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청준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clint 2018. 5. 12. 14:50

 

 

 

이 작품은 자본의 팽배 속에서 인간이 얼마만큼 소외되는가를 보여주는데, 1981년 ‘한겨레 문학선’에 발표된 이청준씨의 단편소설 ‘조만득씨’를 각색한 것이다. 70년대 이야기를 95년도 사회 상황으로 끌어내고 원작이 가지는 무거운 주제를 현대의 상황으로 재현하기 위해 국악적인 랩, 재즈 댄스, 풍물, 컴퓨터 음악 등을 총동원하였다. 또한 집단 연기 형식과 무대장치의 자유로운 전환을 통한 활기찬 장면구성 등 현대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으로 어두운 이야기를 밝음과 대비시키면서 속도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재개발이 진행중인 서울 변두리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던 중년의 조만득씨는 어느 날 정신병원에 입원하다. 병명은 과대망상성 정신분열증으로 자신이 백만장자라고 믿고 있다. 돈이면 뭐든지 해결되는 세상이 가난한 그를 한없이 억압했기 때문이다. 담당 의사인 민박사는 그의 망상을 깨고 그를 현실의 세계로 돌려보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허상의 행복이지만 무의식 속에서라도 조만득은 백만장자로 남고 싶어한다. 환자들에게 종이수표를 발행하며 즐겁게 병원생활을 하던 조만득은 수정이라는 동료환자를 만나 서로 위로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민박사의 집요한 치료로 그의 망상은 서서히 깨어진다. 정신이 맑아질 때 떠오르는 현실은 끔찍하기만 하다. 10년째 치매증을 앓고 있는 노모, 돈을 내놓으라고 형을 협박하는 노름꾼 동생 만수, 단란주점 차사장과 바람이 난 아내 정옥. 마침내 민박사의 노력으로 그는 건강을 되찾고 병원문을 나선다. 그러나 병원문 밖의 세상은 그에게 곧 죽음이나 다름 없다. 현실은 더욱 비참해져서 노모의 치매증은 한층 극심해져 있고 아내는 집을 떠난지 이미 오래... 마침내 조만득은 정신착란 속에서 노모를 죽인 후 정신병원에 재수감된다. 재수감된 그의 얼굴엔 행복한 망상마저 자취를 감추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본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인해서 나름대로의 상처를 입고 있다. 사람들은 문명의 상처와 물질의 상처를 살포시 덮어두고 애써 잊으려 한다. 그래야만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에 의한 억압과 고통으로부터 짧은 순간일지라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극『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는 제목에서부터 어떤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배꼽이란 작은 우주 속에서 세상으로 한 생명체가 탄생할 때 어머니의 모태와 아기의 생명줄이 끊어져 독립된 생명체를 이루는 것을 일반적인 관점에서의 의미다. 또한 그것은 순수의 상징이기도 하다. 어떤 불온한 물질에도 물들지 않은 순백의 그 자체인 것이다. 생명과 허수아비는 마치 삶과 죽음의 한 형태를 구별짓는 대립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상징과 같이 나타난다. 즉 배꼽은 생명이요,허수아비는 공허와 텅빈 것으로 어쩌면 조정당하는 꼭두각시로 해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고 있지만 정작 살아있지 않은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는 이청준의 소설 『조만득씨』를 원작으로 김명곤이 각색하여 연출한 작품이며,소극장 아리랑개관 및 극단 아리랑의 10주년 기념공연작이다. 이 극은 자본주의 대명사인 돈으로 인한 지독한 억압 상황에서 살아가지 못하고 결국에 스스로를 백만장자라고 믿어버리는 과대망상성 정신분열증에 걸린 조만득이라는 한 사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변두리 재개발 지역의 이발사 조만득은 옴싹달싹할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이 자신의 두 어깨를 짓누르는 것을 견디지 못해 과대망상성 정신분열증으로 병원에 입원한다. 심각한 치매증으로 주위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히지만 10년째 병원 한번 못가본 노모와 노름에 빠져 형의 돈을 뜯어가는 건달 만수,그리고 동네 단란주점 사장과 사랑 행각을 벌이는 아내 정옥의 부정을 눈치채지만 큰 소리 한번 못해본 조만득은 절망뿐인 현실에서 도망치듯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 버린다. 그래서 조만득은 자신이 재벌그룹 회장이라고 여기고 병원을 요양소로,담당의사인 민과장을 주치의로,윤간호사를 여비서로 생각하며 백지수표를 남발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가한다. 즉 지옥과도 같은 현실보다도 비정상적일지라도 정신병원에서의 행복한 생활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민과장의 집요한 치료로 조만득은 환상에서 깨어나 다시 세상으로 상처입은 짐승처럼 내놓아지는데 그를 기다리고 있는 세상은…….

 

 

      

 
이 극에서 배꼽춤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향락과 소비형태 속에서 소박하고 성실한 삶이 어떻게 찢겨나가는지 ‘허수아비’로 상징되는 조만득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조만득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임을 나타내고 있다. 자본의 위력 앞에 진실은 가려지고,고귀한 생명체는 산산히 부서지는 것이 현실이라면 대다수의 서민들은 체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조만득의 환상지키기와 민박사의 환상깨기의 치열한 대립이 보여지는 가운데 윤간호사의 연민어린 주장이 공감된다. 그것은 조만득에게 있어서 세상은 지옥 그 자체일진데 애써 치료해서 그 곳으로 다시 보내어진다면 결과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불을 보듯 뻔하다. 즉 차라리 환상 속에 안주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죄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차피 세상에 다시 돌아가봐야 더 찢기기만 할 뿐이라면 환상 속의 헛된 행복일지라도 그 속에 머무르게 하는 것도 또다른 방법의 정신치료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물질만능에 찌든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인간 군상의 공감대를 이루며 배우들의 숙련된 연기를 통하여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공포를 잘 드러내고 있다. 자본지상주의,인간소외,과학의 발달은 점점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는데,우리 또한 조만득처럼 출구없는 상자 같은 이 세계 안에서 배꼽춤을 추고 있는 허수아비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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