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선욱현 '생고기 전문'

clint 2018. 5. 25. 09:17

 

 

햇빛조차 들지 않는 밀폐된 지하실에서 살아가는 철이. 그는 유능한 외과의사인

아버지에 의해 알 수 없는 불치 판정을 받고 20살까지 밖에 살 수 없다고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여 년 간 유폐된 공간에서 불안한 삶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게다가 고기만 먹어야하는 등의 제한적 생존조건이 덧붙여진 희귀병환자이기도 하다.

이 남자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性的 놀이에 집착한다. 죽음 앞에 서 있는 그는

여학생과 창녀들과의 비정상적 성관계와 잔혹한 유희를 통해 절망뿐인 삶을 위안 받는다.

그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위해 간병인 겸 창녀들을 사서, 그가 갇힌 방에 넣어준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돼지>라는 별명의 여자를 통해 사랑을 느낀다또한 <미숙>이란

여자를 통해서는 수치심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살아온 생을 되짚어보게 된 것이다.

 

 

 

거기에서 의문을 갖게 된다. 사람이란 뭘까?

돼지나 미숙이 자신을 향해 욕한 것처럼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돼지 새끼 -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것인가. 이런 의문을 지닌 채 철이는 여성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철이 자신이 사람인가 아닌가. 다분히 주관적인 이 질문의 답변은

'밀봉계약'이라는 형식으로 구체화된다. 간병인으로 들어 온 20대 초반의 은지란

여자는 돈만 있으면 행복한 집을 꾸며 새 출발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문제가 애매하긴 하지만 객관식으로 "그렇다" "아니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하면

되기 때문에 은지 역시 이 위험한 내기에 응한다.

은지는 철이가 진정 원하는 답변을  해서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될까.

철이가 이겼을 경우 과연 그는 상대에게 무엇을 바랄까.

경우의 수는 두 개. 봉인은 뜯겨진다.

 

 

 

 

 

끔찍하고 공포스럽기로는 선욱현의 작품 중 가장 강도가 높은 생고기 전문에서도 그러하다. 이상스러운 불치병에 걸려 평생토록 살균된 수술실 같은 지하실에서 오로지 생고기와 약으로만 생명을 유지하는 철이의 삶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유능한 의사인 아버지의 힘으로 생명을 유지하기는 하나, 외모로서도 인간의 몰골이라고 할 수 없을 뿐더러, 아버지가 돈을 주고 사온 여자 은지에게 온갖 수발을 받으며 폭력적인 성행위를 일삼는다. 작품이 진행되면서 철이의 비밀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폭력의 강도도 점점 높아진다. 철이 역시 그런 삶이 끔찍하다고 생각하나 딴l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뿐이니 불가피하다. 결국 철이가 먹는(그리고 나중에는 은지까지 함께 먹는) 그 생고기가, 그곳을 거쳐 간 은지 같은 여자들의 인육임이 드러난다. 표면적인 상황은 이렇게 끔찍하지만, 희곡상의 해설에서 철이를 흉물스럽고 때론 귀엽다.’ 라고 명시되어 있다. 초연 무대에서는 그로테스크와 공포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웃음의 여지가 거의 없었지만, 연출에 따라서는 초반부 철이의 천진스러움이나 육체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웃음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 물론 그런 요소들이 오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되지만 말이다 선욱현의 작품에서 이러한 공포와 웃음의 뒤섞임은, 단순히 심각한 작품에 웃음의 양념을 넣는 전술적 차원을 넘어서 있다. 오히려 그것은 작가의 세계 인식의 핵심에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시적으로 보면 우리의 삶은 뒤숭숭하고 공포스럽고 끔찍한데, 인간들은 그 속에서 죽지 않고 끈질기게도 살아간다. 그리고 이런 삶의 사소한 것들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참으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서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계속 밀고 나가면 뒤숭숭하고 공포스러운 세상과 만나게 되고, 또 공포스럽고 뒤숭숭한 세상으로부터 출발한 작품에서도 간간이 웃음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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