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명곤 '아리랑' '아리랑2'

clint 2018. 5. 21. 06:25

 

 

 

전통연희의 현대적 수용과 민족극 수립을 목표로 창단된 극단 아리랑의 창단 공연이다. '아리랑'은 떠돌이 배우와 연극 지망생이 만나 나운규의 무성영화를 제작하며 일어나는 광대 자신들의 이야기와 극중의 내용이 서로 교차하면서 판소리, 민요, 가요, 신파, 약장사, 원맨쇼 등 다양한 연극적 소재 표현과 두 연기자의 연기력을 통하여 우리 고유의 해학과 풍자, 웃음과 재미, 그리고 때로는 비장함과 눈물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아리랑 극단의 <아리랑> 극단 창단 멤버들은 마당극 창시 멤버들의 일부라서 그런지 미리내극장에 들어서면 우선 장치부터 장터의 임시 가설무대 같은 마당극 스타일의 느낌을 준다. 광목천 따위로 자그마한 호리존트를 만들어 담백한 먹물로 구름·산 같은 것을 몇 줄 그려 놓았는데 그것이 어쩌면 장생 그림과 비슷하다. 그 호리존트 같기도 하고 스크린 같기도 한 중앙 장막 옆으로 또 좌우에 가리개 천 같은 장치가 있다. 중앙 장막에 눈망울 같은 두 개의 구멍이 나 있어서 배우가 얼굴을 내밀 수도 있고, 장막 가운데 상하가 열려 있어서 출입이 가능한데 중앙을 통한 대담한 등∙퇴장보다 좌우로 드나들며 장면전환과 역할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좌우의 두 가리개가 최소한의 장치 구실을 하고 무대 한 쪽에는 만능 상자가 하나 놓여 있다. 그것은 책상도 되고 걸상도 되고 소도구 상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당극 스타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징과 북이 있다.
이렇게 무대를 설명하면 극장 무대의 일반적 미술장치에 익숙한 관객들, 초가집이거나 양옥의 응접실 등 사실적 세트에다 풍경 묘사 또한 리얼하거나 그것을 이그러뜨린 추상양식에 익숙한 관객들은 우선 깨어진 연극적 약속에 어리둥절해진다. 그러나 장막이나 가리개 천 따위도 없이 소리광대 하나와 손님 몇 사람만 있어도 우리의 전승 판놀음은 시작된다. 상상력의 확대는 관객의 것이고, 광대는 소리를 통해 그 상상력의 계기를 만들어 준다. 이른바 허구라는 구조를 가지고 이미 다 짜여져 버린 상상력의 세계에 끌려 다니는 수동적 관객이 아니라 관객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전승연희 방식을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마당극은 오히려 리얼한 무대장치가 거추장스럽다. 그래서 여백의 장으로 남는 무대는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기껏해야 장터의 이동장막 무대처럼 바람이 불면 휘장이 흔들거린다. 그런 장치는 실제에 있어서 극장 무대로서는 적합치 않다. 이미 고정관념이 되어 버린 극장의 화려한 무대에 대해서 자연 상태인 소박한 장막 장치는 을씨년스럽다. 차라리 극장이 아닌 집회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판놀음을 벌이는 것이 마당극패들의 본령이 될 것이다. 피카디리극장에서는 이장호 감독의 영화<외인구단>을 관람하려는 청소년들이 줄을 짓고 있는데 그 바로 옆에는 3백 명 남짓밖에는 입장할 수 없는 6층의 미리내소극장이 있고,<아리랑>을 구경하려는 청소년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들이 영화<아리랑>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극장이라고 찾아 들어와서 화려한 무대장치와 조명과 음향에 착각의 연극이라도 제대로 보고 가려는 것은 아니었는지. 그럴 경우 이 드러난 빈약한 무대가 그들의 기대를 채워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따위는 일종의 노파심이다.
영화는 영화고, 화려한 무대는 화려한 무대이다. 어울리지 않는 극장 공간의 장터 분위기도 그 속에서 연극적 상상력을 자극 받으려는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특수한 관극 체험을 얻어낼 수 있다. 현대적인 극장 무대를 아무런 장치가 필요 없는 집회장소로 탈바꿈 시키면서 연극은 의식의 불꽃을 튀기게 하고 공동체의 공감을 만들어 나간다. 마당극적 상상력은 어중간한 인공의 장치들을 거부하고 오히려 가난한 무대에서 현장의 호소력을 더 강력하게 극화하는 데 그 연극적 마술을 동원하는지 모르겠다.

 

 

 

 

 

<아리랑>은 아리랑극단이 만든 연극이다. 물론 나운규의 영화<아리랑>이 토대가 된다. 그 줄거리를 바탕으로 하면서 이야기 진행은 이원적으로 이루어졌는데 나운규의<아리랑>이 김명곤 작·조향용 연출의<아리랑>에서 대결을 벌인다. 줄거리는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과거와 현재로 왔다 갔다 하는데 그 과거도 나운규의<아리랑>을 재현하는 과거와 두 광대의 과거를 재현하는 것으로 나누어지고, 현재의 시간도 극중의 광대적 현재와 관객과의 만남이라는 현재로 구분된다.
시간의 분배만이 아니라 광대의 역할도 그렇게 여러 성격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마당극에는 특히 변신의 테크닉이 탁월하지 않으면 관객의 상상력을 끌어갈 수가 없다. 이 점에 있어서 마당극의 예술화가 거듭 논의되는 중요한 갈림길이 있는 것이다. 우선 이 작품의 주인공 역할을 하는 김불출(김명곤)은 연극배우, 극단 대표, 영화<아리랑>의 대학생 최영진 역, 그의 아버지 역, 미치광이 영진 역, 나레이터 역 등 1인 다역이고, 그와 맞수가 되는 박제홍도 천진한 관객이자 연극 지망생인 박달재 역에서부터 영화<아리랑>속의 인물인 송지숙, 형사, 오주사, 길용이, 오기호 역 등등인데 극중인물로의 전환이 빠르고 선명한 것이 이번 아리랑극단의<아리랑>공연이다.
김명곤은 극중 인물로서는 상당히 닳고 닳은 상태인 반면 박제홍은 어수룩하고 천진한 연극지망생으로 잘 분장이 되어 닳고 천진한 쌍곡선이 연극적 리듬을 이루게 될 뿐 아니라 작품 자체도 약장수 같은, 신파 같은 흐름이었다가 갑자기 현실 비판적이고 의식화의 메시지가 담겨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작가적 저의를 드러낸다. 서막 부분은 김불출의 장터 타령 같은 너스레로 너무 긴 것이 흠이라면 흠인데 오히려 그 부분이라든지 박달재 테스트 장면 등도 김불출의 가정 비극, 박달재의 아버지와 애인 삽화같이 작품 중간부분으로 끌어들여 회상 형식으로 만드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연극 <아리랑>은 영화<아리랑>의 주요부분을 네 장면으로 보여주는데 첫 장면은 고양이와 개, 둘째는 주인공의 체포∙고문∙실성, 셋째 장면은 아리랑 마을 지주와의 싸움, 그리고 마지막이 미친 영진의 살인이다. 그리하여 일본인 개가 고양이인 조선을 잡았다가 결국은 미친 영진의 말처럼 고양이가 개를 잡아먹는 역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대의인데, 연극<아리랑>에서는 두 광대 김불출과 박달재가 사는 현실이 수몰지구라든가 공장지역이라든가 기지촌 같은 형식의 삽화로 작품 속에 편재되어 들어온다. 그런 현실인식은 단순한 이데올로기적인 메시지나 구호보다 훨씬 강력한 예술비판 기능을 하는 것이다. 예술적 비판기능은 김불출의 아버지가 겪는 시련과 그의 침묵과 같은 남북대결의 비극과 통일지향일 때 더욱 살아 숨쉬는 현실의 맥박으로 달아오른다. 예술적 마당극의 한 시도가 가능성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까닭은 노래나 박수나 응답으로 호응하는 관객들도 그만큼 열기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극 "아리랑2"는 영화 <아리랑>을 촬영하기 위해 분주한 나운규와 사회자가 만나면서 시작된다. 사회자는 나운규에게 그가 요절한 뒤의 역사적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 주며 1926년 당시 영화<아리랑>의 촬영현장에 배우로 참여한다. 주인공 최영진은(나운규 분)은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영특한 두뇌와 아버지의 간곡한 설득으로 인해 경성에서 대학을 다닌다. 그러나 독립운동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은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왜놈의 총에 맞아 부상당하여, 애인이자 동지인 송지숙에게 도움 을 청한다. 그러나 영진과 지숙은 둘다 체포당하고, 지숙은 영진의 눈앞에서 왜경에게 성고문을 당한 뒤 그 자리에서 자살한다. 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영진은 미치광이가 되어 낙향한다. 아들 대학을 보내기 위해 빚더미에 앉은 영진의 아버지는 미치광이가 되어 버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딸 영희를 차지하기 위해 빚 독촉을 해대는 오기호에게 시달림을 받다가 자살한다.

한편, 영진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가 영진이가 지켜준 비밀 덕택에 무사히 고향으로 내려 온 현구는 영희와 애틋하면서도 슬픈 사랑을 나눈다. 미쳐서 아리랑 노래만 불러대던 영진은 중에 있는 영희를 겁탈하려는 오기호를 발견하고 낫으로 찌르려 하는데 이때 사회자가 개입하여 극의 결말이 바뀌게 된다. 오기호를 죽이려는 영진이를 말리려다 영희가 죽게 되고, 영희의 죽음을 보고 제정신으로 돌아온 영진은 영희의 유언에 따라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러 떠난다. 영진의 뒤를 따르는 동네 사람들은 영희의 시신을 안고 떠나는 영진에게 아리랑을 불러 주며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이같은 영화 <아리랑>의 전개와 함께 배우로 참여하는 사회자는 계속적으로 현실의 문제 (일본 군사 대국화, 고문, 현 문화 실태, 농촌 문제, 미국 문제 등)를 이야기한다. 연극 "아리랑2"는 영화 <아리랑>의 대성공 소식을 듣고 기쁨에 차 있는 나운규와 사회자가 다시 만나면서 정리된다. 사회자는 현재의 아리랑 고개(식민지 시대에 우리 민족이 넘어야 했던 아리랑 고개가 민족의 독립이 었다는 전제하에, 현재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면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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