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에서 성과 폭력은 기성세대의 억압을 고발하는 수단이다. 엄마에 대한 아빠의 성폭력, 엄마와 아들의 근친상간, 부친 살해 등 쇼킹한 장면으로 가득차 있다. 차가운 신디사이저음악이 배경으로 흐른다.
저녁 작품구성
1. 프롤로그 - 가족
폭력성의 상징인 아빠와 자식에 대한 집착이 극에 달한 엄마 그리고 그 부모들의 존재에 불안하게 웅크리고 앉아 있는 흰 잠옷의 미소년과 헤드폰을 꽂고 앉아 신디싸이저를 치고 있는 검은예복의 미소년. 넷은 서로 제각각의 시선을 보내지만 긴장감과 불안감을 교류하고 있다.
2. 미소년들
검은 예복 미소년은 연주를 멈추고 흰잠옷 미소년은 눈치를 보며, 서로 '밖은?' 어두워 / '저녁?' / (불안에 휩싸인 침묵) / '무슨 소리 안나?' / 아직은....
3. 회상
가부장제에 대한 흰 잠옷 미소년의 간단한 투정과 아빠의 폭력성에 대해 관객에게 호소할 때 아빠가 '아빤 아빠야. 알어? 하며 채찍질을 해댄다. 폭력의 대가인 입안의 피가 신디싸이저에 떨어진다. 이때 엄마는 '아가야 피를 닦지마. 내가 해줄게. 엄마는 너희를 사랑한단다"며 위로한다.
4. 엄마
엄마는 탁구공을 검은 예복을 입은 미소년에게 아주 단조롭게 보내며 '난... 너 밖에 없어.' 라고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고, 아빠는 흰 잠옷 미소년의 탁구공 집으려는 동작을 멈추려는 듯 혁대로 손바닥을 내리친다. 그리고 엄마는 다시 '내가 누구 때문에 사는데?' 라고 말한다.
5. 아빠
아빠는 흰 잠옷 미소년의 볼을 손으로 꼬집어 흔든다. 겁먹은 미소년의 표정 그러나 울지 않는다. 검은 예복 미소년 그 광경을 보고 키득거리며 웃는다. 흰 잠옷 미소년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지만 아빠는 더욱 세게 꼬집은 볼을 흔들며 '아빠는...외로워... 내 편이 있어?' 라며 더욱 포악해 지면서 거칠게 폭행을 가한다.
6. 미소년들
분노에 휩싸인 미소년의 침묵 속에 부모를 이해하려는 검은 예복 미소년과 '우린 다 불쌍해' 라고 울음을 터트린 흰 잠옷 미소년간의 대립
7. 식사
부부간의 권태로움이 부부싸움으로 변하게 되고 그 상황에서 긴장하는 미소년들
8. 음악
무대를 적시는 슬픈 전자음악.
9. 미소년들
미소년들의 슬픈 하소연들과 습관에서 탈출하려하나 그 선택의 시간을 놓고 번민에 빠져든다.
10. 엄마와 아빠의 사랑행위 주도권 싸움
엄마와 아빠의 사랑행위에서 나오는 요란한 신음소리가 나면 미소년들은 엄마 아빠를 흉내낸다. 체위의 변화를 요구하는 아빠와 거부하는 엄마와의 실랑이를 보 며 미소년들은 이전의 부부싸움을 똑같이 흉내내고 화가 난 아빠는 유리컵을 마구 던진다. 엄마 맨발로 천천히 짓밟고 다닌다.
11. 미소년들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슬픈 전자음악이 흐르고 흰 잠옷 미소년은 무대를 정리한다.
12. 저녁
불쌍하게 느껴지는 엄마를 감싸안은 흰 잠옷 미소년은 엄마의 볼에 입을 맞춘다. '속상해하지마.... 원래 아빤 그러잖아.... 엄마, 사랑해요' 라며 엄마를 애무하기 시작하고, 엄마는 내... 목숨... 보다... 귀한... 아들....' 하며 애무를 받아들이고 이내 둘은 바로 성교를 시작한다. 절정으로 치달아갈 때 검은 예복 미소년이 들어와 그 광경을 보고 격렬하게 신디싸이저를 치며 그 연주에 심취된다. 음악에 이끌려 아빠가 들어와 둘의 성교장면을 목격한다. 화가 난 아빠는 혁대를 끄르고 성교하는 둘을 마구 때리기 시작한다. 신디싸이저 연주는 더욱 격렬해지고 둘은 절정의 순간으로 치닫자 몸이 요동을 친다. 이를 보고 있는 격노하여 흥분한 아빠를 검은 예복 미소년이 예복의 위에서 예리한 칼을 꺼내 아빠를 찌른다. 이때 흰 잠옷 미소년, 사정한다. 아빠, 피흘리며 죽는다. 검은 예복 미소년이 흰 잠옷 미소년에게 약병을 건낸다. 약을 사경에 헤메는 엄마의 귀에 붓는다. 엄마는 요동치며 죽는다
12. 저녁이 지나다
죽은 부모를 욕하고 알몸이 된 두 미소년은 집기들을 부수다가 서로 쳐다본다. '그냥 당분간 조용한 거야 (중략) 오늘은 자지 말자' 하고 둘은 키스를 한다. 탱고음악이 흐르면 둘은 탱고를 춘다. 그리고 둘의 다리부터 녹아 합쳐지면서 하나의 몸이 되기 시작한다. 그들은 한 명의 알몸 청년으로 변한다. 탱고는 계속되고 조명은 끝이 어딘지 모르게 서서히 없어져간다.
희곡을 읽어 본다.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이 무척 상세하며 길게 설정되어 있다.
엄마 : 밖에 나가면 사내들이 침 질질 흘리며 따라 붙을 35세 전후의 여자이다.
아빠 : 화이트 칼라로 위압적이며 얇은 입술로 회사에서는 '간신'같은 남자이다.
검은 예복을 입은 미소년 : 12세 전후
원피스로 된 흰 잠옷을 입은 미소년 : 12세 전후이다.
등장인물은 그게 다 ,그러니까 한 가족이고 4명의 구성원으로써 일반 중류층 가정의 한 표본을 그리고 있다.
시놉시스가 등장인물 다음으로 그려져 있다.
'이미지에서 출발했다. 그러므로 왜곡은 이 연극의 가장 중요한 단서이다. 이 연극은 일상에 대한 극단적인 과장이며 상징이므로 왜곡은 이 연극이 구현하는 세계를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 "단어가 절제되고 노련하고 역설적이며 충격적이다." 시놉시스 혹은 작품의 설명을 극작가 자신이 하는 가운데 내 자신이 느낀 것이다. 무대로는 '뒷벽- 시간이 멈춘 자리 , 왜곡된 모양의 거대한 시계가 7시를 가리키고 있다. 오른쪽 무대: 엄마의 자리 , 왼쪽무대 : 아빠의 자리 ,' 그리고 탁구대와 밥상이 놓여 있는 무대이다.
프롤로그는 "'불안한 출발''을 연주한다. 시끄러운 소리에서 서정적 음악으로- 그리고 대사가 이어진다. 대사는 검은 예복을 입은 미소년으로부터 시작이다. '밖은?' 이어 받는 '흰 잠옷을 입은 미소년'은 , '어두워' '저녁?' , (불안에 휩싸인 침묵) , '아직은..' (음악이 줄어든다)
희곡은, 희곡에서의 대사 한 줄은 "책 한권의 분량과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많이 있고 강조를 받는데 , 사실 쓰고 보면 , 산문이 된다.
그런데 위의 대사는 '희곡'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 분위기와 긴장감이 글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연극을 본다.
텍스트가 아닌, 활자가 아닌 배우와 세트와 음향효과와 연출가가 만들고 풀어 해석한 공간을 본다. 무대는 시계가 없다. 시계소리만 있을 뿐.
무대의 중간엔 금붕어 어항이 있다. 밥상의 존재도 무시된다. 신디싸이저가 키보드로 대치된다. 그리고 극이 시작된다. 연출가의 연주에 맞추어 배우들이 연기한다. 활자들이 살아나 춤을 추며 생명의 환희를 노래한다. 소년들이 소녀로 바뀌어 있다. 희곡에서의 소년들의 '"불안한 출발'"이 시작되고 이어서 아빠의 혁대가 소년에게 뿌려 진다. '아빠는 아빠야' , '뭘 해도 아빠는 아빠야' '그런데 아빠는 언제나 날 때려' '아가야 피를 닦지마. 내가 해줄게. 엄마는 너희를 사랑한단다.' 그리고 이어지는 엄마의 대사. '난 ....너밖에 없어' , 내가 누구 때매 사는데...' 맞는 아이는 하얀 잠옷을 입은 소녀 혹은 소년이다. 그걸 보고 경멸하고 키득키득 웃기까지 하는 아이는 검은 예복을 입은 소년 혹은 소녀이다. 때리는 이는 아빠이고 , 엄마는 그저 '난 너밖에 없다. 내가 누구 때매 사는데' 를 반복한다. '아빠는....아빠야...' , '다 소용없어, 망할 자식들' , '아빠 맘을 왜 그렇게 몰라?' '아빠는... 외로워.... 내 편이 있어?'
위의 대사들을 종합하여 글로만 읽으면 , 가학과 피가학과 , 체벌과 '아빠에 의한 딸의 성폭행'까지가 생각된다. 의도되었건 의도되지 않았건 , 그러한 생각으로 증폭되어 전달된다. "아빠는 재혼한 것일까?" , "딸들은 지금의 새 부인이 데리고 온 전 남편의 자식들일까...?" , "새 아빠와 엄마와의 갈등이 딸에게로 전이된 것일까?" 그러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극에서는 그러한 것은 보여지지 않는다. 다만, 아빠가 몹시 화가나 습관적으로 딸들을 때리는 것이거나 , 아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식을 때리는 것이나, 아빠가 잘못을 저지른 딸을 혼내키며 체벌을 가하는 것"으로 비쳐진다.
흰소년과 검은 소년의 갈등이 생기게 된다. 맞은 자와 그걸 바라본 자의 갈등이다. '이게 무슨 짓이야!' 라는 흰 잠옷을 입은 소년의 말에 , 검은 예복을 입은 미소년은 (분노에 휩싸인 침묵)으로 희곡은 그려지고 있다. '그렇게 아프진 않았어. 널 보고 웃기까지 했잖아?' 검은 예복을 입은 미소년이 말한다. '다 이해한다 그거야? 그게 말이 돼?' '니가 무슨 상관이야!' 검은 예복을 입은 미소년이 흰 잠옷을 입은 미소년의 따귀를 후려친다. 갈등의 증폭 부분에서 실제의 '소년'과 , '자기속에 깃든 마음의 소년'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자아와 타아' , '현실과 상상' 까지도 확대된다.
희곡에서는...
' 7.식사'라고 희곡은 표시되고 , 극은 그러한 설명 없이 보여진다. '싱거워!'하는 아빠의 대사에 엄마는 '소금 줘요?' , '아니, 간장. 왜간장!' '많이 넣었어' , '그런데 이래? 미원 가져와 봐!' 희곡은 그렇게 쓰여 있다.
연출은 그러한 희곡의 문자를 어눌하고 아주 느린 , 그러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 난 목소리로 표현을 해 준다. " 리얼하다", "충격적이다" 그러한 대사의 억양에서 관객은 심리전과 눌러 버리려는, 마치 원수와 같은 부모의
관계를 읽어내는 것이다. 활자보다 우수한 감정과 억양의 톤으로!
엄마 : (아빠를 노려본다. 정지동작) 사이 .
아빠: 딴 거 좀 없나? , 엄마 : 돈이 어딨어? ,
아빠 : (소주를 마신다. 사이. 버럭 화를 낸다) 그래야 일주일에 하룬데!'
엄마 : (눈을 감고 얼굴을 찡그린다. 얼굴이 빨개진다. 사이)
아빠: 뒷벽을 향해 컵을 던진다. 컵이 깨지고 시계의 분침이 구부러진다. 담배를
피운다)
희곡은 활자로써 눈에 밟힌다.
아빠의 무능과 직결되는 것 같은 , '무시됨'의 원인이 실직 혹은 '돈'에 있음을 독자는 읽어 낸다. 연극은 그러한 '무직'의 감정과 '돈'에 의한 엄마의 아빠 무시됨을 그냥 지나쳐 갔다. 오직 , 아빠의 폭력성과 고압적인 밥상머리에서의 자세만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그래서 관객은 '무시됨'을 원인도 모른채 '고압적이고 폭력적인 아빠'만 머리에 그린 채 극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아빠의 '폭력성'은 일관되게 극이 끝날 때 까지 관객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아빠는 외로워..내 편이 있어?'는 철저히 무시된 채...
흰 잠옷의 소년과 검은 예복의 소년의 말이 이어진다.
'그럼 , 저주할 수 없겠군', '늘 그게 문제지. 저주하느냐, 이해하느냐.'
'사느냐 죽느냐...', '살리느냐, 죽이느냐...' '선택?','별 수 없지' ,
'망가져 갈 거야, 너도나도', '사랑은? 그건 어떡해?','습관이야, 그건...',선택...' '선택!' '선택...선택..선택...' (번민한다) 어떻게 하지?'
검은 옷을 입은 미소년 : 어느 때고 그게 문제야. 희곡을 읽으면 '자아와 타아'의 대화임을 짐작한다. 자기의 속마음과 현실 속 소년이 갈등하며 자기에게 반문하며 답을 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연극에서는 그러한 것으로 볼 수 없게 철저히 위장되어 있었다. 실제의 배우가 연기를 하면서 주고받는 그러한 것이 , 그러한 발견을 저지하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집에 오며 생각하며 발견하는 것이다.
10.아빠엄마의 성교'라고 써있고, 무대에서는 질퍽한 성교가 소리내어 진다. 검은 양복을 입은 미소년: 싱거워!' (엄마 안달을 하며 허리를 튼다)
흰 잠옷을 입은 미소년 : 소금 줘요? (아빠,체위를 바꿀 것을 요구한다)
검은 양복을 입은 미소년 : 아니, 간장. 왜간장! (엄마, 거부하며 계속 그 자세에서 즐기려고 한다)
흰 잠옷을 입은 미소년 : 많이 넣었어. (아빠 성교를 중단하고 일어나 담배를 피운다)
검은 예복을 입은 미소년 : 그런데 이래? 미원 가져와봐! (엄마, 일어나 앉아서 남자를 노려본다. 사이. 미소년들, 서로 눈짓을 교환하고 뒷 무대로 간다)
희곡에서의 이러한 내용을 일게 되었을 때 나는 엄마의 가장 큰 불만과 함께, 아빠의 '그래야 일주일에 하룬데!'하는 것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었다. 지치고 힘든 일상의 기계같은 아버지의 시간. 회사에서의 격무. 그리고 쉴 수 있는 하루의 일요일. 그리고 받아오는 쥐꼬리만큼의 월급. 부쩍 커가며 들어가는 아이들 학비. 휘청거리는 어깨. 그는 생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남편을 둔 아내는 불만이 있다. '어른의 악습'인 섹스 불만족의 욕구.
쿠바출신 페미니즘 계열의 작가 '마리아 아이린 포네스'의 '싸리타'를 생각한다. 폭력성의 '쥴리오' 앞에서 본능과 이상 사이에서 번번히 무너지고 마는 '싸리타'를 생각한다. '이렇게 길들여 놓고서... 이제 와서는...' 하는 영화 대사를 생각한다. '고금소총'의 한 부분을 생각한다. 죽도록 이유도 없이 술고래(? , 어? 많이 듣던 단어이다!..?) 남편에게 얻어 터진 아내는 이혼을 생각한다. 이 마저도 바득바득 간다. '저 웬수와 더이상 못 살어!'를 말한다. 그러나 밤이 되었다. 이불 속에 남편의 손이 들어오고 남자는 여자에게 은근한 표정과 행동을 보낸다. 뿌리친다. 뿌리....친다. 뿌......리..친....다. 그러다 압력에 밀려(?) 천천히 하나둘 방어를 푼다. 그리고 이어지는....그러면서 이러한 말을 한다. '그래, 니가 무슨 잘못이 있니? 때린 손이 잘못이지' 이러한 부분에서, 남자와 여자의 견해에 차이가 있다. 부부생활을 하는 것을 본 엄마와 아빠의 행위에서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미소년들의 '아빠놀이'가 그것인데, 그것에 대한 반응이 제각기이다. '차라리 어서 커서 엄마를 만족 시켜 주겠어' 하는 것은 남자의 심리이다. '엄마는 하는데 그런데 왜 나는 안돼?' 이것은 여자의 심리이다. 그것은 프로이드의 책 혹은 쟈크 라캉의 책 혹은 심리학 책을 대충 읽어보면 나올 그러한 반응이다.
'12 저녁' 이라고 희곡은 쓰여져 있고, 희곡에서, 흰 잠옷을 입은 미소년은 엄마를 위로하다 엄마와 관계를 갖는다. '내 목숨....보다....귀.....한 .아...들' , '너밖에 없다, 난...' '엄마, 사랑해요...이제 곧 끝날거야.' (둘의 성교는 점점 격렬해지며 절정으로 치달아 간다. 검은 예복을 입은 미소년, 씬디싸이저를 들고 들어온다. 둘의 성교하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서있다. 조그만 의자에 가서 씬디사이저를 연주한다. 격렬한 음악, 심취된다. 음악에 이끌려 아빠가 들어온다. 둘의 성교장면을 목격한다. 그는 격노한다. 서서히 혁대를 끄른다. 손에 감는다.
아빠 : (매우 분노하여) 아빠는....아빠야......망할 자식! 다 소용없어! (성교하는 둘에게 다가간다. 혁대로 알몸의 미소년의 등을 때린다. 그러나 알몸의 미소년은 계속 성교에 열중한다. 음악이 한껏 고조된다) 아빠는 아빠야..! (혁대로 검은 예복을 입은 미소년을 때린다. 그러나 검은 예복을 입은 미소년은 연주에 계속 심취한다. 격노하여 흥분한다) 아빠는....아빠야! 알아들어? (미소년들을 마구 때린다. 혁대를 미친듯이 휘둘러 무대를 박살낸다. 마지막으로 혁대를 크게 휘두르는 순간, 검은 예복을 입은 미소년 , 아빠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 그리고 극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극은 자연스러운 결론을 갖고 옵니다. 그러한 결론은 다들 잘 알고 계실 내용으로 진행이 됩니다.
'13. 저녁이 지나다'
검은 예복의 미소년 : 씨발놈!
알몸의 미소년 : 씨발년!
알몸의 미소년들은 서로를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닮았다. 알몸의 미소년들 탁구대와 키보드를 부순다. 그리고 서로 쳐다본다. 끌어 안는다.
알몸의 미소년 : 이제 끝난 건가?
알몸의 미소년 : 그냥 당분간 조용한 거야. (사이)
알몸의 미소년 : 잘 때가 됐어.
알몸의 미소년 : 오늘은 자지 말자.
둘은 키스를 한다. 탱고음악이 강렬하게 흐른다. 알몸의 미소년들은 탱고를 춘다. 둘의 몸이 다리부터 녹아 합쳐지면서 하나의 몸이 되기 시작한다. 그들은 한 명의 청년으로 변한다. 탱고는 계속되고 조명의 끝은 어딘지 모르게 서서히 없어져 간다. 희곡의 끝부분을 읽으며 , 누구나 그러한 생각을 갖을 것 같다.
'엄마와의 섹스는 환상이었어... 엄마와 아빠와의 살해 또한 환상이야....' 그러면, 그러면 이 희곡은 , 이 연극은 무엇을 보여준 것일까? 그것은 한 소년이 청년으로 되어 가는 과정에서의 '거세'라는 상징적 출생을 통하여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을 말하는 극이라는 것과 ,
'햄릿-침실에서' 극작가 김현묵이 말한 ' 폭력은 학습되어 지는 것이며...'라는 대사와 일치되는 그러한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연극 [바이러스 10√2]의 장면이 기억된다. '가정에서의 부모의 역할의 중요성, 그리고 그 시기에 있어서 부모가 자식들에게 해 주어야 할 일'등을 극은 역설적으로 관객들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잔인함과 외설과 행위 속에서 진지한 철학의 방향을 , 부모의 의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의 견해인지...그리고 누구의 말인지가 중요하지 않고 , 단지, 학습되는 폭력의 무서움과 부모로써의 바른 역할과 지도 , 그리고 자신의 올바른 성격형성을 위한 부단한 자기연마에 힘써야 한다는 역설적 메시지가 극안에 농축된 우라늄으로 들어 있다. '생리학적 변화는 정신적 혁명을 가져온다' 는 융의 '청년기 및 젊은 성인기'의 시기에 우리는 우리 안의 어떤 감정(어린이의 태고 유형)은 어른이 되기보다는 어린이로 머물기를 좋아한다.
인생의 제2단계에서 개인이 직면하는 문제는 오히려 외향적인 가치와 관계가 있다. 그는 세상에서 자기의 위치를 구축해야 한다. 그 때문에 굳센 의지가 가장 중요하게 된다. 젊은 남녀는 효과적으로 [결단]을 내리고, 직면하는 무수한 [장애물]을 극복하며 , 자기 자신 및 가족을 위해 [충분한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융의 말을 빌려 이 극이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파악하며 손을 놓는다.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켜 준 극이다. [물의]가 아닌 [감동]으로 말이다.
극에서 , 소년이 소녀로 대치되고 , 어떠한 부분에서는 자아와 타아의 긴 싸움을
그리지 못한 , 아쉬움도 들었지만 , 기계적인 동작과 표현의 키보드를 치는 소년의 광기에서 , 나는 두려움과 함께 , 열정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본 그러한 극이었다. 연출 및 배우들에게 , 그리고 극작가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친다.
심사평
단막희곡의 미학은 문체와 압축된 구성력에 있다. 자신만의 문체가 형성되지 않고 한편의 삶의 상징으로 제시되지 않는 소재주의적 발상으로 희곡은 쓰여지지 않는다.100편이 넘는 응모작 중에서 자신만의 문체와 자신만의 시각을 갖춘 작품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극적 소재나 발상으로 희곡을 쓰려는 것이 문제고,극적 행위와 공간이 없는 일방적 말의 성찬은 사적 요설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야 청산 가자'(강석현),'저녁'(윤형섭) 2편을 놓고 고심했다. 우리의 아름답고 무서운 전래 설화가 한편의 희곡으로 수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야 청산 가자'는 무척 호감이 가는 작품이었다.그러나 극적 구성력의 결함은 끝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남는다.너무 현실적 알레고리에 집착하지 말고 고쳐 써 보기를 권한다. '저녁'은 아비세대의 폭력성과 어미세대의 집착을 살해하면서 해방을 꿈꾸는 끔찍한 성년의식,절제된 문체,빼어난 공간 구성력 또한 갖추고 있어서 문학성과 연극성의 조화를 기대해 봄직 하다.그러나 이런 작품에서 우려되는 것이 정서의 박탈감이다.잔혹을 위한 잔혹이 아니라,얼음 속에 묻혀있는 따뜻한 정서의 불씨를 되살려 낼 수 있는 극적 장치가 필요할 듯 하다. 고심 끝에 '아이야 청산 가자''저녁' 2편을 가작으로 추천한다.2편 다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고,공연을 통해 수정 보완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무엇보다 두사람 신인들의 상상력이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