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의 대학살〉은 기존 지배질서에 대한 교묘한 전복을 통한 말로의 탈신비화 전략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경우도<에드워드 2세〉의 경우처럼 철저하게 정치적 문제를 소재로 하는 데, 결국 그 중심에는 왕권과 종교의 신화가 있다.
헨리 8세가 수장령을 통해 종교를 왕권의 발아래 둔 이후로, 영국에서 신교는 왕권을 지지하고 유지하는 수단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가톨릭은 여전히 왕권보다는 로마 교황의 권위를 더 중시하였기 때문에, 가톨릭 교리와 교도들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것은 왕권강화의 일환이었다.
<파리의 대학살〉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가톨릭교도들의 신교도 학살 사건을 다루면서 가톨릭교도들의 잔인한 행태를 고발하는 표면적 의미를 전달한다. 하지만 이러한 학살 사건을 주도하는 인물들이 바로 왕과 왕족들이고 그들이 학살되는 이유나 목적은 분명 자신들의 정치권력과 체제유지에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점은 신교도가 가톨릭교도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서 가톨릭교도들과 마찬가지로 학살을 약속하고,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기준이 아닌 철저하게 정치적 기준에 의해 복수를 꿈꾸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앙주, 즉 앙리 3세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가톨릭으로서 신교도 학살에 앞장섰던 앙주는 후에 앙리 3세가 되어 기즈 공작과 대립하게 되자, 로마 교황과 가톨릭교회를 저주하고 신교 국가인 영국과의 동맹을 맹세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디스 웨일 (Judith Weil)이 주장하듯 이 말로가 그리는 가톨릭의 잔인한 학살에 대한 두려움 뒤에는 정치적인 종교에 대한 경고가 숨어 있다. 종교와 신앙이 정치와 결탁하여 기득권과 체제유지의 수단이 되는 현실을 무자비한 학살 장면들을 통해서 보여줌으로써, 말로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당대 영국의 종교적 정치적 지배담론의 신화를 여지없이 발가벗기는 것이다.

말로 당대 영국사회의 종교적 토대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인 헨리 8세 때 행해진 종교개혁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으며, 특히 가톨릭과 신교가 정치와 맞물려 깊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 영국교회는 1534년 헨리 8세의 수장령과 함께 로마 가톨릭에서 빠져 나온 이후 메리 여왕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를 거치면서 피비린내 나는 충돌을 경험했다. 헨리 8세의 본처 소생인 메리여왕은 어머니의 불행 때문에 아버지를 증오했으며, 결국 아버지와 달리 가톨릭을 지지하였다. 따라서 메리 여왕의 통치기간 동안 가톨릭교도들이 권력을 장악하여 수백 명의 신교도들이 사형을 당했으며 국외로 망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가톨릭을 국교로 확립시키지 못하고 일찍 사망했으며, 그녀의 이복동생인 엘리자베스가 왕위를 계승하여 다시 신교를 지지하였다. 마이클 망간(Michael Mangan)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가장 잘 팔리던 책이 메리 여왕의 통치하에 가톨릭교도들에 의해 고문당하고, 수족을 잘리며, 사형을 당했던 신교 순교자들의 끔찍한 이야기를 모은《순교자의 책》 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신교와 가톨릭 사이의 갈등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 기간에도 계속되었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가톨릭교도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생각해 볼 때, 말로 당대의 영국사회가 종교적으로 일관된 질서 속에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엘리자베스 여왕은 신교를 지지했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을 모시는 권력층은 신교도들이었기 때문에 가톨릭을 배척하고 사람들에게 신교교리를 신봉하도록 담론과 질서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특히 헨리 8세 이전에는 오랜 기간 동안 로마 가톨릭을 신봉해 오던 당시 영국인들에게 갑작스런 개종은 상당한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메리 여왕 시절에 또 다시 가톨릭으로의 개종이 있었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여왕 당대 정치권의 신교 신화 만들기는 더욱 필사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웃나라 프랑스에서 가톨릭교도들이 신교도들을 학살하는 사건을 다룬 말로의 작품은 당시 영국의 미묘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초미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 분명하다. 말로가 작품의 표면적 의미로 가톨릭 왕족들과 귀족들의 이중적인 마키아벨리 적 간교함과 잔인함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러한 영국 의 상황을 의식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프랑스 신교도 문제를 영국의 상황에 똑같이 적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영국의 경우와 달리, 프랑스의 신교도들은 자신들의 합법적인 왕에 반항하는 반역자들 이었으며, 더욱 미묘한 것은 무대 위에서 직접 학살을 즐기는 프랑스 왕의 동생 앙주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오랫동안 결혼협상이 진행되던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 앙주를 잔인한 살인자로 또한 왕이 된 후에는 동성애자이자 간교한 마키아벨리언으로 묘사한 것이 말로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파리의 대학살〉의 원고가 상실되어 배우들의 기억에 의존하는 원고로 말미암아 많은 부분이 누락된 이유도 여기에서 연유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프랑스에서 박해받는 신교도와 영국에서 득세하는 신교도의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엄청난 폭력을 저지르고도 자신의 권력만을 탐하는 권력층의 적나라한 모습은 가톨릭이건 신교이건 그 종교적 신화의 절대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가톨릭교도들의 잔인한 이중성은 프랑스 왕 샤를(Charles)의 어머니인 카트린느(Catherine) 왕비를 통해 작품의 첫 장면에서부터 제시된다. 신교도인 나바르(Navarre)의 왕이 프랑스 왕의 여동생인 마가레트(Margaret) 와 결혼한 이유는 분명 가톨릭과 신교 사이의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카트린느 왕비는 자신의 딸의 행복이 달려 있는 결혼식 당일 나바르를 사위로 부르면서도 방백을 통해 "잔인한 피로 이 결혼식을 끝장내주리라” 고 선언한다. 그녀는 종교를 통한 자신의 권력행사를 방해하는 경우에는 자신이 낳은 자식들의 불행을 개의치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신의 손으로 왕인 자식을 독살하기도 한다.
카트린느 왕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뿐이다. 그녀는 비록 자신의 아들이지만 신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다른아들을 왕으로 삼아 자신의 뜻대로 프랑스를 다스리려 한다. 이런 카트린느의 태도는 에드워드 2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절대적 왕권의 신화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효과를 초래한다. 실제로 그녀는 제 13장에서 샤를 왕을 독살하고 동생인 앙리를 왕으로 세우는데, 이는 결국 왕의 존재가 또 다른 권력가의 손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왕권에 대한 신화가 이처럼 카트린느 왕비를 통해서 조롱거리가 된다면, 종교를 절대적으로 만든 신화는 기즈에 의해서 조롱당한다. 그는 카트린느 왕비를 도와서 신교도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일을 자행하지만, 그의 진정한 목표는 신앙을 위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의 왕관이다. 그에게 가톨릭이나 신교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절대적인 것은 더욱 아니다. 마치 악마처럼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자를 유혹하고 파멸시키는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이처럼 대학살을 주도한 카트린느 왕비와 기즈의 비도덕적이고 위선적인 행태는 가톨릭교도들의 부정적 측면들을 부각시켜 공격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어머니에게 독살당하는 샤를 왕과 샤를 다음으로 왕위에 오르는 앙리 왕에게서도 그러한 부정적 측면들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 이다. 샤를 왕은 우유부단하고 자신의 뜻대로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어머니와 신하들의 말을 따라 자신의 의지를 손쉽게 바꾸는 인물이다. 그는 처음에는 신교도들을 학살하는 것을 원치 않는 모습을 보이지만, 동생인 앙주와 어머니 카트린느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꿔 기즈에게 학살을 명한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기즈의 부하에게 총상을 입은 것을 호소하는 신교도 해군제독에게 천연덕스럽게 그를 위험한 폭력으로부터 지켜주겠다고 약속하며 평화를 깨트리려는 자들은 그 자리에서 즉각 사살할 것을 명하는 이중성을 보여준다. 샤를의 동생 앙주(Anjou)의 이중성과 잔인성은 신교도들을 학살하는 날 "난 변장을 했으니,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니 만나는 자는 모두 죽일 작정이다, 라고 말하는 대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즈의 반역으로 인해 나바르 왕을 친구로 받아들이고 신교를 지지하게 된 그는 가톨릭 사제에게 독살당해 죽어가는 순간에도 잔인한 복수심을 버리지 않고 이번에는 가톨릭교회를 저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가톨릭 지도자들에 대한 부정적 묘사가 역으로 신교도 지도자들에 대한 존경과 찬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나바르는 가톨릭 왕들에 비해서 결코 흥미로운 인물이 아니며, 극의 후반부에서 기즈와 대립하는 앙주, 즉 앙리 3세보다도 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떨어진다. 그는 기즈와 카트린느 왕비가 꾸미는 음모의 위험성에 대해 간파하고 있으면서도 정략결혼에 의존하는 인물이며, 자신과 콩데 제후의 선생들이 눈앞에서 죽음을 당하는 데도 자리를 피하는 인물이다. 그리 무엇보다도 그는 기즈나 가톨릭 왕들과 마찬가지로 잔인한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다. 작품을 무리하는 마지막 대사에서 나바르는 독살당해 죽어가는 앙리의 복수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나는 그의 죽음을 복수하겠다고 맹세하노니,
로마와 모든 가톨릭 성직자들이
앙리의 죽음으로 인해 프랑스에서
나바르가 왕이었던 시기를 저주하게 될 것이오!

나바르의 이러한 복수선언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그 이유는 수많은 신교도들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죽인 장본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앙리였으며, 그의 죽음은 같은 가톨릭교도들 사이의 불화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바르는 수없이 희생된 신교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교도들을 학살한 자를 위해 복수를 맹세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의 이러한 복수맹세는 그의 통치기간 동안 기즈가 행했던 학살과 동일한 피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케 해준다. 이는 결국 신교도나 가톨릭이 서로 다를 바가 없고, 옳고 그름은 다만 누가 권력을 잡느냐에 달린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그리고 이 러한 사실은 메리 여왕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기를 겪으면서 가톨릭과 신교도들의 뒤바뀐 운명을 직접 경험한 당대 영국 관객들에게는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을 것이 분명하다.
말로는 이처럼 종교를 이용한 권력의 신화를 폭로하는 수단으로 잔인한 폭력장면들을 선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작품의 전체 24개 장면 중에서 13개 장면이 독이나 칼, 총으로 신교도들을 학살하거나, 아니면 가톨릭교도들이 서로 음모를 꾸며 살해하는 장면으로 꾸며져 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계속적으로 행해지는 이러한 잔인 한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흥미나 공감보다는 오히려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으며, 그러한 잔인한 폭력의 궁극적 원인이 종교를 이용해서 권력을 추구하는 몇몇 권력가의 야심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게 될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잔인한 폭력배후에서 우유부단하게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또한 권력투쟁의 암투에서 벗어나지 못해 수많은 생명들을 희생시키는 어리석은 왕들의 모습은 신교이건 가톨릭이건 종교 자체와 왕권이 지닌 신화를 의심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비록 극의 결말에서 신교도인 나바르 왕이 프랑스를 다스리고, 학살을 저질렀던 기즈를 비롯한 어리석고 잔인한 가톨릭 왕들이 죽어 신교도의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영국사회의 신교도 관객들에게 위험 한 작품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에드워드 2세〉에서 모티머가 죽고 에드워드 3세가 왕권을 회복하기 때문에 기존질서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시각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기즈가 주도하는 대학살은 〈몰타의 유대인〉에 등장하는 바라바스(Barabas)가 자신의 딸을 포함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행하는 끔찍한 학살과 닮았다. 또한 페르네즈(Ferneze)나 수사들의 위선적 행위를 통해 기독교 사회의 반유태주의 담론이 갖는 모순성을 폭로하는 것처럼, 말로는 당대 사회의 반가톨릭 신화를 반유태주의 신화와 마찬가지로 탈 신비화시키면서, 더 나아가 종교적 차별뿐만 아니라 당대 사회에서 종교 자체가 갖는 신비성을 탈신비화 시킨다고 할 수 있다.
〈에드워드 2세〉와 〈파리의 대학살〉은 두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현 실정치적 요소를 배제하고 살펴본다면, 말로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 가지로 개인의 욕망추구와 그 실패를 다룬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에드워드 2세의 동성애, 모티머와 기즈의 권력욕 등은 템벌레인의 정복욕, 바라바스의 재물 욕, 파우스투스의 지식욕과 비교될 수 있을 것 이다. 이들의 욕망은 결국 그들의 파멸을 불러오지만 기존관습이나 질서를 뛰어넘는 극단적 경험을 관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욕망을 극대화시킨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에드워드, 모티머, 기즈가 말로의 다른 주인공들과 분명하게 다른 점은 그들이 역사 적 실존인물들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욕망을 넘어서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 현실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더구나 당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말로의 탈신비화 전략이 두 작품에서 모티머와 기즈로 대변되는 마키아벨리 적 권력의 냉혹함과 폭력의 재현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즘의 재현은 작품의 서문에 마키아벨리가 직접 등장하는 〈몰타의 유대인〉의 주인공 바라바스에게서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있지만,그는 당대 사회에서 악 당의 전형으로 낙인찍힌 유대인이라는 점에서 현실정치 문제와는 거리가 있다. 반면 공교롭게도 〈에드워드 2세〉와<파리의 대학살〉에서 끔찍한 폭력을 자행하는 대표적 두 인물 모티머와 기즈는 공통적으로 철저하게 정치적 권력을 주구하는 위선적 인물들이다. 이들은 겉으로는 국가의 안전과 발전, 그리고 종교적 이상과 같은 가치를 내세워 폭력을 휘두르고 상대를 제거하지만, 속셈은 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우는 것이 목적이다. 이들의 이중적 위선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말로의 탈신비화 글쓰기 전략의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말로가 글쓰기 전략의 일환으로 두 작품에서 재현하는 폭력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폭력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모티머가 에드워드에게 행하는 폭력과 기즈가 신교도들에게 행하는 폭력은 겉으로는 도덕질서와 종교적 이유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권력과 왕관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위선적 정치성을 폭로하는 극적 수단이다. 〈에드워드 2세>에서는 에드워드 왕의 타락과 나약함이 모티머의 정치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에드워드가 겪는 끔찍한 폭력과 죽음은 아이러니하게도 모티머의 간교하고 냉혹한 속셈을 관객들에게 폭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파리의 대학살〉에서는 가톨릭신도인 기즈의 잔인한 학살과 폭행이 신교를 지지하던 말로 당대 영국관객들에게 비난과 저주의 대상이 되겠지만, 종교를 이용하여 권력을 탐하는 기즈의 위선적 폭력은 가톨릭뿐만 아니라 신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임 을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
말로의 죽음이 신화가 된 것도 그의 작품에 나타난 이러한 충격적 탈신비화 요소 때문으로 여겨진다. 비록 작품의 결말은 기존담론의 신화를 부인하지 않고 제자리에 갖다 놓지만, 그 과정에 나타나는 극단적 위반과 일탈의 욕망은 관객들에게는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당대 권력층의 눈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비록 모티머와 기즈 가톨릭교도들이 결국 죽음을 당하고 당대 지배계층이 만든 신화를 재확인시켜 주지만, 그들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 권력투쟁의 끔찍한 정치적 현실은 오히려 그 신화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효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서 휘두르는 폭력에 의해 무대 위에서 무자비하게 펼쳐지는 에드워드 왕과 신교도들의 끔찍한 고통과 죽음은 정치적 신화의 한계를 분명하게 느끼게 해준다.

말로의 다른 작품들 〈템벌레인 대왕〉, 〈몰타의 유대인〉, 〈파우스투스 박사〉등의 작품들도 모두 이러한 이중적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두 작품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템벌레인, 바라바스, 그리고 파우스투스는 모두 극단적 욕망을 추구하는 인물들이지만 결국 기존질서, 즉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기독교 질서의 결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말로에게 그러한 질서의 회복은 큰 의미가 없다. 그가 추구한 탈신비화 전략은 바로 비록 추락할 것을 알면서도 신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충격적 장면들을 통해서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는 것이다. 초기의 세 작품이 나중에 쓰인 〈에드워드 2세〉와 〈파리의 대학살〉보다 더 인기를 누린 이유는 그의 이러한 정치적 성향이 작품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고 문학적으로 승화되어 표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이러한 탈신비화를 추구하는 정치적 성향이 현실정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에드워드 2세〉와 〈파리의 대학살〉이 말로의 죽음이라는 새로운 신화를 형성하게 된 배경이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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