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릴 투르너의 『복수자의 비극』은 복수극의 전통을 따르는 작품이다. 복수극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뒤를 이은 제임스 1세 시대의 자코비안 희곡이 흔히 취한 형식으로 대부분 이탈리아의 궁정을 그 배경으로 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마키아벨리즘의 부정적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 즉 이 시대에 마키아벨리즘은 그 근본적 의미나 맥락과는 상관없이 무신론, 독살, 기만, 위선, 모함 등 모든 종류의 사악한 행위에 적용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매우 암울하며 권위와 위엄을 지니고 있어야 할 지배세력은 타락해 있는 상태이고 인간은 그저 욕망과 욕정으로만 가득한 존재로 묘사된다는 점 등이 공통된다. 절대 권력이나 선과 같은 요소가 부재한 혼란스러운 세계만이 작품세계로 등장하는 것은 절대왕조의 통치 시기가 끝나고 혁명기의 혼란으로 치달아갔던 17세기 초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복수자의 비극』은 여러 가지 특기할 만한 극작법을 통해 관객에게 그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이 작품이 가면이나 옷과 같은 '의상'과 관련된 요소에 깊이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작품에서 '옷을 갈아입는 다'거나 '가면을 쓴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행위로 여겨지고 있다. 공작의 막내아들은 가면을 쓰고 파티에 참석해 안토니오의 부인을 범하고 빈디체는 변장을 함으로써 피아토라는 별개의 인격을 지니게 되며, 이미 죽은 공작은 옷을 바꿔 입게 됨으로써 피아토로 오인 받아 또한번 죽게 된다. 이는 작품 전체의 중심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변형(transformation)' 과 관련된 것인데, 타락한 궁정에서 어느 것 하나 절대적이거나 안정적인 것이 없음을 반영한다. 모든 인간은 타락했으며 도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의 요소가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금방 악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이러한 세계에서 옷이나 가면과 같은 겉치장용 소품으로 사람의 인격이 순식간에 바뀌어 버리고 바뀐 인격으로는 어떤 짓도 자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빈디체가 처음에 들고 나온 글로리아나의 해골은 암울한 극중 세계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역할을 한다.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고 예쁘게 치장을 해도 그리고 그 뒤에서 그 어떤 악행을 거듭한다 해도 그 저변에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뼈로 상징되는 '죽음'일 뿐이다.
두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복잡한 플롯이 만들어내는 강렬한 극적 효과이다. 이 극에서는 주인공인 빈디체 이외의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음모를 만들어내며 이러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서로 얽혀서 뜻하지 않은 결말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거듭되는 반전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들고 복수자인 빈디체를 포함하여 모든 이들이 죽는 결말 부분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전개부분과 대비되어 강한 인상을 남긴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타락한 인간들의 면모를 그에 걸맞은 복잡한 이야기 전개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인간이란 과연 도덕적인 존재인가 하는 근원적 인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이 작품이 지닌 '메타극적(metatheatrical)' 속성이다. '지켜보기'라는 행위가 중요한 요소로서 극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모든 인물들이 서로를 몰래 지켜보고 있으며 그로 인해 흉계가 꾸며지고 사건들이 발전되어간다. 그리하여 극 중의 모든 사건들은 일부러 강조되는 듯 독자들에게 부각되고 그 해결 또한 극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악의 징벌과 복수'라는 행위에 대해 작가는 어떤 견해를 피력하고자 이 극을 썼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릴 투르너 (Cyril Toumeur 1575? ~ 1626)
영국 출생의 극작가. 에드워드 경의 서기관으로 스페인의 Cadiz 탐험 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조난당한다. 가까스로 아일랜드 해안가에 닿았으나 깊은 병을 얻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복수자의 비극 The Revenger's Tragedy(1607), 무신론자의 비극(The Atheist's Tragedy (1611)과 시집이 대표작인데, 복수자의 비극은 1607년 작가미상으로 출간되었다가 1656년 투르너의 작품으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들턴(Thomas Middleton)의 작품이라는 주장도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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