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쌍의 부부가 등장하는데, 한 쌍은 아내가 여학교 교원이요 남편은 교사시험에 떨어져 아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청부(廳夫)가 된다. 그는 다시 시험을 치라는 아내의 성화에 귀머거리로 위장(僞裝)한다. 둘째 쌍은 아내가 의사요 남편은 한의학을 한 엉터리 교의(校醫)이다. 그는 오진을 추궁하는 아내 앞에서 벙어리 행세를 한다. 셋째 쌍은 아내가 교장인데 남편은 그 밑에서 회계를 맡고 있다. 그는 공금을 유용하고 아내 앞에서 장님으로 위장한다. 그러나 남편들의 위장은 아내들의 집요한 공격으로 폭로되고 견디다 못한 남편들이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것이 상팔자”라고 집단항거를 하고, 아내들은 곧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화해를 한다.』
『학교 급사ㆍ병원 조수ㆍ여학교 회계인 남편들은 각각 여교사ㆍ여의사ㆍ여교장인 아내들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으로 주눅이 들어 있다. 남편들은 아내들에게 더욱 시달리던 끝에 각각 귀머거리ㆍ벙어리ㆍ장님 등의 병신으로 가장하기에 이르며 아내들의 핍박을 벗어나기 위해 감옥에 들어가기를 자청한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아내들은 남편들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되어 세 쌍의 부부는 단란한 모습을 되찾게 된다.』


「병자삼인」은 1912년 11월 17일에서 25일까지<매일신보>에 연재되었다. 조중환은 이를 발표하던 1912년 당시, 매일신보의 기자로 있으면서 함께 근무하던 윤백남과 더불어 극단 ‘문수성’을 조직하였다. 그들은 ‘조선의 연극이 부패함을 개탄하고 ’, ‘신연극을 연구하여 풍속의 모범을 지을 목적으로’ 연극운동을 시작하였다.(<매일신보>, 1912.3.27) 이들은 임성구의 ‘혁신단’을 주요 비판대상으로 삼아 이들과 차별화된 연극을 표방하였으며 그 질적 차원은 보다 일본 신파극에 가까운 것이었다. 조중환은 ‘문수성’ 창립공연인 「不如歸」(1912.3.29)와 「松栢節」(1912.5.7)에서 연기자로 활약하였을 뿐만 아니라 「不如歸」, 「雙玉淚」, 「長恨夢」 등을 번안하였고, 「靑春」(이상협과 合作), 「斷腸錄」 등의 극본을 만들었다. 「병자삼인」은 매일신보에 연재된 작품으로 조중환이 문수성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의 업적 중의 하나이다.

11월 16일<매일신보>에 실린 이 작품의 연재 예고 기사에는 「희극 병자삼인」, ‘포복절도할 각본’, ‘그 내용의 골계한 사실은 독자로 하여금 배를 쥐고 허리를 분지를지라, 오늘날 이십세기에서 생활하는 사람으로 우승열패함은 정한 이치라’라고 밝혀 이 작품의 작가 장르의식이 ‘희극’에, 이 작품의 주제가 ‘우승열패’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여학교 교사인 이옥자와 학교 하인인 정필수, 여학교 촉탁의인 양의사 공소사와 한의사 하계순, 학교장인 김원경과 학교 회계 박원청의 갈등을 중심 사건으로 삼고 있다. 정필수, 하계순, 박원청 세 남편들은 그들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여성들의 공박을 받자 귀머거리, 벙어리, 장님의 ‘병자’ 노릇으로 위기를 벗어나려 한다. 의사 공소사의 진단으로 이들의 가짜 병자 노릇은 폭로되고 남편들의 위기는 가중된다. 이들이 처지가 파국에 달할 무렵, 헌병보조원 길춘식의 개입으로 극적인 화해가 성립한다. 그러나 이 화해는 이들 남편과 아내의 관계의 역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우월한 여성들의 용서와 남편들에 대한 보호의지에 기반하고 있다. 그리고 이 화해를 위한 전제조건은 남편들이 다시는 병신흉내를 내지 않는 것이다. 이들이 더 이상 병신흉내를 내지 않게 된다면 이들은 우승열패의 근대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게 된 것일 터이다.

이 작품은 공간적으로는 부부 중심의 새로운 부르조아 가정과 학교, 병원, 감옥으로 이어지는 핵심적인 근대 공간이 망라되어 있으며 인물의 관계는 교사‧의사의 보조자이며 대행자인 부르조아 가정의 주부와 가족, 노동 능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 교사와 학생, 고용인과 피고용인 등으로 확장되어 근대 사회에서 주요한 갈등관계를 망라하고 있다. 특히 양의사인 공소사는 남편들의 거짓 병자 노릇을 진단하고 확정하는 새로운 근대의료권력의 담지자로서 그녀의 판단은 정책적으로 관철되는 ‘우승열패’라는 명제의 주요한 근거로 작동하고 있다. 다만 이들 부부가 도달하는 결말이 파국과 단절, 또는 분할과 배제가 아니라 이해와 통합의 계기를 내장한 ‘화해’라는 측면에서 서구적인 미적 근대성과 변별되는 지점이 발생한다. 물론 1910년대에 이는 일제에 의존한 개화론 - 친일개화론에 의해 근대성 쟁취에 매진한 시기에 이에 대한 일체의 비판이나 저항이 소거된 채, 일제의 근대적 통치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긍정이며 예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적 가치에 대한 전면적인 예찬 속에서 발생한 독특한 ‘화해’를 단순히 근대의 미달로 파악하는 관점을 넘어 새로운 소통의 원리를 모색하는 기반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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