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노기 모에기 '다스 오케스터'

clint 2022. 1. 28. 07:38

 

 

이 악기가 무기였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인간의 행위 예술과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인간의 행위 정치’.

이 둘의 충돌로 만들어진 불협화음이 어느 오케스트라를 위기에 빠뜨린다. 이곳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오케스트라의 전용 극장이다. 세계 최고의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려는 새로운 정권은, 도시 한가운데에 자리한 이 극장과 오케스트라를 상징적으로 이용하고자 한다. 그들의 요구는 무대에 하켄크로이츠를 달고 연주하라.” 지휘자의 선택에 단원들이 동요한다. 그리고 지휘봉과 악기를 손에 든 오케스트라의 투쟁이 시작된다.

 

 

<다스 오케스터>는 작가가 대학 재학 중에 집필한 희곡으로, 초연 대본을 대폭 수정해 2019년에 새로 올리기까지 베일에 싸여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 노기 모에기의 특징은 잘 담고 있는 작품이다.

무대는 나치 정권 아래의 독일이다. 희곡을 보면, 등장인물에도 오케스트라에도 도시에도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이 작품이 20세기 가장 위대한 지휘자로 추앙받는 푸르트벵글러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것은 꽤 알려진 사실이다. 비록 작가는 실존 인물이 누구인지를 보지 말고, 이야기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인물들을 봐 달라고 했지만, 희곡을 읽는 재미를 더하기 위해 배경 지식으로 알아두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먼저 극 중 '지휘자가 앞서 말한 대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 1886~1954)라면, 극 중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오케스트라는 그가 몸담았던 베를린 필하모니가 될 것이다. 이 천재지휘자에게 발탁되어 솔리스트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 청년 바이올리니스트는 폴란드 출신의 시몬 골드베르크(Szymon GoldBerg, 1909~1930)이고, 극장을 들락거리며 사람들을 거만하게 다루는 선전 장관은 파울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 1897~1945). 그리고 이 선전 장관 앞에서도 당당하던 거장의 지휘자를 질투심에 사로잡히게 만든 20대의 나치당원이자 새로운 스타 지휘자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 von Karajan, 1908~1989)이 되겠다.

 

 

이야기는 연주회가 있던 어느 날, 제복 차림을 한 장교가 찾아온 무대 뒤에서 출발한다. 장교의 배후에는 이제 막 정권을 잡은 나치스가 있다. 그들의 첫번째 요구는 공연 때 나치 깃발을 무대 위에 달라는 것이었다. 지휘자가 역사 속의 푸르트벵글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연극을 본다면, 지휘자의 선택은 정해져 있다. 그는 나치 깃발을 무대에 건다. 거부할 경우, 유대인인 단원들과 자신의 비서가 곤경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오케스트라를 국영화시키고, 특정 단원들을 전원 해고하라는 것이다. 과연 지휘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극 중에서도 언급되는 것처럼, 실제로 히틀러는 푸르트벵글러를 무척이나 사랑했고, 푸르트벵글러는 히틀러의 생일 전야 공연에 나치 깃발 아래서 베토벤의 교향곡 제9<합창>을 연주했다고 한다. 전쟁 동안 베를린 필하모니의 악명은 높아져갔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푸르트벵글러는 전범으로 재판정에 서야 했다. 하지만 면책받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가 자신의 유대인 단원들을 필사적으로 지켰고, 망명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나라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장교의 대사처럼, 그는 모순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푸르트벵글러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푸르트벵글러와 그 밖의 모델이 되어준 인물들을 심판하기 위해 이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무슨 생각으로 살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그 본인조차도, 이 이야기의 모델들은, 이야기 속 비극이 실제로 있었고, 언제든 어디에서든 우리도 겪게 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이처럼 노기 모에기는 거대한 역사의 현장을 작은 무대 위로 옮겨 놓았다. 세계 최고들이 드나드는 대극장의 출연자용 출입구, 복도, 분장실, 무대 뒤를 배경으로, 역사라는 것이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삶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준다. 이것은 노기 모에기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다.

 

 

다스 오케스터>는 슬픈 시대를 살았던 불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는 이것으로 인간이란 이런 것이라는 사실을 환기하고, 다시 냉정한 눈으로 우리의 진짜 세계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이 희곡에 나오는 음악에 대한 정보들은 실생활에도 요긴할 것 같다. '플트'는 오케스트라 가운데에 있는 지휘자 자리에서 가까운 자리부터 1플트, 다음은 2플트, 이런 식으로 숫자를 매기는 것이라고 한다. '아인자쯔는 협주곡에서 독주부가 들어가는 것, 연주 시작 직전의 예비 박을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장교 옆에서 지휘자가 읊던 시는 베토벤 교향곡 제9<합창>의 가사다.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눈부신 광채여, 낙원에서 온 여인이여, 신성한 그대의 힘은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다시 결합시키고, 우리 모두 당신의 감미로운 날개 아래서, 형제가 되리."

 

 

노기 모에기(野木萌葱) : 극작가, 연출가

1977년생. 요코하마(横浜) 출신. 니혼대학 예술학부 연극학과 극작 코스 졸업.

대학 재학 중이던 1998패러독스 정수(定數)’ 유닛을 결성. 이후, 2007<도쿄재판> 초연 때 팀을 극단화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역사적 사실이나 실제 사건을 기본 틀로 하여, 대담한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이 특징이며, 농밀한 인간관계가 자아내는 긴장감 높은 대화극을 주로 집필한다. 와다 켄메이의 연출로 공연된 그녀의 <3억 엔 사건><괴인21면상>이 각각 제24회와 25회 요미우리 연극대상 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고, /연출을 모두 맡았던 <731> <Nf3Nf6>으로 제26회 요미우리 연극대상 우수연출가 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