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clint 2018. 5. 14. 14:07

 

 

 

 

한병태는 엄석대가 반장으로 있는 시골 학교로 전학온다. 전교 최고의 반인 동시에 엄석대 독재의 공간이다. 엄석대와 추종자들을 병태를 끌어들여 굴복시키려 하지만, 병태가 의지를 굽히자 않자 힘과 폭력으로 그를 소외시켜 굴복시킨다. 해가 바뀌어 새 담임선생이 배정되고 시험지 문제뿐만 아니라 엄석대의 모든 비리가 밝혀지고, 석대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아이들을 향해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교실 밖으로 뛰어나간다.

 

      

 

 

 

이 작품은 한 시골 국민학교를 배경으로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가, 저항하던 인간이 어떻게 그 권력의 틀속에 들어가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 온 한병태는 반장을 맡고 있던 엄석대에게 거부감을 갖는다. 엄석대는 폭력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으며 갖가지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엄석대의 폭력과 부조리에 대항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기에 빌붙어 평화를 우리며 살아간다. 한병태는 처음에 이에 저항한다. 그러나 권위에 도전하는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소외감과 모함과 갖가지 피해뿐이었다. 선생님조차도 엄석대를 뛰어난 지도력을 가진 사함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국민학교 5학년인 어린아이로서는 이런 고통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아니, 어른이라도 자기가 속한 세계에서 따돌림받고 갖가지 불이익을 받는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한병태는 체념한다. 석대의 권위에 굴종하자고..... 이렇게 한병태의 외로운 저항은 끝난다. 그러나 엄석대의 세계는 예측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무너지게 된다. 아이들의 저항에 의해서가 아니라 엄석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 반의 분위기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새 선생님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밝혀지는 엄석대의 온갖 잘못들. 엄석대는 그야말로 일그러진 영웅이었던 것이다.

 

30년 세월이 지나 한병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그럭저럭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사회의 쓴물을 마시면서 그는 가끔 엄석대를 생각하곤 한다. 이런 세상이면 엄석대도 어디선가 다시 자기 권위를 회복하여 급장이 되었겠지 생각하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엄석대를 다시 만나게 된다. 어린 시절 반 아이들을 잘못된 권위와 폭력으로 휘어잡던 그가 수갑을 차고 끌려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학급과 세상이 어떻게 닮은꼴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병태의 외로운 저항과 끝내 저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생각해야 하고, 석대를 향한 아이들의 상반된 태도에 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권력을 가진 사람과 그 권력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 사람의 찬성을 얻어 올바른 권력을 갖게 죈 사람이 있는가 하면, 뭔가 일그러진 방법으로 권력으로 ‘훔치는’ 사람이 있다. 이 소설은 어떻게 권력이 생겨나고 어떻게 그 권력이 사라지는가를 그려낸 작품이다. 이를 이끌어가는 화자(話者)는 한병태다. 즉, 한병태가 소설 속의 ‘나’이다. 30년 가까운 옛 일을 회상하듯 써 내려간 이 작품은 권력의 문제를 다루면서 그와 관련된 인간의 심리를 파헤치고 있다. 석대가 권력자라면 병태는 석대의 권력이 부당하다고 불의(不義)한 것임을 알고 저항하는 자다. 물론, 그의 저항이 정의감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그이 마음 속에는 인정할 수 없는 권력에 대한 저항과, 자신도 어떤 힘을 갖고 싶은 욕망이 함께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왜 아이들은 엄석대의 불의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는가. 왜 병태는 엄석대의 힘을 무너뜨리는 데 실패했는가. 왜 석대의 잘못된 권력을 무너뜨린 것은 아이들 스스로의 힘이 아니었는가.

 

작가 이문열은 작품 곳곳에서 나름대로 그런 물음에 답하고 있다. 30년 전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일을 회상하듯 써 내려간 소설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을 나름대로 분석할 수 있고, 자신을 비롯한 아이들의 마음 상태를 객관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화자인 어른 한병태는 자신이 석대의 잘못된 힘을 무너뜨리는 데 실패한 까닭을 이렇게 쓰고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실패는 석대의 남다른 통솔력 못지않게 나의 잘못도 큰 원인이 된 듯싶다. 아무리 아이들의 정신 속이라 해도 어른들의 정의와 자유에 대한 열망에 상응하는 부분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 개인적인 감정과 조급(躁急)으로 그들을 大義대의)로 깨우치거나 설득하는 대신, 눈앞의 이익으로 매수하려고 들었을 뿐이었다. 거기다가 기껏 더할 게 있다면, 어른들의 선동에 해당하는 저급하면서도 교활한 정치 기술 정도였을까.”

우리는 여러 가지 물음을 던지고 작가의 대답도 들으면서, 또 우리 자신의 대답도 들으면서 이 사회에는 일그러진 영웅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일그러진 영웅들이 가져간 우리의 힘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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