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차길진원작 이윤택각색 '눈물의 여왕'

clint 2018. 5. 12. 16:56

 

 

 

이 극본은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 총경의 아들 차길진씨가 부친의 생애를 바탕으로 쓴 소설<애정산맥>을 원안으로 재구성된 것입니다. 그러나 극본 창작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당시 가극 영화 가요계의 실존인물들만 실명을 밝혔고, 이외 인물들은 모두 익명의 성격으로 대체했습니다. 극본 자체가 실화적 스토리 범주에서 벗어나 상황과 인간의 대결국면으로 재창조되었고, 무엇보다 이 연극이 지난 시절의 감상적 회고에 머물지 않고 오늘 이 땅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 제기적 의미를 지닌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전시대적 상황을 극복하고 신문명사회의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찾아 나가야 하는 시점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연극이 분단된 민족의 벽을 허물고 진정한 화해와 만남을 위한 문화적 길트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 이윤택

 

 

 

줄거리
전막
1953년 가을, 백조가극단은 광주 동방극장 공연을 위해 장성 갈재를 넘고 있었다. 이들을 막아선 남부군 빨치산. 그들은 눈물의 여왕 전옥, 허장강, 배삼룡, 고복수, 황금심……. 당대의 스타들을 볼모로 붙들고 기분 좋은 야밤의 축제를 벌인다. 그 축제 불빛을 발견한 토벌대장 차일혁 총경은 현장을 급습해 빨치산 전원을 생포하고, 전옥에게 토벌대원들을 위한 즉석 위문공연을 의뢰한다. 전옥은 빨치산 포로들의 포승줄을 풀고 그들도 함께 공연을 보게 해달라는 조건을 내세운다. 당대의 쾌남아 차대장은 대원들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빨치산들의 포승줄을 풀어준다. 그리고 숲속에서 공연되는 가극<눈 내리는 밤>. 빨치산은 무릎 꿇고 앉아 보고, 토벌대는 총을 겨누며 서서 보는 진풍경 속. 토벌대도 빨치산도 악극단도 모두가 하나가 되어 웃고 우는 산하에 내리는 눈이 평화롭기 그지없는 이 전막의 감동 사이에 후막을 위한 복선이 하나 깔린다. 차대장은 빨치산 포로 중 한 명인 신정하를 전옥에게 부탁하는데, 그녀는 바로 차대장의 고교 은사의 딸로 차대장이 먼 발치서 바라보기만 했던 어린 비너스였다.

 

 

 


후막
신정하는 뛰어난 재능과 미모로 백조가극단의 신데렐라로 급부상하고 휴전 협정이 조인되자 수도 경비사령부로 전속 받은 차대장은 전쟁도 이념도 잃고 연극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신정하는 죽은 줄만 알았던 빨치산 군관 애인 윤효삼이 돌아오자 그의 지령을 저버릴 수 없다. 이념과 매력적인 차대장, 그리고 첫사랑 윤효삼 사이에서 갈등하는 신정하. 구례 경찰서장 김순천은 신정하의 정체를 탐지해 내기 시작한다. 정보는 계속 새어 나가고 벼랑 끝으로 몰리는 차대장. 사랑을 택하자니 조국이 울고 조국을 택하자니 사랑이 울고. 전옥을 이어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신정하. 공연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공연을 중단하시오. 저 여자는 프락치요!’ 김순천이 무대로 뛰어들고 신정하는 김순천을 향해 운명의 방아쇠를 당긴다. 끌려나가는 신정하 뒤로 전옥의 ‘눈 내리는 밤’ 마지막 독백이 애통하게 흐른다. “아가야, 울지 마라. 네 설운 혼이 원통하거든 에미가 너를 따라 가마, 아가야.”

 

 

 

 

 

<눈물의 여왕>은 연극 장르상 가극(歌劇) 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 가극이란 무엇인가? 뮤지컬, 그리고 악극이라 불리워지는 공연양식과는 어떻게 다른가? 여기에 대한 장르적 탐색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세우고자 하는 가극은 말과 노래가 있는 연극이다. 통상적으로 악극(樂劇) 이라 불리워지는 공연양식은 전편을 음악이 이끌어 가는 공연양식이다. 모든 대사나 연기적 동작은 노래와 음악으로 구성된다. 악극에 연극적 대사가 개입할 공간은 없다. 예를 든다면, 서구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나 한국의 창작뮤지컬이라 불리는 명성왕후는 장르상 악극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악극은 연극과 음악의 경계에서 좀 더 음악적인 공연양식이라 할 수 있다. 가극은 이에 반해 대사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노래 또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대사를 위해 음악이 배경 선율로 존재하기도 한다. 대사는 독백과 대화로 이루어진다. 일상적인 어법의 다얄로그는 상당히 간결하고 사실적이다. 그러나 가극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독백은 시적감성을 유발한다. 이때 배경음악이 뒤따르기도 한다. 가극이 낭만주의적인 공연양식으로 자리잡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가극이 지니는 독특한 독백체화법은 이전의 식민지 문화였던 신파극에서 유래하는 듯 하다. 신파극이 일본 대중문화에서 유입된 양식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일본의 신파극과 우리의 신파극은 정서와 공연양식적 측면에서 상이한 점이 많고, 일본의 신파극 또한 유럽의 가정비극 양식에서 수용된 공연양식이란 점에서 우리의 가극은 나름대로 창조적인 공연양식으로 수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존했던 백조가극단의 공연양식들 - 눈 내리는 밤 / 항구의 일야 / 목포의 눈물 등을 분석해보면 위와 같은 개념은 분명해진다. '눈 내리는 밤'은 일본 대중소설의 명백한 번안물이며, '항구의 일야'는 식민지시대 신파극의 특성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가극배우 전옥의 유명한 독백체 대사는 정확한 발성과 발음,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까지 표현해 내는 철저한 연기적 계산, 효과음으로서의 배경음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간히 개입하는 영탄조 대사가 시조음송의 기법으로 차용되고 있음을 볼 때, 비록 대중극을 업으로 삼는 그들이었지만, 민족양식에 대한 탐색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21세기를 앞두고 있는 지금 왜 새삼스런 가극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가극은 명백한 우리의 대중양식이다. 그 근원은 역시 식민지시대 공연양식이었던 신극과 신파극 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현실주의적 문학이었던 신극, 낭만주의적 대중성을 띠었던 신파극 - 이 두 공연양식은 모두 우리의 공연양식으로 정착할 근거가 있는 것이다. 신극이 지금까지 발전해 오면서 한국의 순수연극으로 자리잡았다면, 광범위한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었던 신파극 또한 우리의 창조적인 대중 공연양식으로 자리잡았어야 했다. 그랬었다면, 지금 시점에서 브로드웨이식 뮤지컬이 아닌 우리의 가극이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대중문화상품으로 개발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나름의 대중 공연양식을 갖추고 있다. 뮤지컬이 영미문화의 사랑받는 대중 공연양식이라면, 이제 우리의 가극도 새로히 개발되는 대중 공연양식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가극은 물론 이전의 가극과 다르다. 이전의 가극은 (백조가극단 공연사를 중심으로 파악한다면) 다분히 극장 쇼로서의 흥행물로 인식되면서 장르적 인식이 결여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나 연구도 뒷받침되지 못했다. 전옥이라고 하는 한 독보적 인물에 의해 구성되고 공연되다가 사라진 것이다. 그녀의 첫 남편이었던 강흥식은 연기와 노래에 있어서 당대 최고의 일가를 이루면서 북한 대중공연양식의 중요한 공훈자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자유로운 공연활동을 찾아 남으로 내려왔던 세기의 여배우 전옥은 대중 소모적인 풍토 속에서 혜성처럼 반짝이다 사라졌다. 우리는 한때 반짝이면서 타다 사라진 그 혜성의 꼬리를 찾고, 타다 남은 낭만의 잔해를 뒤적이면서 새로운 무대를 꾸민다. 그녀와 그 일행들이 보여 주었던 가극이란 공연양식이 왜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는가, 지금 시점에서 그 영광의 시절을 되살릴 수는 없는가, 아울러 갈수록 밀려나고 있는 연극의 위상을 다시 대중 속의 예술로 정착시킬 수는 없을까 하는 바램이 이 작품을 연출하는 방향이 되겠다. 대중가극 눈물의 여왕은 장성 갈재를 넘어가던 백조 가극단이 토벌대 18연대 막사에서 즉흥적인 공연을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 되었다. 토벌대와 빨치산, 그 사이에 놓인 가극단의 위상은 이데올로기와 예술의 관계를 규명하는 흥미로운 극적 구성요소다. 연극은 과연 강파른 역사현실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찾는 과정이 노래, 춤, 대사가 어우러진 총체극적 가극양식으로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