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윤백남 '국경'

clint 2018. 5. 13. 19:36

 

 

단막 희곡 「국경(國境)」은 신극의 초창기에 신파극 운동을 벌였던 윤백남(尹白南)이 1918년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에 발표한 희곡. 1921년 7월과 8월 사이에 ‘갈돕회’에 의해서 공연되었다. 1막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은행 지배인인 남편과 신식 부인과의 갈등을 희극적으로 그린 것이다. 이 작품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조일재(趙一齋)의 「병자삼인(病者三人)」이 있는데 작가의식과 구성뿐만 아니라 발상과 해결에서도 동일하다.

 

1910년대를 풍미하던 계몽주의 문학과는 달리 시대사조를 외면한 채 작가가 남성이라는 아집을 극복하지 못하고 완고한 전근대적 형식의 바탕에서 오히려 개화사상을 거부하고 쓴 것으로, 그의 선구자적 행적과는 매우 다른 자세를 보인 작품이다

 

 

(尹白南1888.11.7.고종 25∼1954.9.29)
극작가ㆍ소설가ㆍ영화감독. 본명은 교중(敎重). 충청남도 공주 출생. 서울로 와서 명동의 경성학당 중학부를 마치고 도일하여 후쿠시마현(福島縣) 반조중학교(盤城中學校) 3학년에 편입하였고, 그 이듬해에는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고등예과를 거쳐 정경과(政經科)로 진학하였다. 그는 이 때 조선황실의 관비유학생으로 선발되었으나 정경과생에게는 지원이 중단되는 조선통감의 조치 때문에 도쿄고등상업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하였다. 졸업 후 곧 귀국하여 도쿄고등상업학교시절 친구였던 일본인 모리 고야치가 이사로 있던 관립 한성수형조합(漢城手形組合)에 근무하면서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강사로 나갔다.
경술국치 이후에는 [매일신보(每日申報)] 기자로 들어가서 문필생활을 시작하였고, 1912년에는 작가 조일재(趙一齋)와 함께 신파극단 [문수성(文秀星)]을 창단하여 배우로도 활약하는 등 연극 활동을 겸하였다.
1913년 [매일신보] 편집국장을 거쳐 잡지사인 [반도문예사(半島文藝社)]를 세우고 월간잡지 [예원(藝苑)]을 발간하였다. 1916년 이기세(李基世)와 함께 신파극단 [예성좌(藝星座)]를 조직하였고, 1917년 [백남프로덕션]을 창립하여 몇 편의 영화를 제작, 감독하기도 하였다.
1918년 김해 합성학교(合成學校) 교장을 거쳐, [동아일보]에 입사하였다. 이 시기에 단편소설<몽금(夢金)>을 발표하고<수호지(水滸誌)>를 번역하였으며, 우리 나라 최초의 대중소설인<대도전(大盜傳)>(1919)을 연재하였다. 이어 1920년 [동아일보]에 신극사(新劇史) 최초의 연극론인 논문<연극과 사회>를 발표하였다. 그는 소설 창작에 이어 희곡<국경>과<운명>을 발표하였다.<운명>은 1921년 이기세가 주재하는 예술협회의 제1회 공연으로 상연되었다. 1922년 [민중극단(民衆劇團)]을 조직해서 자신의 희곡<등대지기><기연(奇緣)><제야의 종소리>등과 번안ㆍ번역극 등을 상연하였다. 1923년 우리 나라 최초의 극영화인<월하(月下)의 맹서>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그 뒤 [조선키네마]에 입사하여<운영전(雲英傳)>을 감독하였고, 1925년 [윤백남프로덕션]을 만들어<심청전>을 제작하였다. 1930년 연극으로 눈을 돌려서 박승희(朴勝喜)ㆍ홍해성(洪海星)과 [경성소극장(京城小劇場)]의 창립동인이 되었으나 곧 유산되었다.
1931년 창립된 신극단체 [극예술연구회]의 창립동인이었으나 1920년대 중엽 이후로는 실제로 연극 일선에는 거의 나서지 않았다. 1934년 만주로 건너가서 역사소설<낙조의 노래>와<미수(眉愁)>등을 집필하였고, 광복 후에 귀국하여 6ㆍ25전쟁 때는 해군 중령으로 복무하였고, 1953년 서라벌예술대학 학장, 1954년 초대예술원회원을 역임하였다.

【작품세계】그의 작품은 초기에는 계몽주의적·인도주의적 경향을 띠었는데, 예컨대<대도전><흑두건>등과 같은 소설은 도둑의 이야기로 혼란된 사회상황하에서의 집단적 폭력의 문제를 서술하며, 또 경향소설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점차 현실패배적인 역사소설이나 야담류로 흘렀고, 1933년 무렵에는 본격적인 야담가로 나서기도 하였다.
그의 희곡은 신여성에 대한 매도와 구식 결혼제도 비판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보수와 진보사상을 동시에 드러냈는데, 이는 개화시대 지식인들의 과도기적 복합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논문<연극과 사회>는 크레이그(Craig,G.)의<극예술론>에 바탕을 두고 우리 나라의 관점에서 썼는데, 소박한 논조이기는 하나 당시 연극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는 개화기의 선구적인 인물로서 금융인으로 출발하여 언론인ㆍ연극인ㆍ교육자ㆍ문인ㆍ영화인ㆍ만담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특히 그는 영화계에 선구적 공적을 남겼고 연극인으로서도 초창기에 극단을 주재하고 희곡을 쓰는 등 신파극을 정화하려고 노력하였다.
【소설】<몽금(夢金)><대도전(大盜傳)>(1919)<낙조의 노래><미수(眉愁)><흑두건(黑頭巾)><사변 전후><추풍령><야화(野花)>【희곡】<국경>(1918)<운명>(1921)<등대지기><기연(奇緣)><등대직(燈臺直)>(1922)<제야의 종소리>(1923)<파멸>(1923)<대호전(大豪傳)><봉화(烽火)><해조곡(海鳥曲)><백련유전기(白蓮流轉記)><항우(項羽)><난아일대기(蘭兒一代記)><천추의 한>(1945)<감고당(感古堂)의 눈물>(1945)<해적>(1945)<회천기(回天記)>(1949)<안동의기(安東義妓)>(1953)
【희곡집】<운명>(1930)
【영화】<월하(月下)의 맹서>(1923)<운영전(雲英傳)><심청전>(1925)<정의는 이긴다>(1930)
【번역서】<수호지(水滸誌)>(1919)
【평론】<연극과 사회>(1920)
【저서】<조선형정사(朝鮮刑政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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