 정부에서는 전쟁 물자와 노동력 동원을 위해 국민 생활을 전면 통제하였고 193910월부터는 경제제제를 더욱 강화하여 국민의 소비를 억압했다. 1940년을 기점으로 식량생산의 저하로 인해 식량난도 심각해지게 된다. 미요시 주로는 1952년에 간행된 희곡집의 '<부표>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일본의 모습은 오늘날에는 거의 생각도 못 할 정도로 앞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국민 앞으로 부과된 압력의 질과 양도 절대적인 것이었다. 사람들은(구가 고로도 포함하여) 전쟁 이라는 걸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한이라기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는 자기 자신이 한순간도 호흡이 불가능할 것만 같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있다면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한 1930년대부터 대두된 내셔널리즘으로 인해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억압이 심해졌고, 전향자를 다수 배출하게 되면서 융성했던 프롤레타리아 예술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미요시 주로는 와세다대학 영문과 진학 후에 프롤레타리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28년에 처녀 희곡 <목을 치는 것이 누구냐> 발표 이후, 정치적 사상의 실천을 위한 좌익 연극을 집필하면서, 프롤레타리아 희곡작가로서 인정받게 된다. 8년간의 좌익운동에 절망하고 전향한 후에는 전향으로 인한 고민과 갈등, 반성 등을 작품 속에서 풀어내고, 점차 살아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부표>에서 고로의 모습은 바로 이런 작가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 고로는 전향의 이유, 좌익활동 시절에 대한 반성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가 현재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자각하고 깊은 절망에 빠져있기도 하다.

부표에서 병든 아내 미오의 실제 모델인 미요시 주로의 부인 미사오는 사망 이전에 고등여학교의 선생님으로, 좌익활동에 가담했던 활동가였다. 미요시 주로가 유명 좌익 작가로서 작품활동에 매진하는 동안에도 부인 미사오는 적극적인 활동을 지속했다고 한다. 작품 속에서 의사 히키는 고로에게 미오의 발병원인에 대해 좁게는 그 환자의 그때까지의 생활 속에 무리가 있었을지 모르고, 넓은 의미로는 그 가족 전체의 생활에 무리가 있었을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이건 미요시 주로 가족에게도 그대로 해당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미사오의 병으로 인한 사망은 193311월이었다. 미요시 주로가 <부표>를 집필하기까지는 7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매일 매일의 생활도 일도 그 순간순간이 '대결'의 연속이었다. 나와 같은 성격의 작가에게 있어서는 특히 그랬다. 그때까지도 나는 상당히 많은 희곡을 써왔지만, 이토록 호된 대결을 강요당하면서 작품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걸 나는 했다. 올바르게 썼다던가 훌륭하게 썼다고는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이 이외의, 또한 이 이상의 대결은 치룰 수 없었다는 의미에서 자신에게 정직했었다는 사실에, 지금도 나는 만족하고 있다." (1952년에 간행된 희곡집의 <부표> 작가의 말' 중에서)

위 인용문에서처럼 미요시 주로는 이 작품을 쓰면서 호된 대결을 강요 당했다. 전시라는 일본의 정치 경제적 상황, 유명 프롤레타리아 작가에서 전향하기까지의 과정, 그 안에 위치한 부인 미사오의 죽음. 작가가 거친 모든 상황들이 작가에게 치열한 삶을 강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작가의 말'에서처럼 궁지에 몰려있다 할지라도 "인간이 살아있다면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미요시 주로는 말한다. 작품 속에서 고로는 전장에 나가는 아카이에게 우리 앞에는 피할 도리도 없고 어떤 여지도 주지 않는 절벽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부딪쳐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외친다. 이 말은 전장으로 나가는 아카이뿐만이 아니라 고로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고로는 과거의 자신 그리고 화가인 현재의 자신, 게다가 미오의 꺼져가는 생명과도 호된 대결을 벌이고 있다. 고로는 미오의 죽음이 한치 앞으로 다가온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근본적인 신념마저 흔들린다. '그림벌레'라고 불리던 그는 그림조차 그릴 수 없게 될 정도로 본질적인 절망 속에 빠지게 된다. 전장에 나가는 아카이의 조언으로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는 고로이지만, 미오의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이성적으로는 버티고 있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이성적인 방법만을 고집하던 고로였지만, 미오의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미오의 죽음을 막고자 몸부림친다. 뱀을 구워서 먹이는 민간요법이 과학적으로 무지하다고 생각하던 고로이지만 결국 자기 자신이 뱀을 잡아오기에 이른다. 깡통에서 탈출한 뱀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것처럼 고로의 앞에 시원한 출구가 마련되어 있을 리 없다. 그 뱀으로 인해 더럽혀지는 캔버스는 고로의 마음과 출구없는 그들의 상황을 그대로 표현해 준다. 힘들게 잡은 뱀을 깡통에 쑤셔넣듯 고로의 마음도 현재의 상황도 어딘가에 억지로 가둬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오가 누워있는 집에서 떨어진 해변가만이 꽉 틀어막아 놓았던 고로의 감정과 출구없는 현실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지만, 그것은 한계점에 도달한 고로의 모습을 더욱 부각시켜 줄 뿐이다.

작품 속에서 고로가 치룬 자신과의 '호된 대결이 그저 절망만을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 고로는 과거의 좌익운동에 가담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같은 전향자인 아카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들이 혹독했던 시대를 살아냈음을 기억해낸다. ‘중요한 건 거짓도 위선도 없이 살아왔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고로는 이미 그림 그리는 걸 재개하기로 마음먹고 있었고, 좌익 운동에 가담했던 시기의 재산이 어떤 본질적인 '인간에 대한 신뢰감'이라는 걸 발견해낸다. 그리고 꺼져가는 목숨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안에서 살아가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는다. 처음에는 병자인 미오에게 배려가 없는 모친과 여동생을 비난하던 고로이지만, 선량한 사람들과는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이해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 고로는 미오에게 만엽집을 읽어주며, 현재의 삶이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그의 태도는 부인의 죽음을 저지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파생된 생각의 결과일지 모른다. 그리고 과거 또는 현재의 삶에서 동요를 겪고 혹독한 싸움을 치루면서도 격동의 시절을 살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터득한 생각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다.

 

미요시 주로(三好十郎)

1902, 사가(佐賀)현 출생. 12세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20, 와세다 대학 영문과 진학 후에 프롤레타리아 시의 집필을 시작하였고, 첫 희곡 <목을 치는 것이 누구냐>(1928) 발표 이후, <상처투성이의 오아키>(1928), <탄진(炭塵)>(1930) 등의 작품으로 프롤레타리아 희곡작가로서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좌익예술동맹, 일본 프롤레타리아 연극동맹에서 활동하였다. 1934, <목이 날아가는 센타>, <처연행>(1935) 등 전향희곡으로 불리는 작품들을 발표하고, 전향 후에는 전향으로 인한 고민과 갈등, 반성 등을 작품 속에서 풀어내면서 점차 살아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히코로쿠 크게 웃는다>(1936), <부표(浮標)>(1940) 등에서는 인간의 선의와 생명력을 높이 평가했다. <부표>는 종전 이전의 대표작으로 불리운다.

1946, 신인 극작가 양성을 위해 희곡연구회를 발족했다. 이후 종전 이후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폐허>(1947), <그 사람을 모른다>(1948), <태내> (1949) 등을 발표했다. 장편 설 <피부의 냄새>(1950)도 집필하였다. 1951, <불의 인간-고호전기>를 발표하고, 이 작품으로 제3회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극단 기쿠자의 고문과 대표를 역임하였고, 라디오/TV 드라마 작가 등 폭넓은 활동을 전개했다. 1958,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전향 이후의 미요시 주로의 희곡 작품들은 집요할 만큼 인간성의 탐구에 몰두하고, 사회를 깊숙이 응시하는 자세가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