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손기호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clint 2015. 11. 5. 14:33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는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의 정점에 있는 ‘봄’이라는 계절에 ‘인연’이라는 화두를 놓았다. 이 작품은 가장 가깝게 만나면서도 결국 타인일 수밖에 없는 ‘부부'가 모티브다. 한 노부부의 삶을 조망하며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인연의 의미를 짚어보고 결국 ‘나’ 라는 정체에 대한 질문에 이른다.'나'가 만나는'인연'과 그 인연의 우주공간, 그리고 시간의 의미를 짚어본다. 그리고 문학적이지만 일상의 소소한 재미로 극적인 집중력과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반전의 묘미와 엔딩의 맺음은 삶이란 깊이의 확장으로 이어져 감동의 눈물을 짓게 만든다.

 

 

 

비루한 삶의 모습과 이면의 의미를 잔잔히 묘사해주며 삶과 인생에 대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되돌아보게 해주는 작품이다. 극이 시작되면 이혼을 앞둔 아들이 고향집에 혼자 밤에 내려오는 모습이 우울하게 그려진다. 고향집에 돌아와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지만, 환영받지 못한다. 다큰 아들, 아니 중년에 접어든 아들이 이혼하고자 별거차원에서 가족을 떠나 혼자 내려온 것이다. 자기가 운영하던 사무실까지 정리하고서…..
고향집은 무대에서 경주로 묘사되고 있고, 부모님은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오래도록 50년간 결혼해서 살아온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토록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그 삶의 내면이 아름답고 행복한 것보다는 고통스런 현실의 나날이 많았던 듯 느껴진다. 부부는 오랜 세월 살아 왔지만, 그 둘의 말투는 따갑고 거칠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둘만의 굳건한 신뢰와 사랑의 감정이 들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이제 오늘 내일하는 어머님을 모시고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의 일상은 같이 밥먹고, 화내고 싸우다, 다시금 과거의 일을 회상하기도 하고, 일상의 잔잔한 감상을 나누기도 한다. 극 속에서는 이웃집 서면 댁이 등장하는데 남편에게 매일 맞고 사는 역할로, 배운 것도 부족하고 말 많은 경박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 내면은 순수하고 아름답다. 지금까지 등장한 등장인물들의 면모를 보면, 잘난 것도 없고, 대단한 것도 없는 것 같고, 삶의 주된 무대에서 벗어난 뒷면의 우울한 보통 사람들의 빛날 것 없는 비루한 삶의 모습 같아 보인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들 모두의 내면과 삶의 모습의 투영에 다름 아니다. 누구나 어릴 적 순박하고 어리숙하고 착한면도 있을 것이고, 삶과 현실에 찌들려 투정하고 짜증내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내 뜻과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현실의 사건과 일들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이모든 모습을 연극은 차분히 그려낸다. 드디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화장을 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언덕에 서서 삶을 이야기한다. 힘든 삶이지만, 가족 간의 대화와 맘의 나눔이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다. 일상은 별 볼일 없고 비루하지만 그렇게 힘내고 살아가는 것 잔잔한 삶의 모습 자체가 우리 인생이라는 것, 그리고 그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연극은 도입에 70대 노부부의 적요(寂寥)한 생활이 소개되고, 이웃에는 60대 가장과 50대 부인이 거주함이 대사를 통해 알려진다. 대부분 노인의 가정이 그러하듯 70대 가정의 남편은 아내를 윽박지르는 게 일상이고, 이웃도 남편등살에 못 이겨 70대 가정으로 자주 도피를 해 온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노부부의 아들은 아내와 헤어질 결심으로 간단한 짐 몇 가지만 갖고 부모의 집으로 오고, 이웃집 아낙은 월남전 참전용사의 부인으로 남편은 상이용사인 지체장애자이고, 아낙은 문맹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노부부의 한적하고 조용한 생활이, 이웃 아낙의 예고 없는 방문으로, 깨어지기도 하고, 객석에 폭소를 유발시키기도 한다. 자식의 이혼결심을 언짢게 생각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 전개되고, 그래도 자식을 이해하려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모습이 훈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웃의 상이용사는 환자이동의자(wheelchair)에 앉아 생활을 하고, 가끔 검술용 칼을 뽑아 들고, 부하에게 호령하듯 부인을 핍박한다. 노부부의 아들은 자신의 고통과 번뇌를 무언극처럼 연기하고, 노부부의 갈등은 가끔 쏟아 내는 아버지의 역정소리 외에는 내면연기로 처리된다. 이웃부부의 독특한 삶과 이웃아낙의 무지에서 야기되는 행동만이 객석에 웃음을 유발시킬 뿐 연극은 이른 봄의 꽃 향기가 어두운 그늘 속으로 분출되는 느낌이다. 대단원에서 이웃집 아낙은 남편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본의 아닌 실수로 남편을 살해하게 되고, 자신의 부모의 삶과 이웃의 삶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아들은 가족에게로 다시 되돌아가고 아버지는 오래된 느티나무분재에서 메말라 죽은 고목을 뽑아버리는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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