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막이 열리면 놀음바치들의 인형극 놀이가 펼쳐진다.
어느 날 나라 안에 있는 영노(괴물)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잡아먹고 집을 부수며 행패를 부리는데 이를 퇴치할 방도가 없어 궁중에서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마침 왕의 생신을 축하하러 궁중에 들렀던 놀음바치들이 홍동지라면 틀림없이 영노를 물리칠 수 있다고 하여 왕은 홍동지를 부르러 보낸다. 홍동지는 산중에서 뛰놀며 짐승의 젖을 먹고 자라난 때 묻지 않은 인간이다. 그는 인간의 언어도 모르고 풍습도 모른다. 홍동지가 영노를 때려눕히자 왕은 장군의 벼슬을 내리겠노라며 그를 궁으로 불러들인다. 건강한 홍동지는 벌거벗은 채 궁으로 들어와 여러 사람들을 당황케 한다. 결국 궁중학자인 박사가 홍동지에게 공부를 가르쳐 그를 인간으로 만들기로 한다. 일취월장, 학문을 닦은 홍동지는 이제 의젓한 인간이 되었다. 왕은 홍동지를 격려하기 위해 술자리를 마련하는데, 여기서 홍동지는 왕의 애첩 시녀장에게 반한다. 한편 늠름한 홍동지를 보고 사랑에 빠진 왕비는 자기 손으로 지어준 홍동지의 옷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혼돈의 와중에 홍동지는 시녀장의 방문 앞에서 어정거리다 들키게 된다. 그날 밤 왕의 침소가 시녀장 방에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홍동지는 역모 혐의를 받고 고문을 당하게 된다. 마침 나라 안에 반란이 일어나게 되자 왕은 홍동지를 장군의 자격으로 궁 밖으로 내보내 반란을 진압케 한다.

그 사이에 궁 안에서는 홍동지의 힘과 지혜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왕과 내관이 짜고서 궁으로 돌아오는 홍동지를 죽이자며 독을 바른 화살촉을 준비, 궁수들을 궁 어귀에 배치한다. 이를 알아챈 왕비는 사람을 보내어 홍동지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한편, 왕비는 왕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서역에서 온 미희들을 대동하여 놀이판을 벌이는데 막간극으로 광대패들의 꼭두각시놀음이 벌어진다. 꼭두각시놀음 도중 갑자기 인형극 휘장을 젖히며 홍동지가 뛰어나와 왕을 살해하고 내관을 궁 밖으로 내쫓는다. 왕이 된 홍동지는 거칠 것이 없이 국사를 이끌어간다. 아울러 그의 자만심도 눈덩이 구르듯 커져만 간다. 시녀장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해 애를 태우던 홍동지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녀장과의 결혼을 선포한다. 여기서부터 홍동지는 권력의 고독과 비인간화를 겪어 간다. 산에 살던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홍동지를 설득하는데 실패한 왕비는 복수심에 불 탄 나머지 홍동지의 제웅을 마련하여 제웅의 머리에 바늘을 꽂고 주문을 외운다. 결혼의 기쁨보다는 주위 인간들에 대한 실망과 의심에 전전긍긍하던 홍동지는 갑자기 머리에 통증을 느끼며 쓰러진다. 홍동지는 옷을 벗어젖히고 발광하기 시작한다. 홍동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외부에서 의원을 불러들이는데 쫓겨났던 내관이 의원으로 변장하여 홍동지의 뇌에 독침을 꽂는다. 거목이 쓰러지듯 홍동지는 넘어지고, 홍동지의 비명을 듣고 달려간 시녀는 홍동지를 끌어안고 흐느껴 운다. 왕비와 그 무리는 장례나 잘 치러주라며 퇴장한다. 이어 놀음바치들이 등장, 죽은 자를 축원하는 인형놀이가 시작된다.

「홍동지는 살어있다」는 전통극의 홍동지와 ‘용마설화’에서 모티브를 빌려온 창작 희곡이다. 극의 서사는 홍동지라는 이름과 무명의 힘센 평민이 장수로서 왕이 된다는 표면적인 사실을 제외하면, 전통 이야기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전통극에서 보여 주었던 홍동지의 무한한 생명력이나 민초의 숙원인 아기장수 왕과 연결되기에는, 홍동지가 너무나 쉽게 길들여지며 행위들도 홍동지 개인적인 동기로 점철되어 있다. 즉 홍동지의 시녀장에 대한 사랑이 중요한 극적 행위의 동기로 분명히 부각되어서 자칫 멜로물적 한 개인의 욕망 구조로 읽히기 쉽다는 말이다.
물론 작품의 이면 구조가 있으니, 왕비의 현세적 꼭두로 조정되는 놀음바치들과 산 너머 도깨비들의 세계가 그것이다. 작가는 이 이중 구조를 강조하며, ‘신화 속의 홍동지는 죽었는데 놀음바치속의 홍동지는 점점 의식이 깨어나고 급기야 새로운 희망으로 부각’되며 ‘영웅적 홍동지의 죽음과 대비되는 기층 정서로서의 홍동지의 부활과 자기 갱신을 제시하면서 막을 내린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홍동지의 이중 구조의 의미가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지극히 서구적인 반전을 계속하는 극적 구조에 삼각관계라는 틀 속에서 권력을 이야기하다 보니, 전통의 ‘용마설화’ 공감대와는 거리가 있을 뿐더러 상투적인 TV연속극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란 느낌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작품의 기본 의미망이 확립되지 않았을 때, 무수한 전통의 해체와 재구성은 유희나 볼거리 이상의 의의를 갖지 못한다. 물론 이러한 유희와 볼거리 또한 충분히 그 나름의 가치와 의의가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국립극단 전단원이 출연 외에 기획 홍보를 담당하며 관객유치에 새롭게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홍동지는 살어있다>는 1991년 국립극장이 마련한 우수창작극응모 당선작. 한국의 꼭두극 원형에서 이미지를 차용해 서구연극형식과는 달리 민족 특유의 원형연극을 현대적 공연양식으로 재창조하려는 실험적인 무대다. 꼭두극에 등장하는 홍동지를 현실로 이끌어낸 이 작품은 신화 속의 인물이 문명과 제도를 접하면서 어떻게 원초적 욕망구조를 드러내고 파멸에 이르는가를 표현한 문명 비판적인 시각을 띠고 있다. 산속에서 비인간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홍동지는 왕의 부름을 받고 영노라는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세상으로 나온다. 홍동지는 왕의 바람기에 질투를 느끼던 왕비의 도움으로 인간교육을 받고 점차 지혜를 얻어 새로운 왕이 된다. 그러나 왕이 된 홍동지는 왕비대신 시녀장을 새 왕비로 간택하고 정치권력에 눈이 멀어 악몽과 광기에 휩싸이다 분노한 왕비에 의해 살해된다. 무대는 신화의 세계를 나타내는 지역과 제도권인 성곽, 그리고 광장으로 세분화되며 광화문네거리가 실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축소되어 무대에 올려진다. 또 영노와 홍동지 등의 인형이 제작되어 극과 병행해 인형극으로 이끌며 홍동지, 영노 등의 공중비행이 펼쳐진다. 각 출연자들은 우리의 가면극, 인형극, 굿 또는 축제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운문적 리듬을 띠는 걸음걸이, 도약, 회전 등을 익히기 위해 지난 2월 밀양백중놀이와 시조창 등을 배우기도 했다. (국민일보 1993년 3월 26일)

여기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원래 꼭두들이었으나, 이번 공연에서는 살아있는 배우에 의해 구체적인 인간으로 재현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다시 말해 꼭두의 기계성, 추상성이 벗겨지는 한편, 구체적이고 개성이 강하게 살아있는 유기체가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상징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하나의 독립된 개체이면서 동시에 한국인의 한 전형. 하나의 원형을 예시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지구촌의 문화가 상호 긴밀한 연관을 맺고 강한 영향관계를 이루어가는 오늘의 문화현상에서 한국의 문화예술이 어떻게 독자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확보하느냐가 이번 공연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 성패는 한국연극의 세계화에 적지 않은 충격으로 작용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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