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70년대 불행했던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가난이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강요된 현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공장에서 만나 사랑을 하게되고 결혼을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군대에 가게되고 그곳에서도 돈을 좀더 벌고자 월남전에 참전하고 돌아온다. 평소 전주이씨 왕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는 고엽제로 가려움증이라는 후유증을 앓게 되고. 점점 병이 깊어질수록 조선왕조의 부활에 대한 과대망상에 빠진다.
아버지는 아들을 낳기 전 자신의 태몽에 대해 점쟁이들의 꿈해몽에 대한 집착으로 아들이 왕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시대의 격변기 마다 혼란이 일어나면 나라에 왕이 없음을 한탄하고, 조선왕조의 부활을 앞당기기 위해 대원군이 절을 불태운 전설처럼 자기도 자기 무덤의 터로 절을 불태우는 망상에 사로 잡히게 되고...그 꿈은 이후 정신병동에서 이룬다.

월남전파병을 통해 군은 최신장비로 무장하고, 경부고속도로 건설등 경제적 발전의 기반을 조성하게 되는 기회를 맞이 한다. 하지만 국가재건을 위한 비용의 필요성, 우방국들의 지원을 얻기위한 유일한 카드, 조국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참전용사의 자부심뒤로 우리에게 남겨진 그림자 또한 너무 많다. 수많은 우리의 젊은들의 피에 대가로 고엽제라는 전쟁후유증은 아직까지도 그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있으며, 그 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은 몸이 썩어 들어가는 병, 사지마비, 이름모를 간지럼 증세, 말초신경마비, 선천성기형등의 증상으로 고통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비극은 본인 뿐 만 아니라 2세에게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의 명분을 위해 개인을 희생해온 지난 시절 이데올로기. 월남전은 이렇게 우리에게 아픈 상처를 남겼지만 그 표면적 실리와 명분에 가려져 어느덧 국민의 무관심속에 자리잡고 말았다. 무엇이 명분이고 실리인가 이데올로기속에 함몰되어 버린 슬픈 역사의 그림자들.. 오늘날 경제적 윤택뒤로 숨겨진 우리의 치부... 이 시점에 다시 되풀이 되는 명분없는 이라크파병. 40년전 월남파병의 시대를 다시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정경환은 〈난난〉과 〈나! 테러리스트〉를 통해 권력에 대한 야욕으로 역사의 흐름을 ‘순류’ 에서 ‘역류’ 로 바꾼 위정자들의 과오, 그리고 역사의 전환기 때마다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시류를 거스른 인물들에 대한 단죄의식을 치열한 역사의식으로 탐구하는 세계에 침잠했다. 그리고 그는 그 이후에도 계속 〈태몽〉과 〈나의 정원〉을 통해 권력의 폭력에 의한 인간적 자존의 상처와 역사적 과오에 대한 부채로서의 참회를 통한 트라우마를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시도로 선을 보인 작품이 바로 2003년 6월에 서울의 아리랑 소극장에서 초연된 〈태몽〉이다. 이 작품은 처음 제목이 〈이씨 전기〉였지만 뒤에 〈태몽〉으로 바꾸게 된다. 자신이 직접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5 . 16 군사혁명 시기부터 1970년대의 월남전 참전, 그리고 10·26 사태까지 현대사의 정치적 격변기를 시간적 배정으로 아버지 세대가 겪은 정치적 폭력과 전쟁의 참혹한 후유증을 형상화하고 있다. 월남전에서 살육의 경험을 통해 인간성 말살의 참혹함을 경험하고 돌아온 아버지는 ‘고엽제’ 병에 걸리고 그때부터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퇴행적 사고와 기행적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은 이씨 조선의 존엄한 왕손이라는 자각이다. 아버지는 자신을 대원군으로 착각하여 이발소에 만난 처녀를 자신의 아들인 고종의 비로 간택하는가 하면, 정신병동에서는 환자들이 보는 앞에서 대관식을 거행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 속에서 보여주는 아버지의 퇴행적 사유와 기이한 행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군부 정권의 폭력과 전쟁의 참혹함을 통해 인간적 자존에 상처 입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버지는 자신이 이씨 조선 왕가의 후손이라는 퇴행적 사고의 보호막으로 인간성 말살의 현장에서 자신을 의도적으로 격리시킨 심리적 방어기제로 볼 수가 있다.
정신병동에 갇힌 아버지가 환자들과 함께 대관식을 진행하는 동안 나누는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아버지는 지금까지 권력에 복종하며 지내왔다고 심경을 토로한다. 그러나 자신은 뒤늦게 그러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백성을 아파하는 군왕의 시대로 피신한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비상식적인 퇴행적 사유와 기이한 행각이 시작된 것이다. 아버지는 결국 정신병동에서 대관식을 무사하게 진행함으로써, 그의 후손인 아들만은 아파하는 군주가 되어 헐벗고 가난한 백성을 어여삐 여기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작가는 환자3의 말처럼 “백성이 있고 왕이 있는 것이다. 백성이 굶주리면 군왕도 먹어서는 아니된다. 백성이 추우면 군왕이 먼저 옷을 버려야 한다."고 군주의 바른 덕목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이처럼 한 인간의 퇴행적 사유와 행각을 통해 군부 정권의 광적인 권력의 야욕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정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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