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설재록 '새'

clint 2021. 12. 4. 13:07

 

 

새 박사로 통하는 박성태교수가 실종한지 한 달이 되었다. 그의 집은 그동안 언론매체들의 전화로 소란했었고 살롱의 호스티스와 눈이 맞아 잠적했다는 둥 유언비어도 난무했다. 박 교수의 아들인 의대생 상현과 할아버지, 그리고 가정부인 미선이가 집 거실에서 그간의 일들을 얘기한다. 할아버진 꿈에서 보았는데 곧 돌아온다고 했단다. 아버지는 하늘새를 찾으러 갔다고 했다고 한다. 그동안 여러 고민으로 술을 자주 마셨던 상현은 너무 일이 커져 이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명 연극배우이지 탤런트인 어머니 최 여사의 입장도 난처하고. 그래서 그는 준비한 실종 한달을 맞은 이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각본을 짜고 발표하기로 한다. 내용인 즉은 시간은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하늘새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화석이 다시 살아나 날개를 치며 내 눈앞에서 힘차게 비상하게 될 것이란 결 굳게 믿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문득 어떤 예지의 빛을 받고 집을 나섰습니다. 가시덤불에 찢긴 다리에서는 피가 흘렀지만 그것은 오히려 즐거운 고통이었습니다. (사이) 어느 한적한 시골의 주막에서 나는 알았습니다. 내가 살던 곳에서 나는 이미 내버려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걸. 실종, 미모의 호스티스와의 자적, 벽에 부딪힌 박성태의 한계, 이미 오래전에 횡사한 내 동생과의 관계에 대한 추측, 비난과 찬사, 동정과 모멸, 헤어날 수 없는 나락의 구렁텅이... 이미 나는 복귀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빠져있다는 걸 판단했습니다. 내가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도 엄청난 장벽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던 겁니다....”

아마도 박 교수는 조만간 관심이 사그러지면 조용히 돌아올 것이란 여운을 남긴다.

 

 

설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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