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데라야마 슈지 '모피의 마리'

clint 2015. 11. 7. 09:45

 

 

 

 

 

 

극단<덴조사지키>의 창단공연 중 세 번째 작품인 '모피의 마리'는 1967년 7월 초연되었다. 다른 두 작품 즉, '아오모리 현의 꼽추'와 '오야마 데부코의 범죄'가 서커스, 쇼 적인 요소가 강한 것에 비해<모피의 마리〉는 문학성이 강한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모피의 마리》의 '마리'는 동성애자이자 여장남자이다. 제1장, 무대 위에는 욕조가 놓여있고 마리는 몸을 담근 채 하인에게 겨드랑이와 다리의 털을 깎게 한다. 목욕을 마치면 브래지어와 드레스로 단장하여 미모의 '여자'로 변신한다. 이러한 마리에게는 집안에 가두어 애지중지 키워온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아들 긴야가 있다. 긴야는 오로지 나비 채집과 표본 만들기를 하며 폐쇄적으로 자라나는데, 어느 날 긴야는 마리가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며 자기가 강간사건으로 인하여 태어난 사생아임을 알게 된다. '여자'이고 싶었던 열여섯의 마리가 자신을 질투하는 여자 친구를 향해 복수를 계획한 결과였던 것이다.
어느 날 긴야의 앞에 미소녀가 나타난다. 그녀는 어린 시절 미술시간 선생님의 지적으로 상처를 받고 자신이 그린 지평선을 따라 학교 밖으로 걸어 나왔다. 몬시로는 '성의 쾌락과 외부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긴야를 유혹하지만 두려움에 찬 그는 몬시로의 목을 조른다. 집을 뛰쳐나간 긴야는 결국 마리의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여자아이로 변신하게 된다.

 

 

 

이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성적 정체성이 흔들리는 동성애자, 혹은 게이이다. 특히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의 '마리'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신의 의지'를 거스르고 여자로 살아가며 근육질의 남성들과 자유분방하게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다. 마리는 자기의 변신을 배우가 '역할'에 맞게 연기를 하듯 '역할놀이'를 통한 정체성 찾기를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나아가 그녀는 출생의 비밀을 감춘 아들 긴야를 외부와 단절시킨 채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훈육하고 지배한다. 그리고 긴야 역시 여자아이로 변신시킨다. 긴야를 유혹하는 미소녀 역시 게이이며, 제2장에서 일곱 명의 마리가 등장하여 음악에 맞춰 대규모 '뮤지컬쇼'와도 같은 장면을 펼치는 것은 초연 당시 실제 도쿄 게이바 무용수로 일하는 이들을 출현시켜 공연했다고 한다.
이 작품의 구석구석에 넘쳐나는 '이단'의 취향은 데라야마 슈지의 강한 개성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동성애, 트랜스젠더, 여장, 변신, 외설, 섹스, 강간, 살인, 남근, 관음증, 변태 등을 연상시키는 여러 장면의 파격적인 씬들은 시종일관 극에 긴장감을 더한다. 1967년이라는 초연 시기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소재는 당시에는 무척 대단한 파격이었다 하겠다. 외설적이고 엽기적인 장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잔잔하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과 상송, 시의 낭송을 통해 어느새 무대는 복고풍의 서정적이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모피의 마리'라는 것은 이 작품 중에 여러 번 인용되는 상송<La Marie- Vison>의 일본어역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털이 무성하게 난 마초(macho)적인 몸을 가진 여자 마리라는 이 중성을 나타내는 제목이다. 이 작품은, 남자이면서 여자이기도 한, 그러나 상처 입은 10대의 기억을 지닌 채 역할놀이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려는 '경계'의 영역에 존재하는 이들의 모습을 노골적이면서도 생동감 있게 투영해낸다.

 

 

 

 

데라야마 슈지(寺山修司)
데라야마 슈지(1935-1983)는 일본 현대연극사에서 연극이라는 제도의 바깥에서 전위적인 연극 활동을 펼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1935년 아오모리 현에서 태어나 고교시접 하이쿠에 심취한 이래 시작(詩作) 활동은 데라야마 슈지에게 주요한 창작영역이었고 그의 희곡에는 늘 시(詩)적 감수성이 흘러 넘쳤다. 1954년 와애다 대 교육학부 국문학과에 입학한 그는 1955년에 희곡 처녀작<잃어버린 영역〉을 시작으로 I960년에는 3막 극 〈피는 일어선 채 잠들어 있다>를 극단 〈시키〉의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1960년대 일본 소극장운동 1세대에 해당하는 그는 1967년 극단<덴조 사지키>의 창립공연에서<아오모리 현의 곱추》와<오야마 데부코의 범죄>를 연이어 성공시킴으로써 주목받기 시작한다. 데라야마 슈지와 극단<덴조사치키>의 파격적 인 흥행방식과 연출은 거리 극 (인력비행기 솔로몬)(1970)과<노크>(1975)에서 정점을 이루었으며, 또한 관객을 연 극의 중심으로 끌어내는<관객석>(1978), 거대한 공간을 극장으로 사용한 스펙터클한 연극<노비훈>(1978) 등의 작품으로 이어지며 그의 실험적인 연극운동은 일본 현대연극사에서 무척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시인, 극작가 및 연극 연출가, 영화감독, 소설가, 작사가, 평론가 등 전방위 적인 예술활동을 펼치던 데라야마 슈지는 아직 40대의 젊은 나이였던 1983년에 지병으로 요절한다. 그의 죽음은 많은 연극인 및 예술가들에게 어떤 한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것으로 여겨질 만큼 큰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