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엽제 후유증으로 생의 마지막에 다다른 김문석.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아픈 과거의 기억을 추억하게 된다. 월남전 참전 때, 월남 여인 후엔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자신의 부대가 몰살당한 그 격전지에서, 그녀가 베트콩이었음을 알게된다. 후엔과 헤어져, 귀국한 후, 김문석은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을 당하게 되는데, 한국부인에게서 얻은 딸, 신창이에게도 그 끔찍한 병은 유전되어 그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그가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월남에서 라이따이한 김북청이 아버지를 찾아오게 된다.

이 작품은 월남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김문석의 어린 시절 겪은, 625의 아픔까지 등장시켜 폭넓게 전쟁의 아픔을 승화시키고 있다. 또한 라이따이한의 문제, 그리고 유전되는 고엽제 후유증의 치명성도 고발하고 있다. 월남전의 비극을 심도 있게 극화한 뮤지컬-역사보다 더 큰 사랑 이야기이다. 병원에서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주인공, 그의 이름은 김문석이다. 그의 흐릿한 의식속에 월남에서 겪었던 엄청난 사건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즉, 이 극은 김문석의 의식에 부상하는 연상작용에 따라 월남에서의 일들이 힘겹게 재생되는 방식을 취한다. 월남에서 지내던 어느날, 그는 한 술집에서 빨간 아오자이 차림의 댄서 '후엔'을 만나 운명적 사랑에 빠진다. 그후 김문석의 부대는 케산 전투에서 전멸하하고 그는 베트공의 포로가 되지만 후엔의 간곡한 배려로 고국에 돌아온다. 그는 귀국후 결혼했으나 자신이 병을 얻은 것은 물론 정신이 온전치 못한 딸을 낳았고 결국 아내는 달아난다. 병원에서 신음하던 그는 마침내 권총으로 자살하고 유년의 '작은 남자'와 화해한 후, 돌아올 수 없는 나라로 이끌려 간다. 고엽제 질환으로 한 남자가 휠체어에서 죽어간다. 그에게는 자식이 둘 있는데, 라이따이한인 아들 '북청'은 아버지를 찾으러 한국에 와 구명전자라는 회사에서 기술연수생으로 일하고 있고, 그의 한국인 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신창'은 고엽제 후유증으로 아버지처럼 몹쓸병을 앓고 있다. 무대는 남자가 살고 있는 하얀병실과 그의 청춘의 땅 월남땅이 있다. 공간의 이동과 넘너듬으로 극은 흘러간다. 침묵과 정지의 이미지는 고통의 극점이고 웃음과 환희는 극한의 공포를 잊기 위한 필사적 몸부림의 수단이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최대의 전쟁이었던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김문석 상사... 전쟁의 후유증으로 죽음으로 향해가는 그 앞에, 시간밖에 살고 있는 가수가 나타나 그를 다시 과거속의 사이공으로 이끌어간다.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김문석 상사와 맹호부대 따이한 병사들... 머나먼 이국땅의 전쟁속에서 피어난 전우애, 아내와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떠나온 이들에겐 고향과 삶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이젠 잃어버린 나, 나를 찾을 수 있을까"
파라다이스바에서 김상사 일행은 우연히 미군에게 희롱당하는 베트남 여인 후엔과 이를 막던 남동생 막드엉을 구해주게 된다. 이로 인한 소동속에 미군이 살해되고, 후엔은 자신을 구해주었던 김상사의 팔을 이끈다. 서로 간의 가슴 아픈 상처를 알게된 이들은 사랑에 빠진다. 김상사와 후엔의 사랑은 깊어지고, 아름다운 쭝투 축제에서 후엔은 김상사에게 자신이 그의 아이를 가졌음을 고백한다. 아이를 낳으면 첫째는 북창이, 둘째는 신창이, 그 다음엔 토속으로 이름을 지어 주라는 김상사의 말에 이번만큼은 전투에 나가지 말라고 후엔은 애원한다. "여기도 없어. 아무도 없어. 함정에 빠졌어. "
케산전투에 투입된 김상사와 맹호부대원들은 매복되어 있던 베트콩들에 의해 몰살을 당하게 된다. 부대원들을 모두 잃고 베트콩들에게 혼자 사로잡혀있던 김상사 앞에 후엔의 남동생 막드엉과 후엔이 나타난다. 후엔이 베트콩의 스파이였음을, 사랑하던 사람이 적이었음을,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부대원들이 몰살하게 되었음을 알게 된 김상사는 좌절한다.
" 어디로 가야하나, 하늘 저무는데 발은 무거워."
과거속으로의 여행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여행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불러내어 함께 빛속으로 사라진다. 얼마후, 김상사와 후엔의 아들 라이따이한 김북청이 김상사를 찾아 한국에 온다. 아버지 김문석 대신 김상사의 딸 신창이를 만나게 되고 북청이 간청한다. "한번만이라도 아빠를 뵙고 싶습니다. 한번만이라도 아빠품에 안겨보고 싶습니다."

베트남 전쟁은 이제는 역사 속에 놓여 있다. 지나간 일 중에 역사가 아닌 것이 따로 있으랴만, 그러나 베트남 전쟁의 역사성의 의미는 각별하다. 오래 전 발간되어 이제는 고전이 된 이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베트남전쟁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전까지는, 월남전이란 극장에서 되풀이되는 대한뉴스 중 '월남소식'의 한 장면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 속에 용맹한 따이한들의 무공담만이 줄기차게 쏟아져 나올 뿐, 그들이 겪는 고통과 좌절, 그리고 전쟁의 의미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파라다이스'의 공간이었다. 이제 그 베트남 전쟁이 그 위에 다시 한반도의 역사를 함께 떠안고 김정숙 작, 연출로 무대 위에 올랐다. 그만큼 <블루사이공>의 무게는 이미 '블루'의 정도를 넘어서 있다. 주인공 김문석 상사는 함경북도 북청군 신창읍 토속리 1구 1033번지가 고향인 월남가족이다. 그는 10살의 어린 시절 한국전쟁 때 국군 환영식에 참가한 동네 어른들을 지목하여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죄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냉전 논리의 희생자이다. 그는 자신을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동네 아이들의 멸시 속에서 성장한 월남 1세대의 청춘상인 셈이다. 그러한 그가 어떤 연유로 월남전에 참가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레드 콤플렉스의 희생자를 모면하고자 한 것일까, 아니면 그에 대한 자학적 반작용이었을까. 아쉽게도<블루사이공>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의 모습만 보여 줄 뿐, 그의 '무용담'은 보여주지 않는다. 김문석 상사가 베트콩 여인 후엔을 만나 외로움을 극복하고 상처를 위무받을 수 있을 만큼, 그는 오히려 극중에서는 보다 잔학한 병사여야만 하였다. 그럴수록 그의 비극은 개인사를 넘어선 전쟁의 비극, 한반도의 비극을 육화시킨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김문석의 허약함을 메워주기 위한 방법으로 작가는 다시 베트남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한다. 그것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현재 속의 비극, 바로 고엽제의 희생자로서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의 모습이다. 김추자 노래의 그 신나는 반주를 변주한 음울한 곡조의 '김상사'는 병상에서 과거의 상흔을 끊임없이 떨쳐 버리려고 몸부림치는 시대의 희생자로 재등장한 셈이다. 베트남에서 남긴 아들 김북청이 고엽제의 후유증을 유전적으로 앓고 있는 이복동생 김신창을 만나는 것으로 극을 마감하고 있는 것은 이들의 비극이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극의 첫머리에서 아버지를 찾아 헤매는 한 라이따이한의 사연이 결국 극의 마감의 순간에서 확인되지만 이는 다시 비극사의 확인일 뿐이다. 이념을 넘어선 사랑의 결실 덕분에 살아오면서 감당하여야만 하였을 김북청의 정신적 고통은 곧 김문석의 과거사의 그것과 동일할 것이며, 정신적인 충격은 모면하였을지 모르지만 고엽제의 육체적 고통을 숙명으로 지고 살아가야 할 김신창 역시 곧 김문석의 고통의 확인인 셈이다. 이렇듯 과거형의 역사 베트남전쟁이 김정숙 작, 연출에 의해 지금, 여기에서 현재형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블루사이공>은 기존의 뮤지컬 양식과는 그 질을 달리하는 연극사적 의미를 획득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문석의 고통은 단순한 고엽제로 인한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케산 전투에서 동료를 버리고 자신만 살아 남았다는 것, 애인 후엔의 도움으로 살아 남아 무공훈장까지 받았다는 것, 이것이 과거 10살 때 동네 주민들을 밀고하고 자신만이 살아 남았다는 기억과 연결된 고통이라는 점을 알아차리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의 연극미학의 성취는 바로 이 두 가지의 역사, 즉 김문석의 과거의 고통과 현재의 고통이 어떻게 무대 위에서 적절히 교직(交織)될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업이 그리 만만치 않은 것이어서 이 두 가지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방법으로 작가는 해설자를 겸하는 극중 가수를 등장시켜 과거의 고통과 현재의 고통을 연결, 화해시키는 장치를 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적 상흔들의 극적 제시가 뮤지컬이라는 한 특성-화려한 볼거리와 신나는 노래- 속에 자칫 쉽게 묻혀 버림으로써 '김상사'의 비극이 보편적인 의미를 획득하기에는 다소 힘에 부치고 만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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