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철과 정옥은 파지와 고물을 주워 팔며 생활하는 노부부이다.
그들은 외아들 민수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해 대견하고 과분하다.
그러다 가영이란 여자를 데려와 결혼하겠다고 하는데 나이도 많고 가정도 변변찮아 반대하고 그 일로 아들은 집을 나가고 얼마 후 교통사고를 죽는다.
그리고 13년 후, 그들은 아들을 가슴에 묻고 평범하게 살아간다. 매일 손수레를 끌고 파지와 고물을 주으러 다니고, 이웃의 지적장애인 병두를 아들인양 예뻐하고 그의 아버지 고물상 박씨와 티격태격하며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 하고... 그러다 어느 날 병두가 한권의 일기장을 주워 가져오는데...
작가의 글
꿈이다. 꿈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내가 2년 남짓 살았던 동네는 유난히 소규모의 고물상들이 많았고 그래서 파지를 줍는 어르신들도 많았다. 창문을 열어놓고 책상 앞에 앉아 있자면 박스 한 장을 놓고 언성을 높이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어르신들의 얼굴엔 표정이 없고 남을 위한 배려의 여유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파지를 줍는 노부부가 우연히 손에 들어온 낡은 일기장의 주인을 찾아준다는 이야기는, 꿈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연히, 동네 카페에 앉아 손수레에 파지 등을 잔뜩 싣고 가는 중년 부부를 보게 되었다. 2, 30분쯤 지났을까. 파지를 팔고 돌아오는 중년 부부를 다시 보게 됐는데 남편은 아내를 빈 손수레에 태우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예뻤다. 그러면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게 됐다. 아버님 생전에, 이사 도중 아버지의 일기장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돌아가신 이후까지도 내내 마음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 일기장이 우연히 보게 됐던 그 중년 부부 같은 사람을 만났다면 아직도 어디엔가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착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사회적 사건 사고의 피해자들이며 버림받는 것에 익숙하고 잃어버리는 것이 일상인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도덕적 선의까지 강조한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덕만 씨를 찾습니다〉 극 중 인물들 역시 소중한 사람을 잃고 서로에 대한 원망과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상철과 정옥은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도 너무나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간다. 아내에게 버림받고 엄마에게 버림받은 박씨와 병두 부자 역시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묵묵히 버려내고 있다. 아픔을 감춘 채 반복되는 그들의 일상이 어찌 보면 평화로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이들의 아픔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도 허기를 느껴야 하는 고통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극 중 인물들을 화해시키고 그들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이것은 새로운 인생을 의미하며 또 다른 희망을 꿈꾸게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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