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배소현 '고등어'

clint 2018. 5. 27. 18:36

 

 

 

왜 하필 제목이 고등어일까. 교복을 입은 청소년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생선 고등어와 겹쳐진다. 이 작품은 죽은 고등어가 아니라 살아 파닥대는 고등어 같은 청소년을 잘 그려냈다. 이 공연을 본 관객들이 극장을 떠나며 대사 '파닥파닥'을 중얼거리는 이유이다연극 '고등어'는 작가 배소현(30)이 겪은 자전적 이야기다. 극 중 인물 지호는 작가의 과거 모습으로 평범한 15살 여중생이다. 그는 반항적인 경주를 몰래 동경하던 중에 '친구 하자'는 쪽지를 충동적으로 보낸다. 이들은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지만 둘도 없는 친구가 돼 경남 통영으로 여행을 떠난다작가의 15년 전 체험임에도 현재 중학생의 생각과 모습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서울 금호 여중과 경기 성남숭신여중 연극반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도왔다. 평소에 자주 쓰는 말 "어쩔/ 아놔/ 졸려/ 언제 끝나/ 대박" 등이 대본에 실렸다. 또 학생들이 연습을 참관하면서 냉정하게 내린 평가가 공연에 세밀하게 반영됐다. 청소년 극이라서 일반 연극보다 완성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은 공연 시작 5분쯤 지나면 가볍게 깨진다통영과 제주도 사이의 185번 해구에서 잡힌 고등어 떼가 갑판 위로 쏟아지는 장면은 이 연극의 압권이다. 탁구공 등 크기가 다른 플라스틱 공으로 은유 된 고등어 떼가 무대 바닥에 쏟아지는 소리에 일부 관객은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 갑판 장면은 출연진이 얼마나 잘 단합됐는지를 살짝 드러내기도 했다. 배우들은 자기 연기를 하면서도 무대에 여기저기 흩어진 공을 발끝으로 살짝 밀쳐내 빈 곳을 확보했다. 이 공간은 이어서 연기하는 배우의 동선 중 하나였다. 고등어 떼가 가득 찬 갑판 위를 달려가는 연기에서 배우가 공을 잘못 밟아서 넘어지지 않게끔 순발력 있게 서로를 배려한 것이다.

 

 

 

 

 

지호와 경주는 통영 여행을 마지막으로 더는 만나지 못한다. 연극에서 담아내지 않은 이후의 삶이 궁금해지는 것은 이 작품이 관객에게 던지는 선물 같은 질문이다. 답에 대한 힌트가 공연 안에 있다. 지호와 경주를 안전하게 뭍에 내려준 갑판장의 대사에서다갑판장은 "(고등어는) 끝까지 살아볼라꼬 몸부림에 부림을 치다, 그 몸부림이 즈들 몸이 된 아들인기라, 싸고 흔다다 캐서 사람들이 몰라서 카제 야들, 적어도 진짜로 죽을 만큼 살다가 죽는 아들이다"고 했다. 돈도 없고 힘도 없으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헬조선의 어른들에게도 추천할만한 작품이다.

 

 

 

 

작가의 글

2014년 어느 겨울밤, 지금도 살고 있는 나의 석관동 옥탑방에서 고등어는 시작되었다. 유난히 줍고 혹독했던 그해 겨울, 나는 외롭고 막막해져서야 비로소 내 청소년기를 밝혀준 한 친구를 떠올렸다. 그리고 몇 해 전 어느 새벽 블로그에 거칠게 끼적여둔 짧은 글을 찾아보았다. 2010115일 새벽 333분에 저장된 글은 식탁에 놓인 고등어구이 반 토막을 바라보다 기억 속으로 섬광처럼 찾아온 나와 한 친구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 글을 다시 찾아 읽은 밤, 텅 빈 페이지에 고등어라는 세 글자를 썼다.

1998,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나는 자주 정신이 혼미해지곤 했다. 마흔 명 가까이 되는 친구들과 똑같은 교복을 입고 갇혀 지내다시피 하는 좁은 교실은 물고기들을 빼곡히 가둬놓고 키우는 양식장 수조 같았다. 호르몬이 터져 나오는 성장기의 몸에 브래지어를 차고 생리를 하며 아침부터 작고 딱딱한 의자에 모범생인 척 앉아 있는 것도, 친구 관계가 삶의 거의 전부인 학교생활에서 쉬는 시간마저 혹여나 무리에 섞이지 못할까 봐 긴장하는 일도 모두 버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나의 학교생활에 한 줄기 빛이 생겼다. 남들은 모르는 비밀 친구가 생긴 것이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난 것인지, 나는 팍팍 눌러쓴 편지를 그 아이의 책상 서랍에 숨겨두었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 후로는 없다. 바라고 바라던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꿈같은 사건 말이다. 별것 아닌 일에 출석부로 뒤통수와 등짝을 두들겨 맞는 것이 다반사였던 그 시절, 나는 오직 그 친구가 조금이라도 덜 맞길 바라는 마음에 숙제를 두 개씩 해와 이른 아침 서랍 속에 몰래 넣어두곤 했다. 숙제가 되어 있는 노트를 발견한 친구가 고개를 돌려 찡긋, 눈인사를 보내면 나의 학교는 햇살로 물들었다. 당시에는 그저 온몸으로 흠뻑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던, 지금도 내 몸에 여전히 새겨져 있는 그 감각은 아마도 살아 있다라는 느낌일 것이다.

삶은 매 순간 처음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우리는 모두 처음인 오늘을 산다. 그런 삶의 한가운데서 나는 말하고 싶다. 죽기 위한 몸부림은 없다고. 열다섯 살 지호와 경주는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파닥인다. 잔잔해 보이는 일상의 수면 아래에서 서로의 파닥임을 알아본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그러다 그 파닥임이 한계에 부딪히자 두 사람은 수조를 탈출하는 물고기처럼 익숙하던 삶의 문을 박차고 나간다. 파닥임이 몸부림이 되는 순간, 두 사람은 달린다.

처음부터 의도하고 쓰진 않았지만 고등어청소년 극으로 공연되었다. 청소년 그중에서도 여자 청소년, 그중에서도 여중생의 이야기. 주체적인 존재로서 쉬이 조명되지 않던 열다섯 살 두 여학생이 주인공이다. 공연을 위해 작품을 수정하던 초반 단계에서는 그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했기에 우선 나의 청소년기를 반추했고, 동시대 청소년들에 대한 리서치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열다섯 살 소녀들의 삶은 어떠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충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청소년기는 단지 성인이 되기 위한 과정의 시간이 아니다. 성인에게 질풍노도 속 꽃처럼 피어나던 푸른 시절로 기억되는 그 시간은, 청소년들에게는 삶의 전부인 매일이다. 그것은 성인에게도, 남자 청소년에게도, 여자 청소년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두 소녀의 몸으로 감각하는 세계를 통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나누는 작업의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서도 고민해본다. 어설프고 충동적으로 보일지라도, 그들은 매 순간 자신의 삶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아이는 눌러도 자란다.’ 일본의 문학가 사카구치 안고의 말이다. 인간은 결국 스스로 자라는 존재, 우리 모두 그렇게 자라왔다. 삶을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스승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일 것이다. ‘고등어를 쓰며 생각했다. 존재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성장한다고 그러니 성장하기 위해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때론 헤맬지라도, 자주 막막해질 지라도 결국 우리의 삶이 우리를 자라게 할 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다. 화분이 깨져도 식물은 자란다. 고등어는 살아있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경환 '아름다운 이곳에 살리라'  (1) 2018.05.30
고연옥 '내 이름은 강(江)'  (1) 2018.05.28
황나영 '좋아하고 있어'  (1) 2018.05.27
박춘근 '말들의 집  (1) 2018.05.27
김태웅 '달빛 유희'  (1) 2018.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