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에서 시인은 자신을 불완전하게 낳아준 어머니를 원망하는데 어머니는 인생이란 불완전하다며 그를 현실로 밀어낸다. 그는 지식인으로서 사회개혁의 의지와 전통적인 유교적 덕목을 아버지로부터 강요받는다. 그는 이런 갈등에서 벗어나려고 방황을 시작한다.
2막에서 구원의 이름인 비비를 만나기 전 시인은 두 명의 여자를 사랑한다. 그는 백의녀(白衣女)에게 낭만적인 사랑을 구한다. 봄을 배경으로 꾀꼬리 소리와 같이 등장한 그녀는 흰옷을 입고 검은 피를 흘리는 죽음의 이미지를 갖는다. 그리고 시인은 흰 간호사 옷을 입은,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비의녀(緋衣女)에게서 쾌락을 추구한다. 비비를 만난 그는 인생의 두 암초인 신과 사랑 중신을 거부하면서 사랑에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시인에게 열정과 아픔을 준 비비는 카로노메로 바뀐다. 비비는 가정과의 절연을 주장하여 극단의 개인주의와 자유를 실현하고 카로노메는 사랑에 헌신적이다. 이렇게 이지적이면서도 헌신적인 면을 지닌 복합적인 성격의 구원의 여인은 작가의 관념 속에만 존재한다. 결국 시인이 추구하여 만나온 여성인 비비나 카로노메는 그의 운명을 고독하고 외롭게 열어준 어머니의 변형이었으며 그는 사랑하는 대상들에게서 어머니를 만나려고 한 것이다.
3막에서 카로노메가 시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어머니와 분리되어 그를 위로하는 대상이 되려는 순간 그에게서 사라져버린다. 그는 난파하여 물결 뛰노는 바닷가에서 자신의 ‘근본적인 꿈’인 어머니에게로 다시 복귀한다. 이 공간은 모태를 의미하며 모태로의 회귀는 새로운 출발을 암시한다. 시인의 내면 속 혼란과 갈등이 정거장식 기법으로 표현되었다. 즉 그와 어머니의 대립으로 시작해서 그의 의식세계를 돌아다보는 순례를 끝낸 후 다시 어머니 품속으로 돌아간다.
「난파」는 그가 자살한 해인 1926년 봄에 쓴 작품으로서, 복잡하게 얽힌 유교적 가족구조 속에서 현대적인 서구윤리를 지닌 한 젊은 시인이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3막의 표현주의 작품’ 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듯이, 의도적으로 창작된 표현주의 극으로서, 한국 표현주의 문학의 선구가 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으로 작가는 작품 속에서 시인의 모습으로 내면화되어 있다. 표현주의 극답게 이 작품에는 분명한 시간, 공간과 뚜렷한 성격의 현실적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모든 인물들과의 관계와 장면의 연결은 작중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시인과 관련하여 진행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분명한 인과 관계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시인의 내면 속의 혼란과 갈등의 표상으로만 드러날 뿐이다. 젊은 시인이 그의 모(母)와 출생에 관해 논쟁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며 이들의 대화는 인격이 부여된 보통 인물들의 대화라기보다는 각자의 입장과 이름만을 달고 나온 추상적 존재로 보여진다. 몽상적인 분위기를 주기 위하여 모는 흰옷을 입은 유령처럼 나타나는데 한 아들의 어머니로서 지니는 모성애보다는 관념적이고 이성적인 사상을 전달할 뿐이다.그래서 사실주의 극에서 극적 사건이 보여주는 주제의 제시가 아니라, 인물들의 대사가 표현해 내고 있는 상징적 내용에 더욱 중점을 두고 보아야 한다. 시인의 갈등은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존재로서의 모든 것에 있다. 왜 이 모양으로 태어났으며 왜 이런 봉건적 사상의 나라에 태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근원에의 의문이나 자아에의 끊임없는 투시는 표현주의 극의 대표적 정신이다.「난파(難波)」가 지닌 표현주의 극정신과 극형식은 공간과 시간의 파괴, 반아리스토텔레스적 플롯, 유형적 인물 등이 거기에 해당될 것이다. 김우진의 자화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시인은 모(母)뿐만 아니라 부(父), 악귀, 신주, 계모들과도 대립하는데 ,그 내용은 유교적 문제와 기성 인습에 관한 것들이다. 이들 인물의 설정이 김우진의 가족사와 무관하지 않아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사회와 가족에의 거센 반감이라는 주제의식이나, 등장인물들이 자기의 이름을 갖지 않고 직업이나 특성을 대신하는 이름을 등장하는 것 역시 표현주의적 기법의 요소로 볼 수 있다. 2막, 3막으로 가면 백의녀, 비비, 카로노메, 이복제, 동복제 등이 등장하여 좀 더 복합적이고 관념적이며 단편적인 내용과 구성을 보여준다. 그 논점은 종교, 도덕, 가족사 등에 얽혀 있다. 사실주의적인 인과율에 익숙한 독자는 난해하고 관념적인 대사 때문에 어려움을 느끼는데, 그것은 표현주의가 외면보다는 그 속에 숨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일상적인 행동양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극의 다양한 발전이 있어 온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아도 이 희곡은 난해한 감이 있는데, 더욱이 당시로서는 이상이 시와 소설에서 보여 주었던 충격만큼이나 실험적이고 첨단적인 형식이었다.
이렇게 이 작품은 1920년대의 한 지식인의 분열된 자아의식을 표현한 작품으로 표현주의의 기교를 적절히 시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주의적 작품이 1920년대의 한국 연극의 감각으로는 매우 낯설고 혁신적인 것인 만큼, 이 작품은 지상에 발표되지도, 공연되지도 못하였다. 오히려 이 작품의 현대성은 오늘날에 와서야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난파」는 악몽과 같은 무대, 소통되지 않는 장광설의 긴 대사, 해체된 플롯 등 표현주의 작품에서 즐겨 사용되는 언어와 극형식을 통하여 작가 자신의 개인적·사회적 고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혈연 중심주의와 모순된 가족구성에서 발생하는 갈등, 사랑과 성적욕망 사이에서의 균열, 가치 상실의 시대에 사회적 이상을 실현시키려는 의지 속에서 방황하고 좌절하는 정신풍경의 사생을 시도한 작품이다. 표현주의가 사물의 외관을 보여주거나 재현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을뿐더러 집단과 사회의 공동체적 입장 보다는 사물과 상황에 대한 통찰력을 중시하고 무엇보다 인간의 내면세계를 드러낸다는 특성을 감안할 때 「난파」에 붙인 부제는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난파」는 유교이념적 세계관과 새로운 세계관과의 대립을 작가의 내면 속에서 부와 아들이 갈등으로 형상화시켰으나 새로운 세계관의 정립, 구체화에 실패함으로써 그 갈등이 해결을 보지 못하고 난파되는 작품이다. 또한 그 갈들의 방황 속에서 시인은 사랑에, 여성에게 안주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성적 쾌락만이 추구되는 훼손된 사랑으로 보여진다. 결국 「난파」는 주인공인 시인이 이중의 암초를 만나 난파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