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히너는 다름슈타트에서 태어났고 24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았으며, 당시 그의 정치적인 견해로 인해서 슈트라스부르크로 피해야 했을 정도로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
작품 〈보이첵〉에서는 독문학 사상 처음으로 어떤 이상적인 인물이 주인공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가난하고 압박받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그는 그 당시 시대로서는 상당히 앞서가는, 즉 1880년부터 1900년까지의 시대적 경향인 자연주의 시대 (1880-1900)에서 다루게 될 테마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며 자연주의 선구적인 작가이다.
뷔히너 〈보이첵〉의 줄거리를 보면, 보병 보이첵은 착하고 매우 '가난한' 군인 졸병이다. 그는 군대에서 그의 상사인 대위의 권력 밑에서 맡겨진 일들을 수행해야 하고 의사의 의학실험 대상으로 이용되지만, 자신을 주위 환경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불쌍한 존재이다. 그의 삶의 유일한 버팀목은, 비록 돈이 없어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어도, 그와 함께 살며 아들을 낳아준 그의 유일한 사랑 마리이다. 그는 어려운 살림을 꾸려 나가고자 임무외의 일까지 열심히 도맡아 한다. 군인으로 받는 적은 월급과 의사의 실험 대상이 되어 의사와 계약을 맺고 몇 달이나 콩만 먹고 견디면서, 그 대가로 의사에게서 받은 돈으로 마리와 아들을 부양한다. 하지만 마리는 늠름한 군악대장의 유혹에 빠져 보이첵을 배신하게 된다. 그래서 보이첵의 삶 속의 질서가 무너지고 그는 실의에 빠져 마리를 칼로 살해하게 된다.
뷔히너가 1836년 쓰기 시작한 〈보이첵〉은 그가 1837년 24세로 타계하면서 미완성으로 남겨져 있다가 1879년 희곡으로 발행되어 1913년 처음으로 상연되었다.
이렇듯 그의 사후 오랜 시일이 지난 후에야 그의 작품이 독자의 관심을 끌게 된 이유는, 우선 작품 자체가 미완성인데다 그가 쓴 개개의 49개의 장면들이 최종적 원고로 볼 수 없을 정도로, HI, H2, H3, H4로 불리는 미완성의 원고들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판독하기 어려운 필체와 빛바랜 원고, 그리고 장면을 뚜렷하게 막으로 나누어 구분해 놓지 않았다는 점, 일부 장면을 지워버린 점 등은 후일 뷔히너의 유고를 정확하게 판독하기 힘들게 만드는 문제점들이었다. HI의 장면들은 심리적인 사건에 집중하여, 보이책의 질투심이 결국은 마리를 살해하게 되는 것으로 '심리적인 질투의 비극'으로 구상된 것이다. H2는 보이책의 사회적인 상황을 보다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어 '사회적인 비극'의 초안으로 보여 진다. H3는 〈교수의 집 마당〉 장면과 〈백치, 아이, 보이첵〉두 개의 장면으로만 되어있다.
반면 H4는 위의 두 테마를 묶어서 보이첵의 질투와 고독을 그의 사회적 상황의 결과로 나타낸다. 그러므로 작품의 분석을 위해서는 H4를 '잠정적인 최종원고'로 보아야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20세기에 이르러 〈보이첵〉을 연구하는 학자들, 그리고 연극 전문가들이 뷔히너의 유고를 정확히 판독하고자 노력하고 장면의 배열 작업에 힘쓰게 된다. 그러나 연극의 무대화를 위해서, 연극작가의 희곡이론에 따른 임의의 변경이 있게 되었다.
뒤렌마트는 자신의 개작에 따른 〈보이첵〉의 취리히 극장 초연 때 팜플렛에 쓴 〈보이첵에 대한 메모〉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뷔히너의 〈보이첵〉전체 텍스트는 없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무대에서 연기된 〈보이첵〉이 비록 뷔히너의 작품이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연극 전문가들에 의해 합성되었다는 것이다. 뒤렌마트는 자신의 개작 역시 뷔히너의 여러 판본 가운데 하나인 H4를 근거로 했지만, 이제까지의 다른 판본들처럼 하나의 콜라쥐(즉 다양한 텍스트들에서 인용하여 모아 붙인 것)라고 말한다. 따라서 자신의 개작이 뒤렌마트 자신의 연극적 입장에 따른 또 하나의 콜라쥐 임을 밝히고 있다.
뒤렌마트는 뷔히너의 〈보이첵〉내용을 많이 바꾸지 않음으로써 저자 뷔히너의 의도를 살리고 있다. 그러나 장면의 배열을 바꾸고, 결말 부분을 약간 변경함으로써 뒤렌마트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를 들어내고 있다.
첫 번째 장면 〈들판〉에서 졸병인 보이첵의 천한 작업 환경이 나타나며 그의 동료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보이첵의 태도가 나타난다. 그는 무엇엔가 쫓기는 듯 불안한 모습이고 미신에 의존하는 듯한 심리적인 두려움을 보여준다. 두 번째 장면에서도 집에 잠시 들렸으나 아이에게도 관심이 없는 듯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보이첵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마리가 이런 모습을 견디지 못하는 점은 뷔히너의 〈보이첵〉에서나 뒤렌마트의 개작에서 유사하다. 뒤렌마트는 이 〈마리의 방〉장면에 바로 이어서 세 번째로 〈의사의 방〉장면을 배열함으로써, 의사와 보이책의 대면 장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첫 번째와 두 번째 듯한 태도가 '의사와의 대면' 장면과 임을 알 수 있다. 대위와 군의관인 의사는 군대에서 장면에서 보이첵의 불안에 쫓기 연관이 있음을 조명하려는 의도 아래 계급의 군인들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어,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의사는 보이첵과 계약을 맺고 보수를 제공함으로써 보이첵을 의학 실험 대상자로 삼는다. 그는 자신의 탁월한 학문적 연구를 위해 보이첵에게 콩만 먹게 하고, 그 실험 결과를 조사하기 위해 보이첵의 모든 오줌을 제공토록 지시한다. 의사와 보이첵의 대면 장면은 길에서 방뇨를 한 보이첵을 야단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때 의사가 보이첵을 대하는 말투나 태도는, 자신의 모든 말만 맞고 상대방의 말은 모두 틀리다는 식의 위압적인 태도이다. 보이첵은 돈을 벌어, 마리와 아기를 부양하기 위해, 이러한 의사의 실험대상이 되어, 의사가 지정해준 음식만 먹어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보이첵이 일상생활에서 정상적으로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정상을 벗어난 그의 정신 상태는 의사에게는 흥미꺼리이다. 보이첵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가족의 안정을 위해 분투하지만 그 결과 결국 마리를 잃게 된다. 보이첵 자신은 그러나 이러한 전체적인 연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대위와 보이첵의 대화 장면도 그들의 권력 관계를 잘 나타낸다. 대위는 일거리 없는 병영에서의 그의 삶이 얼마나 지루한지, 아무 의미도 없이 세월을 보내야하는 자신의 병영 생활의 역겨움을 보이첵에게 털어 놓는다. 반면 살기 위해 부지런히 일해야 하는 보이첵은 하루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그는 상사인 대위의 모욕을 겸손히 참아낸다. 정식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 해서 도덕성이 없다는 대위의 비난에 대해, 보이첵은 기본적인 것이 채워져야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뒤렌마트는 보이첵이 이발을 끝낸 후 대위가 옷 입는 것을 거든 후에 팁을 받는 장면을 첨가함으로써, 보이첵이 이발해준 대가로 받는 돈이 푼돈임을 보여준다. 또한 대위가 보이첵의 어깨 위에 팔을 얹고 그에게 입을 맞추는 장면을 새롭게 첨가하여 대위의 비도덕적 측면을 조명한다. 그리고 개작에서는 대위가 마리와 군악대장이 함께 오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는 부분이 첨가된다. 후일 마리와 군악대장의 관계에 대한 대위의 조롱 섞인 언급은 보이첵에게 질투심을 유발하게 한다. 의사는 이러한 그의 흥분 상태를 보고 오히려 기뻐하며, 이 순간을 이용하여 보이첵의 맥박을 재고는 불규칙하게 맥박이 뛰는 것을 감지하자 특별수당을 제안한다. 의사는 보이첵의 불행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단지 학문적 대상으로 대하는 비정한 인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보이첵과 군악대장의 관계에서 군악대장은 보이첵의 상관은 아니나 보이첵의 라이발로 등장한다. 그는 마리를 차지함으로써 보이첵에게 굴욕감을 안겨주는 존재이며, 자신의 신체적 우월감을 뽐내며 보이첵에게 공격적인 말과 행동으로 대한다. 뒤렌마트는 보이첵이 면도하는 과정에서 군악대장에게 상처를 입히는 장면을 첨가하여 소극적이나마 보이첵의 반항심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드라마 〈보이첵〉의 무대 위에서는, 많은 폭력이 전개된다. 그리고 보이첵은 이러한 폭력의 희생자로 머문다. 이로써 주인공 보이첵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와 문화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는 인간의 본질의 문제, 즉 '죄인의 속성'을 가진 존재로써의 인간을 부각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인간의 악한 행태의 예가 보이첵과 계약을 맺고 그를 실험대상으로 부리며 그를 지배하는 의사가 있고, 상사로써 궤변을 늘어놓으며 보이첵을 조롱하는 대위, 자신의 신체적 우수함을 뽐내며 술로 보이첵을 위압하는 군악대장, 보이첵의 신체적 - 성적 그리고 사회적 - 물질적인 결핍이 그 원인이라 하더라도, 보이첵을 배신함으로서 그에게 상처를 주는 마리가 있다. 보이첵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 모두와의 관계에서 희생자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 자신도 스스로를 돕지 못한다. 그는 신체적, 지적, 사회적으로 그런 위치에 있지 못하다. 그의 무신론 적이고 미신에 의존하는 듯한 태도, 마리가 오로지 그의 삶의 버팀목이라는 점도 문제가 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당한 폭력을 마리에게 행사하는 것으로 작품은 끝이 난다. 뷔히너의 드라마의 경우, 마지막 장면에서 법원 관리들이 등장, “좋은 살인, 진짜 살인, 아름다운 살인'이라고 말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의 비정함을 나타낸다. 뒤렌마트의 개작에서는 의사가 이 대사를 말함으로써, 단순히 의학적인 모델로서 보이첵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다시 한 번 부각시키게 된다.
작품 〈보이첵〉은 사회적 폭력의 희생자가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가 되는 현실에 대한 통찰을 통해, 창조주의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의 회복에 대한 개개인의 의식을 일깨우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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