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장정일 '실크커튼은 말한다'

clint 2018. 5. 13. 18:37

 

 

「실크커튼은 말한다」, 이 연극은 장정일의 소설집인 『아담이 눈뜰 때』에 실린 동명의 단편소설을 극화한 작품이다. 부산 토박이 극단 ‘열린무대’의 연출가 구현철이 연극으로 옮긴 것이다. 이 연극은 항상 자신의 방에서 갇혀 사는 한 남자와 매일 마당으로 나와서 자신의 다리를 씻는 여자, 그리고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실크 커튼의 이야기이다. 이 실크 커튼은 항상 이 두 사람을 관찰하는 관찰자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연극의 중간 중간마다 등장하는 내레이터와 그 시선이 비슷한 것을 느꼈다. 무대 밖의 한 배우(나레이터)가 타자기를 두드리면서 소설을 쓰는 행위를 하는데 항상 내레이션을 하면서 “나, 실크커튼은 말한다…….”라는 부분에서 이 내레이터와 실크 커튼이 일종의 관찰자의 관점에 이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연극에서 남자는 수돗가에서 다리를 씻고 있는 여인을 보고 있으며, 여인 또한 그 남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늘 수돗가에서 다리를 씻고 있다. 이 두 사람을 가로막고 있는 실크커튼은 이들을 확연히 갈라놓고 있는 물리적인 차단막 역할을 하기에는 유약한 존재이지만 그 두 사람에게만큼은 사실 유약한 존재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진정 두 남녀를 갈라놓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 낸 마음의 벽일 것이다. 단지 육체적인 모습만을 탐닉하고 혹은 탐닉을 당하는 것을 즐기는 이 두 마음이 진정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실크커튼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런 그들에게서 진실한 마음이 없는 한 더 이상의 진척은 없을 것이라는 게 자명한 사실이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 내에서만 연민과 애틋한 사랑을 상상하며 놀이의 즐거움만을 즐기는 동시에 환멸과 지기혐오라는 아이러니를 드러내게 된다. 그들의 행동은 아니 그들의 유희는 어둡고 황폐하고 절망적인 세계로 치닫는다. 서로를 잘 알지만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의 관계는 훔쳐보기를 통해서 치열한 자기 응시로 치환된다. 조금씩 지쳐 가는 일상에서 아무런 연유 없이 터지는 남자의 울음은 욕망의 뿌리로 내려가서 내딛는, 세계와 자신에 대한 모순의 인식이다. 그 울음은 긴 장마와 더불어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된다. 사람이 오래 지속되듯, 지루한 울음이 탈색되어 가는 과정을 응시하는 동안 관계맺음이란 진정성과 마주쳐 보고자 한다. 아마도 이 연극에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서로가 작은 수족관 안에서 행위는 서로에 대한 응시와 관계맺음이라는 것으로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 본다. 이제는 서로가 마주치지 않는다면 그들의 세상은 열리지 않으므로… 연극의 마지막은 왠지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한 건반 연주로서 막을 내린다. 때로는 뜨겁고 때로는 차분한 이 건반 연주가 그들의 마음의 벽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아니 그들을 바라보는 실크커튼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천막촌 같은 동네에 자신의 방안에 갇혀 사는 남자는 마당가에 나와 다리를 씻는 이웃 방의 여자를 훔쳐보며 수음을 한다. 그것만이 이 남자의 은밀한 유희며 세상에 대한 욕망의 전부다. 그것말고는 도무지 움직이지 않고 사는 듯이 보인다. 이 사실을 아는 듯 여자는 매번 마당가에서 다리 씻기를 즐기며 남자의 방을 살핀다. 여자 또한 다리를 씻는 행위를 통해 남자의 애절한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세상과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을 뿐이다. 실크커튼을 젖히고 얼굴을 드러내지도 못하며 낭만적인 세레나데를 불러주지도 못한다. 관계맺음의 욕망이 커질수록 절망감 또한 비례하는 것이다. 결국 남자와 여자는 자신들의 세계 내에서 연민과 애틋한 사랑을 상상하며 놀이의 즐거움만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환멸과 자기혐오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그리하여 성적인 코드로 드러나는 이들의 유희는 어둡고 황폐하고 절망적인 불임의 세계로 치닫는다. 현대사회의 반커뮤니케이션적인 관계맺음(그것은 매스컴과 저널리즘에 기인하며 - 남자와 여자는 그곳으로부터 소극적인 도피를 한 것처럼 보인다)과 상호무관성을 보여주는 듯한 이들의 관계는 그러나 훔쳐보기를 통한 치열한 자기응시로 치환된다. 조금씩 지쳐 가는 일상에서 아무런 연유 없이 터지는 남자의 울음은 욕망의 뿌리로 내려가서 내딪은, 세계와 자신에 대한 모순의 인식이다. 그 울음은 긴 장마와 더불어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게 계속된다. 삶이 오래 지속되듯. 지루한 울음이 탈색되어 가는 과정을 응시하는 동안 "관계맺음"이란 진정성과 마주쳐 보고자 한다. 마주치지 않는다면 세상은 열리지 않으므로...

 

 

 

 

남자는 폐병 3기 환자다. 여자 역시 씻기에 열중하는, 결벽증에라도 걸린 듯 한 환자다. 여자는 붉은 실크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 앞에 가서 치마를 걷고 다리를 씻는다. 남자는 커튼 틈으로 여자의 물기 묻은 매끈한 다리를 훔쳐보며 수음을 한다. 남자도 여자도 모두 외로움에 빠져 있고 욕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실크커튼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 그들은 서로 실크 커튼을 과감하게 걷지 못하고 물로 화합을 시도한다. 그것이 그들이 하나로 흐를 수 있는 길이다. 여자는 물로 다리를 씻으며 그를 유혹한다. 그 남자의 방에도 물이 조금씩 새어들어 그의 방을 적시는 빗물은 그에게 화합의 손길을 내민다. 그러나 그들은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물이 되어 하나로 흐르질 못한다. 아슬아슬하게 손에 잡힐 듯 말듯하게 서로를 향한 숨바꼭질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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