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범석의 첫 장막극인 ‘공상도시’(1958)는 진정한 사랑을 위해 가정을 버린 하영 그의 현재 아내인 소설가 경심 그리고 하영에게 버림받은 아들 동준의 시선을 대비시킨다. 하영은 구여성이었던 아내와 이혼하고 그녀의 후배이자 젊은 소설가인 경심과 재혼했지만 현재에는 남편으로서나 가장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살아간다. 경심에게 자신의 소설쓰기를 이해하지 못하며 경제적으로 무능한 하영과의 삶은 자신의 판단 착오로 인한 실수일 뿐이다. 교차점을 찾지 못하는 이들의 입장은 각자가 행하는 과거에 대한 회상과 독백을 통해 드러난다. 이들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에 포괄될 수 없는 자신만의 주관의 영역을 드러낸다 하영은 경수처럼 현실에 대한 부정과 입사 욕망 사이의 이중성보다는 극중 현실에 대한 수긍과 거부를 오가는 양가적 태도를 보인다. 경심의 대응은 사뭇 다르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현실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또 다른 현실 즉 소설 속에서 가상의 현실을 다시 만들어낸다 그녀는 이 공상 속에 거주한다. 현실을 대하는 이들의 서로 다른 태도는 하영의 현실을 이중으로 위태게 한다. 현재 경심에게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은 자신이 소설 속에 창조해 놓은 현실일 뿐으로 그녀는 하영과의 삶에 실재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더욱이 정숙한 아내를 버리고 아들을 포기하고 아버지와 절연하는 등 천륜을 어기면서까지 경심을 선택한 하영의 진심은 경심이 쓰는 소설의 소재로 휘발되어 버릴 상황에 직면한다 하영은 한편으로는 아내와의 관계 회복에 노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설을 중단시킴으로써 자신의 현실을 복원하려 한다. 그러나 소설쓰기에 대한 경심의 의지는 확고해서 하영에게 남은 선택이란 껍데기만 남은 가장의 지위나마 유지해가는 것뿐이다. 동준에게도 극중 현실은 부정의 대상이다 그는 한쪽 다리와 한쪽 눈을 잃은 상이군인이자 빈곤으로 인해 어머니와 동생의 죽음을 겪은 자로서 피해의식과 분노로 가득한 심리상태를 보여준다. 그는 스스로를 가족에게나 사회에서 버려진 자로 여기며 자신을 유리시킨 하영과 경심의 삶이야말로 허위에 찬 것임을 폭로한다. 동준의 등장으로 하영은 동준의 아버지와 경심의 남편이라는 지위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하영은 동준에게 경심을 만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가 하면 아들과의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해서 금전적인 도움을 약속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가부장적 정체성을 회복하려고 할수록 그의 정체성이란 사실상 텅 비어 있었음이 반증될 뿐이다 그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하영은 깊은 죄책감을 느끼며 고립을 선택한다. 이처럼 ‘공상도시’는 전통적 가치만 훼손되었을 뿐 그 보상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보여준다. 여기서 등장인물들은 사랑과 예술이라는 근대적 허위의식을 선택한 결과 현재의 정신적 불구상태를 노출한다. 이렇게 보면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정신적 상태는 전통적 가치가 흔들리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진단을 위해 마련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작품해설
희곡 「공상도시」는 나의 극작생활에서 최초로 쓴 장막극이다. 그리고 해방 후 본격적인 소극장 연극 운동을 표방하고 나선 제작극회가 1958년 봄 제3회 공연작품으로 첫선 보인 작품이고 보면 나에게 있어서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부여되는 작품이다.
1955년 단막극 「密酒」로 극작가로 등단한 뒤 나는 주로 단막극만 써왔다. 물론 그 이전인 1951년 3월 고향인 목포에서 3. 1절 기념 종합예술제에 2막극 「별은 밤마다」를 공연한 적이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희곡작품의 질이나 연극에 참가한 사람들의 역량으로 봐서는 이른바 아마추어 연극의 테두리를 못 벗어났었다. 그 당시 지역사회에서의 연극공연은 어느 모로 보나 촌티를 못 벗어났으리라는 점은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1956년 서울로 올라와 몇몇 동인들과 제작극회를 탄생시켰을 때의 우리들의 기백은 불처럼 뜨거웠다 그리고 여기 동인으로 굳게 뭉친 면면을 보면 쉽사리 알 수가 있다 임희재, 오사랑, 최창봉, 김경옥, 조동화, 노희엽, 최상현, 구선모 최백산, 박양경, 전근영, 그리고 좀 늦게 김유성, 이두현, 박현숙 등 극작, 연출, 연기 등 각 분야에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재목감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 당시 대학을 나온 지성과 교양을 갖춘 30대라는 점에서도 각 언론기관이나 극계에서는 비상한 관심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제작극회의 목표는 한마디로 새 시대와 함께 하는 진정한 「현대연극」을 지향하는데 있었다 이 말은 종래의 작업극단이 아직도 신파연극의 아류에서 못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화술이나 동작 등 그 표현법이 과장되고 비현실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데서 맴돌고 있었기에 우리는 그것을 타파하자는 주장으로 이른바 내면적 연기의 추구를 큰 과제로 삼았다. 그러므로 희곡 자체도 종래의 대극장에서 흥행을 노리는 가식적인 희곡에서 벗어나서 인간의 내면성이나 심리를 표출하는 진지한 인간성 추구의 연극을 목표로 삼았고, 번역극보디는 창작극에다 더 비중을 크게 두었다 공연도 서울만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지방까지 진출하려는 의욕을 나타냈다 그 첫 실천으로 우리는 1958년 3월 남대문에 있었던 ‘서울문리사범대학(명지대학의 전신)’에서 발표회를 가졌으니 그것이 바로 「공상도시」였다. 3일간 공연을 마치자 두 달 후 전남 광주극장에서 2일간 5회 공연을, 목포극장에서 2회 공연을 결행하였다. 이렇게 지방공연이 성사된 배경은 당시의 광주일보가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초청해준데 크게 힘을 입었다. 서울 공연에는 오사랑이 연출을 맡고 주인공인 여류소설가와 그 친구 역은 베테랑급 성우이기도 했던 천선녀와 고은정이 맡았었다. 그러나 지방 공연에는 김소원, 안영수가 맡았고 연출도 김경옥으로 바꿔야만 했었다 관객들의 반응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나로서는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문자 그대로 금의환향이라 할 수 있는 공연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연은 내가 그 후 50년 동안 연극 외길을 걸어 나올 수 있게 한 원동력이자 나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도 「공상도시」는 아끼고 소중하고 정감이 가는 작품이다.
나는 빛바랜 원고를 다시 찾아 이번 희곡집에 싣기로 했다. 그러므로 「공상도시」로부터 시작하여 팔순이 되는 오늘날까지 이어진 연극 인생은 이미 50년 전에 막연하게 풀었던 공상 아닌 꿈을 실존의 세계로 인도한 희곡 「공상도시」는 나에게 있어서 큰 모멘트가 되었다. 지금 읽어보면 낯이 뜨거워질 정도로 미숙한 대목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나의 연극인생의 시발점임을 말해주는 증거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누가 뭐라 해도 나는 그 꿈의 소중함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이 공연되자 뜻하지 않은 파문이 일어났다 이 작품의 주인공의 모델이었던 여류작가 P여사가 크게 분개하여 그토록 아끼던 나에게 심지어는 절교까지 선언을 한 것이다 나로서는 변명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작품의 모티브는 작가 P여사의 사생활의 일부에서 따왔지만 내가 그리고자 하는 건 작가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이었을 뿐 그분의 인격을 손상케 하거나 폭로를 꾀한 의도는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P여사의 오해와 분개를 씻어내기 위하여 나는 나름대로의 고민도 컸었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던가 다시 그 분과 나 사이의 끈끈한 정의는 전보다 더 돈독해지고 인간관계도 진솔하게 회복시킨 점에서도 「공상도시」는 나에게 하나의 교훈이 되기도 했다. 내가 굳이 최근에 쓴 신작 사이에 「공상도시」를 끼어 넣게 되었는가라는 사연을 헤아려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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