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변>은 시인 황지우와 연출가 이상우가 만난 작품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과 연출가의 만남. 흡사 강호의 "고수"와의 만남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들이 만들어낸 작품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하고, 새로운 형식의 코미디이다.
고수들이 만나 발견하고 만들어낸 세계는 바로 한바탕 흥겨운 "놀이"와도 같은 세계다.
연극 <변>은 "열녀춘향수절가"와 "남원고사" 바탕으로 이야기를 차용하고 변형시켜 재구성한 작품이다. 성춘향과 이몽룡이 중심이 되던 작품을 과감하게 뒤엎고 변학도와 아전들을 선두에 세운다.<변>에서는 춘향의 모습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 볼 수 없다.

연극<변>의 웃음의 이면에는 인간에 대한 통찰과, 뼛속을 꿰뚫을 만큼 예리한 시대반영이 엿보인다. 시대는 조선이지만, 권력의 상징 "변"과 그들 둘러싼 인물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현재 한국적 상황이 고스란히 읽혀지기 때문이다. 고수들이 만나 연극<변>에는 언어유희, 배우의 유희, 연출의 유희, 그리고 시대의 유희가 담겨 있다!
본래 춘향전은 이몽룡과 성춘향, 변학도의 삼각관계를 축으로, 세 인물이 중심이 되어 극이 진행되지만 본 공연은 아전과 기생이라는 원전의 주변인물이 중심인물이 되어 극의 흐름을 이끌고, 세 사람의 애정관계는 변의 짝사랑으로 모습을 바꾸는, 일종의 혁명과도 같은 구도를 지니고 있다. 그 동안<춘향전>을 재해석한 공연은 많았지만, 이토록 서사 구조를 완전히 뒤엎는 작품은 없었다. 그렇기에,<변>은 기묘하고 괴상한 '그로테스크 코미디'로<춘향전>보다 우리 삶에 충실한, 진정 사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변>의 주인공인 다섯 명의 아전들과 다섯 명의 기생, 변학도와 친구까지 100분간 펼쳐지는 이들의 이야기는 바보들의 행진을 연상시킨다. 대제학의 자제로 술이라면 두주불사요 장안에서는 한 문장 날리는 연애시인 변학도이지만,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춘향에게 수청 한 번 받아보려 관아 일은 자신을 따라온 친구에게 모든 것을 맡겨 버린 채 춘향을 향한 공허한 시만 읊는다. 변학도에게 당할 때 마다 비상대책회의를 여는 아전과 기생들. 매번 아무런 작전을 세우고 우리 현대사의 한 부분을 마음 놓고 조롱하고 풍자한다. 쟁쟁한 출연진 모두 이름값에 부응6쇼 하는 수준급의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내 목을 베고 또 베어도 달라지는 건 없어. 사람들은 잊어버리니까. 그것도 아주 빨리. 그리고 나는 다시 돌아오는 거야”라는 말을 남긴 채 유유히 떠나는 변학도의 마지막 대사는 독재자를 쉽게 용서한 한국 현대사에 대한 날선 풍자다.<변>은 희극의 재미와 위정자들을 방치했던 우리 모두에게 일종의 부채감을 안겨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작가의 변- 황지우
이 대본은 "열녀춘향수절가"와 "남원고사"(설성경 역주 "춘향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1995)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차용하고 변형시켜 재구성한 것이다. 서사 자체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동시성이라는 시점에서 전개되는 만큼 음악도 우리 판소리와 재즈 사이의 적극적인 하이브리드 스타일로 엮어 졌으면 좋겠다.
황지우 :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총장 역임
홍익대학교 미학과 박사과정 수료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대 미학과 석사과정 수료
서울대학교 문리대 미학과 졸업.

연출의 변 - 이상우
이번에는 '변' 입니다. 황지우 시인의 음악극 대본 ‘째즈 춘향이'에서 아전과 기생 부분만을 떼어내 좀 별난 희극으로 폭발시켰습니다. (’째즈 춘향이'는 '춘향전'이 본인 '열녀춘향 수절가'와 '남원고사'를 바탕으로 수년 전에 황지우 시인이 써낸 미발표 장막 음악극 대본입니다. 황지우의 시를 연극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아주 오래전 '새들...’ 때부터였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까지 인연이 닿지 않았습니다.) 이번 '변' 공연은 나름대로 몇 가지 별난 데가 있습니다.
연출이 만든 '변'의 처음 대본은 어쩌면 뻔한 골조였을 겁니다. 공연 대본을 완성한 것은 거의 다 배우들의 몫이었습니다. 이 공연은 연습 내내 배우들이 창작해내는 수많은 '다음'과 '즉흥'으로 완성된 희극입니다. 배우들이 선수니까 가능했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내가 아는 것은 모두 배우에게서 배운 것이다." 라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 희극의 유전자는 무엇일까? 그런 생각으로 흔히들 하지 말라는 것도 하고, 말하자면 관습적인 연기술을 버리고, 일방향적인 '전달'이 아니라 관객을 '유혹'하고 '홀리는' 연기와 무대를 실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혼란스러운, 폭풍같은, 난장판같은 'Chatic Theatre'(이런 말이 있다면)가 되었습니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한 작품을 전라, 경상 두 가지 버전으로 올립니다. 물론 배우도 연출도 쉽지 않은 연습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공연 방식도 처음하는 짓이라 참여한 모두에게 자극이 되었고 좋은 경험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변라도', '변상도, 두 팀은 배우들의 개성도 다르고 배우마다 더늠도 다르고 사투리라는 음악도 다릅니다. 마치 다른 편곡의 노래를 두 가수가 따로 부르는 것처럼 두 가지 공연의 맛이 전혀 다릅니다. 어느 서양의 그림쟁이가 그랬습니다. “I am for an art that is political-erotical-mystical." 마음에 드는 말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뜻이겠지요. '연극성' 이러는 것은, 말은 어려운 듯하지만 결국 '재미'로 수렴합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같은 희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대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희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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