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허규 '가로지기타령'

clint 2018. 5. 13. 21:14

 

 

 

허규는 이 작품에서 그의 해석적인 자세를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가로지기라는 말을 비정상적인 죽음을 뜻하는 시쳇말인 '가로 갔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고 했다. "비명횡사할 수밖에 없는 신세의 사람들은 어찌 보면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이나 역사, 그리고 전통에 대해서도 '가로 간'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우리 역사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무수한 민중들도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허규, 앞의 책, 348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고 하였다. 장승에 대한 생각도 재미있다. 그는 "장승은 마을의 수호신이다. 동시에 말없는 역사의 목격자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는 바꾸어 말하자면 깰 수 없는 전통적 가치관을 뜻한다. 그러나 전통이란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로 탈바꿈을 할 수 있는 법이다. 전승되는<가로지기타령>의 형식이나 내용이 파격적인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파격은 결국 힘이다."(허규, 앞의 책, 348면)라고 해석하면서 극히 외설적이고 비극적인 내용을 재미있고 해학적인 창극으로 만들어 내었다.

 

 

 

 


허규는 이 <가로지기 타령>에서 그가 보여주고 싶은 많은 민속들을 보여 준다. 무대와 객석을 밀착시키기 위하여 계단을 양쪽에 놓고 배우가 객석으로 나오기도 하고 객석 쪽에서 무대로 올라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도창을 아주 특별하게 활용한다. 무대에 먼저 나와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극중에 들어가 어울려 함께 놀기도 하고 다른 배우가 무엇을 물으면 대답도 해 주고 아주 자유롭게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역할을 한다. 더구나 넉살 좋은 박후성이 도창을 하여 창극 전체를 재미있게 이끌어 가는데 옹녀역의 남해성도 변강쇠 역의 조상현도 모두 창과 연기가 훌륭한 배우들이어서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 내고 있다. 온갖 떠돌이 인생들이 한 무대에서 어울리게 되고 고을의 벼슬아치까지 체면일랑 휘익 던져버리고 그런 천민들과 똑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특히 후반부의 서로 달라붙는 장면이 재미있는데 그렇게 비명횡사한 소위 가로간 인생들이 상여소리하며 장례를 치르고 달구질하는 소리를 합창으로 하면서 끝나게 된다. 고수인 김동준은 무대 위에 앉고 다른 악사들은 효과음이나 수성가락을 한 두 개의 악기로만 한다. 합주식의 기악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대사부분이 많고 노래로 부르는 부분은 각설이패의 각설이나 초란이패의 노래 등 간단한 것이 대부분이다. 무대는 거의 고정되어 있는 액자무대로 앞쪽을 넓혀 객석과의 거리감을 좁히려 하였고 배경도 간단하기 짝이 없다. 전혀 사실적인 무대배경을 만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창극 자체로는 정말 볼거리 많고 재담이 많은 희극이어서 대중적인 창극이라고 할 수 있다. 서연호도 "가로지기는 판굿의 정신에 적극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어 주목되었다. 무대공간의 활용에 있어서도 놀이판의 정신을 살리는 의도가 전제되었다. 애초에 공간 자체가 액자 무대에 맞는 구조를 지니고 있기에 의도대로 다 되었던 것은 아니나 일단 시도한 놀이마당의 재창조는 상당히 고무적으로 성취되었다고 판단된다"( 서연호 「창극의 새로운 모색」『극장예술』1979.11. 7면)고 하였다. 이보형 역시 "놀이스런 창극"이라고 하면서 "창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이보형 「허규다운 창극놀이판」『극장예술』1979.11. 8면)고 높이 평가하였다.

 

 

 

 

 

’변강쇠가(歌)’의 기원(起源) 판소리의 제재(題材) 및 소재(素材)의 결합(結合)에 관한 탐색은 근원설화의 추적과 삽입가요의 추출에서 다대한 성과를 거두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더우기 ’변강쇠가(歌)’에 있어서는 다른 판소리 사설에서 적출(摘出)되는 근원설화의 유형처럼 일정하게 짜인 설화 요소들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작업은 더욱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학계(學界)에서 ’변강쇠가(歌)’의 소재(素材)가 되었으리라고 추정한 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음남음녀(淫男淫女), 고금소총(古今笑叢) 기타에 전하는 음담(淫談) 2) 장승(長性)의 동티(민속적 사실) 3) 부착설화(附着說話) 4) 가로지기(시체를 가로지는 민속적사실(民俗的事實)) 5) 구부총설화(九夫塚說話) 이상의 것들의 편린이 작품내(作品內)에서 발견(發見)되기 때문에 이들이 ’변강쇠가(歌)’의 소재가 되었으리라고 추정하는 데는 아무런 이의(異意)가 있을 수 없다. ’변강쇠가(歌)’는 그 결구상(結構上)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그것은 내용상(內容上) 크게 두 부분(部分)으로 나눌 결구상(結構上)의 분해(分解)와 일치(一致)된다는 점(點)에서 타당성(妥當性)을 가진다. 작품내(作品內)에서 주요인물(主要人物)로 등장하는 옹녀와 강쇠가 음랑(淫浪)상태에서 결혼(結婚)하여 정착생활(定着生活)에 들어가나 강쇠의 죽음으로 가정 생활(生活)에 파탄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강쇠의 죽음을 치상(治喪)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事件)과 어떻게 해서 치상(治喪)을 마치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다른 하나다.

 

 

 

 2. ’변강쇠가(歌)의 형성(形成)’ ’변강쇠가(歌)’의 형성(形成)에 관해서 구체적(具體的)으로 연구(硏究)가 이루어진 바는 없다. 다만 황해도 지방(地方)에서 형성(形成)되었을 가능성(可能性)에 대(對)한 문제(問題)의 제기에 그친 논급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변강쇠가(歌)’의 형성(形成)에 관한 실마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서 필자(筆者)는 ’변강쇠가(歌)’가 신재효(申在孝)에 의하여 판소리의 여섯마당 중의 한 마당으로 정착되었으면서도 실제창(實際唱)은 전수되지 못하고 사설로만 화석화되어 버렸다는 점을 주목하고자 한다. ’변강쇠가(歌)’가 음악적으로 생명(生命)을 잃고 만 이유(理由)를 사설의 조잡함이나 내용(內容)의 음란한 데서 찾는 태도는 타당성을 얻지 못한다. 왜냐하면 ’변강쇠가(歌)’보다 훨씬 조잡하고 상스러운 음사(淫辭)가 김연수(金演洙)의 창본(唱本)에 발견되며 노골적이고 음란한 행위(行爲)를 묘사하는 대사(台辭)가 ’양주(楊州) 별산대(別山台) 놀이’에 쓰이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그러한 설명(說明)은 설득력(說得力)을 잃을 것이라는 점을 명백(明白)하다.

 

 

 

 

3. ’변강쇠가(歌)’에서 보이는 비극적(悲劇的) 구조(構造)와 희극적(喜劇的) 효과(效果) (가) 해석(解釋)을 위(爲)한 검토(檢討) ’변강쇠가(歌)’에 대한 문학성(文學性)의 해석(解釋)과 평가(評價)는 이제까지의 연구에서 유출(抽出)된 결과에 대(對)한 미학적접근과(美學的接近)과 직결(直結)된다. 왜냐하면 ’변강쇠가(歌)’는 판소리 대본(台本)으로 형성(形成)되어 정착(定着)된 작품(作品)인 까닭에 ’변강쇠가(歌)’의 사설 분석(分析)은 판소리가 지닌 예술성(藝術性)과 관련시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변강쇠가(歌)’가 공연물(公演物)로서의 생명(生命)이 끊긴지 오래이므로 판소리가 지닌 예술성(藝術性)과 관련시켜 이야기 할 때 현장성(現場性)의 상실(喪失)을 감수해야 한다. 가창(歌唱)되고 있는 판소리의 사설은 음악(音樂)인 더듬과 사설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보일 뿐 아니라 판소리 대본(台本)이 아닌 동일계의 작품(作品)을 비교해 볼 때 극적구조(劇的構造)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변강쇠가(歌)’를 극양식(劇樣式)의 특질면(特質面)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변강쇠가(歌)’의 사설을 중심(中心)으로 구조(構造)를 분석(分析)해 볼 때 판소리계(界)의 다른 작품(作品)들이 지닌 구조(構造)나 특질(特質)과는 다른 면들이 밝혀지고 있다. 조동일(趙東一) 교수가 판소리 계(界)의 작품(作品)들을 분석(分析)하면서 밝혀낸 주제의 양면성이나 고정체계면(固定體系面)과 비고정체계면(非固定體系面)의 구조적(構造的) 대립(對立)이 발견(發見)되지 않으며 서사적(敍事的)인 작품내(作品內)에서 발견(發見)되는 귀족적(貴族的) 영웅(英雄)의 일반형(一般型)이나 평민적(平民的) 영웅(英雄)의 일반형(一般型)과 견줄 수 있는 인물형(人物型)들이 등장(登場)하지 않는다. 또 춘향전(春香傳)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한 인물(人物) 안에서 신분의 갈등을 보이고 있는 인물(人物)도 등장(登場)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흥부전(興夫傳)이나 심청전(沈淸傳)에서처럼 구조상의 대립(對立)들이 주는 의미(意味)와 미적(美的) 범주의 대립적(對立的)인 총체로서의 통일성(統一性)이 ’변강쇠가(歌)’의 구조(構造)속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변강쇠가(歌)’의 작품구조(作品構造)를 미학적(美學的)인 측면에서 어떤 방법(方法)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수용된 이론은 극이론(劇理論)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미학이론(美學理論)인데 이에 대한 타당성(妥當性)을 아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이 ’변강쇠가(歌)’가 비록 사설로 화석화되어 있다 하더라도 판소리의 대본(台本)이었으므로 판소리의 연극적(演劇的)인 특성(特性)과 밀접하게 묶여져 있을 것이다. 둘째, 아리스토텔레스류의 서양(西洋)의 고전적(古典的)인 시학(詩學)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비극(悲劇)이나 희극(喜劇)의 개념보다도 최근(最近)에 서구(西歐)에서 논의(論議)되고 있는 극이론(劇理論)을 적응해 보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理論)은 그리스의 고전비극(古典悲劇)과 희극작품(喜劇作品)에서 적출된 것이기에 이론(理論)의 적용에 많은 문제점(問題點)을 지닌다고 본다. 그런데 최근(最近)의 서구(西歐)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실험극(實驗劇)과 그 이론적(理論的)인 지주(支柱)들은 그 뿌리부터 동양(東洋)의 극(劇)에서 많은 것을 시사받은 것들이기 때문에 ’변강쇠가(歌)’의 구조분석(構造分析)에 원용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특히 ’변강쇠가(歌)’의 표면(表面)에 덮여있는 희극적(喜劇的)인 효과(效果) 뒤에 숨어있는 비극적(悲劇的)인 구조(構造)는 부조리극(不條理劇)(The theatre of the absurd) 등(等)의 구조(構造)와 상통되는 점이 나타나는 것을 착목(着目)해 볼 필요(必要)가 있다. (나) ’변강쇠가(歌)’의 구조(構造)-좌석(挫折)과 몰락(沒落)의 비극적(悲劇的) 전개(展開) ’변강쇠가(歌)’를 이루고 있는 기본구조(基本構造)는 이미 분석(分析)한 바와 같이 강쇠와 옹녀라는 유랑민(流浪民)이 겪는 몰락의 과정과 좌절의 결말(結末)로 이루어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비극(悲劇)의 특질(特質)은 명망과 번영을 누리고 있던 인물(人物)이 어떤 결점(缺點)에 의해 불행(不幸)으로 전락하게 되는 사건(事件)이 일으키는 공포와 애련(愛憐)이라 정의내릴 때 그것은 그리스의 고전비극(古典悲劇)을 염두(念頭)에 두고 한 말이다. 명망있고 번영을 누리던 인물(人物)이 갑작스런 불행(不幸)을 겪는 데에서만 비극감(悲劇感)을 맛볼 수 있다는 이야기는 비극(悲劇)의 개념을 너무 좁게 파악한 것이며 비극감(悲劇感)의 층을 단순하게 바라본 것이다. 이와는 달리 파멸로 결말(結末)을 맺는 내용(內容)을 비극(悲劇)으로 보자는 다음과 같은 견해(見解)는 ’변강쇠가(歌)’의 기본구조(基本構造)를 극으로 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나는 비극(悲劇)에 있어서 비극성(悲劇性)에 대(對)한 실제적(實際的)인 개념을 파멸(Catastrophe)이라는 사실에서 출발(出發)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비극(悲劇)은 비참하게 끝난다. 비극적(悲劇的)인 인물(人物)은 이성적인 사려(思慮)로 완전(完全)히 극복(克服)할 수도 없고 이해(理解)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좌절당한다." ’변강쇠가(歌)’는 강쇠와 옹녀의 몰락과 좌절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강쇠의 죽음과 뒤따라 일어나는 옹녀의 증발에서 두 인물(人物)의 파멸을 보인다는 점에서 비극적(悲劇的)인 구조(構造)를 암시(暗示)한다. 강쇠는 자연사(自然死)에 의해 죽음을 맞지 않고 나무를 하러 가서 패 온 장승의 동증으로 온갖 병을 다 앓고 ’피고름 독한 내가 코두를 슈 없는’(신재효본(申在孝本)) 모습으로 비참하게 죽고 만다. 또 옹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갖은 고생살이 끝에 작품내에서 어떤 보상없이 사라지고 만다. (다) ’변강쇠가(歌)’애 나타난 희극적(喜劇的) 효과(效果) ’변강쇠가(歌)’의 기본구조(基本構造)가 비극(悲劇)임에도 불구하고 비극성(悲劇性)은 희극적(喜劇的)인 요소(要素)에 차단당하여 작품(作品)의 효과면에서는 희극성(喜劇性)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변강쇠가(歌)’에 나타나고 있는 우습고 희화적(戱畵的)인 것은 유랑민(流浪民)들의 비참한 생활(生活)이야기와 좌절상이 결구(結構)된 비극적(悲劇的) 구조(構造)의 바깥쪽을 덮고 있는 효과(效果)에 불과한 것이지 본질적(本質的)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변강쇠가(歌)’는 왜 그런 미감(美感)의 당의(糖衣)를 입고 나타나는가? 그 실마리를 ’어우야담(於于野談)’에 기록된 광대의 이야기에서 찾아보자. "한 광대가 나무로 만든 귀신탈을 쓰고 그의 처와 함께 봄이 와서 녹아가는 얼음 위를 건너가면서도 놀이를 하기 위해 탈을 벗지 않았다. 갑자기 그의 처가 얼음 속에 빠져서 허위적대었다. 광대는 황급해서 가면을 벗지 못하고 걸음을 멈추고 통곡을 했다. 비록 광대는 통곡하면서 슬퍼했으나 소리를 죽이고 웃지 않는 구경꾼이 없었다." 위의 이야기에서도 광대의 비참한 생활(生活)모습이 가면희(假面戱)의 우스꽝스러움 뒤에 숨어 있음을 간취해 낼 수 있다. 즉 부인(婦人)이 익사하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속수무책인 광대의 비통한 심정이 오히려 구경꾼들에게 웃음을 일으키는 가면 뒤에 숨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변강쇠가(歌)’의 심층부에는 비극적구조(悲劇的構造)가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으나 표면(表面)으로는 타령과 사설로 엮어진 희극적요소(喜劇的要素)들이 덮고 있다. 비극적(悲劇的)인 구조(構造)에 희극적(喜劇的)인 효과(效果)가 덮여있는 까닭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것은 근원적(根源的)으로 비극적인간(悲劇的人間)의 삶 전체가 하층민으로 유랑(流浪)하는 이들에게 유형화(類型化)되어 있기 때문에 조리에 닿지 않고 납득할 수 없는 국면으로 나타나며 이것은 하층 유랑민(流浪民)의 일부인 광대들의 생계수단인 공연(公演)을 통하여 희극적(喜劇的)으로 표출(表出)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변강쇠가(歌)’에 나타나는 희극성(喜劇性)은 광대 자신들의 비극성(悲劇性)을 의식(意識)하면서 표출(表出)시키는 데서 나타나는 효과라기보다는 무의식적(無意識的)인 발로라는 점에서 서구(西歐)의 부조리극(不條理劇)에서 논의되는 희극성(喜劇性)과는 구별(區別)될 수 있다. 그러나 ’변강쇠가(歌)’의 기본(基本)골격이 비극(悲劇)임은 부인할 수 없으므로 작품 전체를 뒤덮고 있는 희극적(喜劇的) 효과(效果)는 다음과 같은 미학적(美學的)인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 작품상의 특질로 볼 때 ’변강쇠가(歌)’는 비장(悲壯)과 골계(滑稽)의 결합(結合)이라는 미감(美感)의 공유결합이라기 보다도 비장(悲壯)을 골계(滑稽)가 둘러싸고 있는 미감(美感)의 복합 결합(結合)이라는 특색(特色)을 보여준다. 이점에서 심청가(沈淸歌)에서 볼 수 있는 비장(悲壯)과 골계(滑稽)의 대립적(對立的) 총체로서의 통일성(統一性)과는 다른 미감(美感)을 준다. 이것은 어떤 의미(意味)로 보아서 비극적(悲劇的)인 단면(斷面)의 희극화(喜劇化)이며 가장 비극적(悲劇的)인 것인 동시(同時)에 희극적(喜劇的)인 것으로 화(化)한 예라 할 수 있다. 겉으로는 비극(悲劇)으로 보이나 희극적(喜劇的)인 본질(本質)을 지닌 작품(作品)과 겉으로는 희극(喜劇)같이 보이나 비극적(悲劇的)인 본질(本質)을 지닌 작품(作品)으로 나눈다면 ’변강쇠가(歌)’는 후자에 속한다고 보겠다.

4. ’변강쇠가(歌)’의 문학적(文學的) 위치 이상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보면 ’변강쇠가(歌)’는 다음과 같은 문학사적(文學史的) 위치를 가진다. 우선 ’변강쇠가(歌)’는 판소리의 생성(生成)과 형성(形成)에 있어서 지금까지 입론(立論)되어 왔던 남방(南方) 기원설을 재고(再考)할 수 있는 자료적인 가치를 지닌다. 또 판소리 대본중(台本中)의 어느 작품(作品) 보다도 광대 자신의 생활(生活)을 투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 관한 보고서(報告書)로서도 중요(重要)할 뿐 아니라 하층 유랑민(流浪民)의 문학적(文學的) 특질(特質)을 형상화(形象化)하고 있는 작품(作品)으로 주목할 수 있다. 이 점은 미학적(美學的) 측면에서 작품(作品)의 구조(構造)를 들여다 보게 될 때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판소리가 하층민인 광대에 의해 생성(生成)되고 그것이 상층민인 양반에 의해 완상(玩賞)됨에 따라 그들의 영향을 받게 되어 판소리의 사설 속에 이 두 문화층(文化層)의 혼효(混淆) 내지 공존이 일어났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설(通說)이다. 그런데 ’변강쇠가(歌)’에는 이러한 문화층(文化層)의 상호 접촉이나 혼재(混在)를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유랑하던 하층민(下層民)의 문화적내질(文化的內質)을 그대로 담고 있을 뿐이다. 그 점에서 ’변강쇠가(歌)’는 판소리의 다른 작품(作品)과 구별(區別)되는 독특한 가치(價値)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作品)의 미학적(美學的) 측면에 있어서도 판소리의 다른 작품(作品)뿐만 아니라 다른 고전작품(古典作品)과도 뚜렷이 구별(區別)되는 특질(特質)을 보인다. 그것은 궁민화(窮民化)되는 하층(下層) 유랑민(流浪民)의 처참한 삶의 전개(展開)를 기본구조(基本構造)로 삼고 있다는 점(點)에서 비극적(悲劇的)인 구조(構造)가 내면결구화(內面結構化)되어 있으나 광대들의 생계수단인 공연(公演)의 재미를 위해 희극적(喜劇的)으로 표면결구화(表面結構化) 되어 있다는 점(點)에서 재인식(再認識) 된다. 이상에서 개진된 이러한 문학사적(文學史的) 위치에 대한 재고(再考)는 고전작품(古典作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가능성(可能性)에 대한 일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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