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도 없고, 나이도 연고도 알 수 없는 옥단은 목포 유달산 자락에서 물을 길어주고,
이참봉댁 잔심부름 등을 하며 밥 굶지 않고 살고 있다.
홀아비로 아들 봉춘이와 함께 사는 태길네와 그나마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때는 일제 말기, 대동아전쟁이 막바지에 달하며 징병과 징용이 극에 달하던 때,
이참봉댁 아들 영찬이 징병을 거부하며 도피한다. 징병을 면하고자 장인의 도움을
받으려는 사위 완수와 가족들간에 일대 설전이 오가는 와중에,
옥단이 자기한테만 찾아오는 영찬의 행방을 실토한다.
결국 영찬과 옥단 모두 잡혀가 모진 고문과 옥살이를 한 끝에 옥단은 정신을 잃고 만다.
해방이 되고 껍데기만 남은 이참봉 댁을 지키는 태길을 찾아온 옥단,
붙드는 태길을 뿌리치고 옥단은 다시 어디론가 사라진다.
얼마 후 다시 목포 공동수돗가를 찾은 옥단, 옛일을 추억하며 노래 하고 춤을 추다.
바위에서 실족하여 그만 목숨을 잃는다.
씻김굿으로 치러지는 옥단의 장례식, 모여있는 마을사람들을 푸근하게 지켜보며
옥단은 하늘나라로 간다

작가의 해설
옥단이는 1930년대 초반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목포에서 살았던 실존인물이다. 목포 지역에서는 목포의 4대 명물(?)로 「역전의 멜라꽁」, 「평화극장 외팔이」, 「대성동 쥐약장수」 그리고 옥단이가 손꼽힌다 이들은 모두가 실존인물이되, 서민생활과 밀착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지체 부자유자들이지만 서민들과 친숙했었다. 그 인간미가 한결같이 고았던 사람들이라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옥단이는 유일하게 여성이었고 가장 인간성이 좋고 많은 일화를 남긴 점으로 지금도 5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이름이다. 그러나 옥단의 신상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소상히 아는 사람이 없다. 정확한 생년월일도, 그 고향도 가족관계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언제 어떤 사연으로 목포로 흘러들어 온지도 모른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고무친의 외로운 사람이라는 사실뿐이다. 옥단은 날품팔이꾼이다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허드렛일도 해주고 수돗물을 길러주고 애경사 때는 빠짐없이 드나들었다. 그러나 그 노동의 대가는 일정치도 않거니와 요구도 안 했다. 시간이 늦으면 골방이건 마루건 아무데서나 새우잠을 지곤 했다. 그런데 옥단이는 성격이 낙천적인 데다가 몸짓은 유달리 풍만했다 그러나 곱지도 않은 얼굴에는 언제나 지분을 발랐고 붉은 댕기를 물려 쪽을 지고 값싼 옥비녀를 꽂아 멋을 부렸다. 그렇다고 눈을 크게 뜨고 마주보는 적이라곤 드물었다. 아래로 내려 깔거나 흘겨보는데 어떤 순간 사팔뜨기 같은 인상도 보였지만 그 누구도 똑똑히 그 모습을 그려낼 순 없었다.
게다가 지능의 발달이 약간 지진한 데다가 언제나 싱글벙글 웃으면서 누구에게나 격의 없이 대하는 친근감이 있었다. 그래서 어른이건 아이건 그를 부를 때 “옥단어!"라고 하대했다. 목포 지방 사투리가 말끝이 “어”로 끝나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옥단어!"라고 누구나 스스럼없이 부르던 밉상스럽지 않은 그 성품은 만인의 친구이자 말벗이기도 했다.

옥단이가 무슨 낙으로 살아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일해주고 밥 얻어먹고 약간의 삯전을 받았지만 예금이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부잣집에 잔치가 있는 날이나 제사 파젯날에는 빠지지 않고 불려 다니는 게 옥단이었다. “옥단아! 한 곡 뽑아봐야!" 누군가가 말을 꺼내면 옥단이는 방 윗목 구석지에서 일어났다. 그 풍만한 앞가슴 속에서 하모니카를 꺼내서 불다가 흥이 나면 궁둥이 춤이며 병신춤, 그리고 코팍 딴스를 추는 게 장기 가운데 하나였다 주인마님이 술이라도 권하면 옥단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노래와 춤과 재담으로 많은 사람을 웃기는데 밤이 깊어 갈 줄도 몰랐다. 옥단이는 만인의 벗이었다. 남을 미워할 줄도 슬픔을 토해낼 줄도 모르는 호인이라면 호인이라고나 할까 그러한 옥단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여자 나이 30대로 추산이 된다면 의당 우여곡절이 있게 마련이지만 옥단은 좀처럼 내색을 안 했다. 의협심이 강하고, 노동을 꺼리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만 하는 여인의 인생 항로가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을 것만은 틀림없으리라 나는 이 작품에서 그 가려진 이면을 추적하고 싶었다. 가진 것은 없어도 베풀 줄 알고, 아는 것은 없어도 인정이 있고, 외롭게 살면서도 외롭지 않았던 옥단의 삶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었다.

그러므로 여기에 묘사된 이른바 ‘사건’은 어디까지나 작가적 상상이자 창작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어렵게 살았던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의 폭풍 같은 세월 속에서 살아 나온 옥단의 삶의 궤적은 곧 우리 현대사의 뒷골목 풍경이기도 하다. 한 무지몽매한 여인이 시달려 살았던 현실은 그대로 우리의 역사이자 시대의 반영일진대 이 작품은 단순한 연극이 아닌 우리의 현대사와 그 아픔을 되돌아보자는 데다 그 의미를 두고 있다. “옥단어!" 하고 모두가 천대했던 한 여인의 생애를 통해 우리의 어두웠던 시대에 대한 진혼이기도 하다. 천대받으면서도 끈질기게 버티며, 남을 위해 베풀다가 길지 않은 생애를 마친 불행한 여인 옥단은 우리 민족의 자화장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려서부터 옥단이를 가까이 지켜보았다 어찌 보면 바보 같고 어찌 보면 천덕꾸러기 같으면서도 그녀가 만인에게 친근감을 주는 까닭이 궁금했다. 니는 언제부터인가 인간 옥단이의 삶을 소재로 희곡을 써야겠다고 구상을 해온 게 어언 7년째가 된다. 그런데 작년에 우연히도 배우 강부자(姜富子)가 자기의 연기 생활 40주년을 기념하는 희곡을 써주었으면 하는 제의가 있어 집필에 박차를 가한 셈이다. 그리고 연출가 이윤택도 뭔가 토속적이면서 사람 냄새가 진하게 느껴지는 ‘옥단어!‘에 색다른 의욕을 느낀다는 데서 의기투합이 이루어진 셈이다 뿐만 아니라 공교롭게도 올해가 나의 팔순의 해이고 보니 뭔가 의미 있는 연극공연이 될 것 같아 새삼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것은 나이 80에도 희곡을 쓸 수 있게 해주신 주변의 모든 분들과 공연을 맡은 〈연희단거리패〉 여러분, 그리고 오늘날까지 나의 예술과 삶의 받침대 구실로 해온 아내에게 마음속 깊이 고맙게 여길 뿐이다.
작가에게는 정년도 퇴출도 없다. 오직 작가는 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진솔하게 하고 싶은 얘기를 작품을 통해서 발언하는 자유가 허용되어 있다 이 작품 ‘옥단어!’는 바로 그 자유에 대한 발인임을 밝혀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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