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야마사키 데쓰 '입교대학 조교수 제자 살인사건'

clint 2015. 11. 7. 09:50

 

 

 

 

 

1973년, 일본 전국을 충격에 빠트린 사건 중의 하나가 일명 '입교대학 조교수 제자 살인사건'이었다. 9월 초순, 시즈오카 현의 해변에서 일가족으로 보이는 사체 4구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4인의 유품과 유서가 발견되었는데, 유서로 인해 당시 입교대학 조교수로 있던 오바히로요시(당시 38세)와 그의 부인 및 어린 두 자녀가 동반 자살을 시도하였다는 것이 판명된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일가족을 자살로 몰고 간 또 다른 살인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기 시작한다. 오바 조교수는 여 제자와 불륜을 저질렀을 뿐 아니라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여 제자를 살해하였던 것이다. 오바 조교수는 사체를 하치오지 시의 어느 별장 근처에 암매장하였는데, 수색 과정에서 여제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하이힐이 발견된 바 있다.

(물고기 전설) 은 오바 조교수의 치정에 의한 살인 및 일가족 자살이라고 하는 충격적인 사건을 소재로, 상궤에서 벗어나 극단으로 치닫는 개인과 가정을 묘사한 '공포의 가정극' 이다. 환자들이 모여 있는 정신병원의 안뜰. 30대의 젊은 부부와 물고기가 되고 싶다는 청년, 복싱 챔피언 출신의 노인. 휠체어에 앉아 자신의 하이힐을 찾고 있는 젊은 여인과 의사 및 간호사. 어느 화창한 날, 등장인물들은 의사의 지시에 따라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한가로이 하루를 보내고자 하지만 정신이상이라고 하는 깊은 수렁 속에서 좀처럼 한가로이 하루 보낼 수가 없다. 젊은 부부는 벤치에 앉아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 듯 보이지만, 남편의 외도로 말미암아 부인이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입원해있는 상태이다. 대학교수였던 남편은 성심을 다해 부인을 돌보고 있지만, 부인은 광기어린 시선으로 남편을 집요하게 질책한다. 젊은 청년은,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와 그녀의 아들 에로스가 유프라테스 강의 정취를 즐기고 있을 때 괴물 티폰이 나타나자 깜짝 놀라 강물에 뛰어들어 물고기가 된 것처럼, 자신도 물고기가 되어 유프라테스 강을 헤엄치고 싶다고 한다. '물고기 전설'이라는 제목은 바로 이 부분에서 유래한 것으로, 유프라테스 강을 헤엄치고 있는 아프로디테와 그의 아들 에로스는 젊은이를 짓누르고 있는 근친상간의 이미지를 내포한다. 복싱 챔피언 출신의 노인은 원래, 챔피언의 부인으로 스스로가 남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호흡하고 있는 병원의 안뜰은 증오와 질투, 죄의식, 불안과 초초, 노이로제 등이 뒤얽혀 매우 혼란스럽다. 그러나 휠체어를 탄 젊은 여인이 등장하면서부터는 두 부부를 중심으로 베일에 싸여 있던 불륜과 살인, 일가족 자살이라고 하는 비극의 참상이 드러나게 되는데, 실제사건에서 유품으로 발견된 하이힐은 작품에서 조교수와 여 제자 간의 불륜 관계를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물고기 전설)이 초연된 것은 1981년으로, 당시 평단은, “예를 들어 가라 주로에 있어서의 (흡혈희), 오타 쇼고(太田省퓨)에 있어서의<고마치후덴>, 쓰카 고헤이에 있어서의 (아타미 살인 사건)등과 같이 작가나 극단의 연극 활동에 있어 (물고기 전설〉은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며,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뛰어넘느냐 하는 것이 하나의 큰 과제가 될 것”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극단 〈쓴보사지키혼)>를 거쳐, 1980년 후지이 빈, 다케우치 이치로 등과 함께 극단<덴이 . 21>을 창단할 당시 야마자키 데쓰는 "저는 언더그라운드 연극의 2세대라고 합니다만, 1세대 선배들에 비해 무엇을 만들어 왔을까요?"라며 "재출발을 위해 자신이나 집단의 연극표현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해 극단을 결성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일본 연극계에서 야마자키 데쓰는 앙그라 연극 제2세대로 불리고 있다. 데라야마 슈지의 〈덴조사지키〉, 가라 주로의 〈상황극장>, 구시다 가즈요시의 〈자유극장>, 사토 미코토의<검은 텐트 68/71>, 스즈키 다다시의<와세다 소극장>등으로 대변되는 1세대 언더그라운드 연극은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걸쳐 반체제주의와 반상업주의를 근저로 무대 위에서 실험적이며 독특한 세계를 창조해 냈다.
이러한 1세대에 이어 활약한 것이 쓰카 고헤이, 야마자키 데쓰, 다케 우치 주이치로, 류잔지 쇼 등의 이른바 앙그라 2 세대이다. 이들이 주로 활동한 1970년대는 전대의 다이내믹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고도의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생활 속의 풍요가 도래한 시기였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풍요롭지만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모순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증가하게 된다. 야마자키 데쓰의 대표작인<물고기 전설>또한 '풍요로운 일상 속의 모순' 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야마자키 데쓰는 언더그라운드 연극의 2세대라고 하는 자각과 자부심 속에서 독특하면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를 취해 강렬한 무대를 연출하였는데, 소재의 핵심은 바로 '범죄'였다. (이누마치 - 경찰관 여대생 살인 사건)>(1978),<표류가족-예수의 방주 사건>(1981),<어느 여 병사, 고향에 돌아가다 -연합적군 사건 노트>(1981) 등이 그것인데, 충격적인 실제 사건을 동해 현대의 시대상을 조망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물고기 전설〉은 이러한 일련의 작품 중 대표작으로, 야마자키 데쓰가 추구한 범죄 극에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욕망에 대한 성찰 및 심리분석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물고기 전설〉의 여러 등장인물 중, 극의 진행 을 결정적으로 변환시키는 것은 아니마이다. 휠체어에 탄 채 등장하는 아니마는 세리 조교수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불륜의 상대로, 세리 조교수에 의해 살해된 인물이다. 그런데 이 아니마의 원형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로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운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에서 찾을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아니마(Anima)'란 남성의 무의식 속에 내재하는 원형적인 여성상으로, 남성의 성적 욕망이 인격화 된 것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여성의 무의식 속에 내재하는 그것을 아니무스 (Animus)라고 하는데, 극 중의 아니마는 융의 그것과 일치하고 있 다. 연극평론가 오자사 요시오는 C. G. 융의 이론에 근거해 볼 때, 작품에 등장하는 세리 조교수는 결혼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물로 무의식 속에 내재해 있던 아니마 상을 여제자인 아니마에게 투영하였으며, 종국에는 제자 아니마를 죽임으로써 의식적으로 내재적 아니마를 극복하고자 하였다고 하였다.
이러한 (물고기 전설>의 연출에 있어 야마자키 데쓰는 광기어린 시선과 속사포 같은 대사를 선택하였고, 대단원의 자살 장면을 위해서는 실제로 작은 용수지를 재현해 무대에까지 물이 흘러넘치는 등 쉽게 볼 수 없는 명장면을 만들어 나갔다. 초연 당시 2시간 30분에 달하는 공연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무대를 응시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이 무대 위에서 강렬한 인상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희곡부터가 풍부한 내용성과 문학성, 그리고 구조적 완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임은 부연할 필요가 없다. 사실,<물고기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은 참담할 정도로 어둡고 우울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 전반에는 웃음이 끝이지 않는다. 그것은 탁월한 언어 감각으로 언어유희를 이끌어냈기 때문인데, 극 전반에 흘러넘치는 유머와 위트는 등장인물들의 상처와 치유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긴장과 완화의 반복적 상승효과를 높여주고 있다.
공포의 가정극<물고기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잘못으로 인해 정신질환이라고 하는 깊은 수렁에 빠셔 기약 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은 언젠가 수렁에서 나와 자유로이 유프라테스 강을 헤엄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과연 그들의 간절한 소망은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일까? 이<물고기 전설>을 통해 각 개인에 내재돼 있는 서로 다른 본성과 이성, 그리고 광기를 경험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야마자키 데쓰(山崎哲)
극작가 야마자키 데쓰는 년 미야자키 현 출생으로, 미야자키 오미야(大宮)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극 활동을 시작해, 197O년 히로시마대학을 중퇴하고 상경하여 가라 주로의<상황극장 (状況劇場)〉에 입단하였다.
1971년에 극단 〈쓴보사지키〉를 창단하여 1979년 해산할 때까지 이 극단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류잔지 쇼(流山妃祥)의<엔게키단>을 거쳐, 1980년 후지이 빈, 다케우치 이치로 등과 함께 극단<덴이 • 21>을 창단하였다.
1981년 (물고기전설>,<표류가족》으로 기시다쿠 니오 희곡상을 수상하였으며, 1987년에는<지로 씨의 우울>등으로 기노쿠니야 연극 상을 수상하였다.
1994년 미토예술관(水戸표神#;) 운영위원에 취임하면서<덴이 . 21>의 활동을 접고 평론가로서 활동을 펼쳤지만, 2002년부터 새롭게<신 덴이 • 21>을 이끌며 연극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